정부에 설치된 TF와 위원회가 한일위안부합의와 개성공단 폐쇄에 대한 보고서와 의견서를 내놓은 것은 지난 정권의 잘못된 대외정책을 바로 잡으려는 행보로 보인다. 박근혜 정권이 한일위안부합의에 있어서는 불투명한 방식으로 졸속 협상을 했고 개성공단 폐쇄는 별다른 정책적 근거 없이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건의 개별적 측면만을 볼 게 아니라 전체 맥락을 되짚어보는 것도 이 시점에서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한일위안부합의와 개성공단 폐쇄는 서로 맞닿아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전 정부가 내린 두 결정 모두 조금의 명분도 없는 일은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다. 한일위안부합의의 경우 어디까지나 이 문제를 한일관계의 틀 안에서 볼 때 현실적으로 이룰 수 있는 가장 진전된 형태의 합의안으로 평가할 수 있는 건 사실이다. 또 개성공단 폐쇄의 경우도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국면에서 한국 정부가 선택 가능한 옵션 중 하나였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의 보고서와 의견서를 발표한 TF와 위원회는 한일위안부합의에 있어서의 이면합의 문제나 개성공단 폐쇄 결정 과정의 절차적 미비 등을 중심에 놓고 판단하고 있다.

외교부 장관 직속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 오태규 위원장이 2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이 두 가지 사안에 대해선 절차의 문제를 넘어 결국 실패한 대외정책이라는 측면에서 평가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박근혜 정권은 애초 대북문제를 이전 정권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루고자 했다. 공약으로 한반도신뢰프로세스라는 유화책을 내놓은 것 등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대중관계를 중시해야 한다는 판단도 이런 맥락에서 이뤄진 걸로 볼 수 있다. 박근혜 정권은 초기부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수단으로 일본과는 거리를 두고 중국과는 가까워지는 정책 행보를 취했다. 이 결과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과 박근혜 대통령의 2015년 9월 중국 전승절 열병식 참관이다.

그런데 그 이전인 인수위 기간 때부터 이명박 정권이 해결 불가능하게 만든 남북관계를 풀자는 기조는 이미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정권 내 비둘기파로 알려진 최대석 이화여대 교수가 석연찮은 이유로 인수위원에서 사퇴한 일을 시작으로 대북 대화를 주장하는 흐름은 박근혜 정권에선 거의 왕따를 당하다시피 했다. 류길재 전 통일부 장관이 퇴임 직후 “솔직히 이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은 아무나 와도 되는 자리 같다”고 할 정도였다.

정권 내 대북대화파의 급격한 지위 축소는 물론 어떤 국정농단의 결과일 가능성도 있겠지만, 군 출신들이 외교안보정책을 좌우할 수 있는 요직을 독점했다는 것과 이들이 정책적으로 강경책을 선호한다는 것과 무관치 않은 걸로 보인다. 당시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김관진 국방부 장관, 남재준 국정원장의 라인업을 보면 이런 색깔이 두드러진다.

이들의 입장에서 대통령의 공약인 한반도신뢰프로세스와 같은 남북관계 개선책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붕괴론에 기댄 개입론으로 상황을 돌파하려 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대로면 북한은 곧 붕괴하고 2015년 정도에는 통일이 될 것이기 때문에 미리 북한에 경제적 측면의 배려를 해서 통일의 충격을 최소화 하는 건 나쁠 게 없다는 식이다. 북한붕괴론과 대북대화론이 한 바구니에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013년 남북당국회담 과정에서 수석대표가 갑작스럽게 교체된 일이나 천해성 현 통일부 차관이 2014년 2월 청와대 국가안보실 비서관으로 내정됐다가 일주일 만에 통일부로 복귀했던 사건, 정부가 3NO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한반도 내 사드 배치가 순차적으로 기정사실화된 점 등은 바로 이런 조건 하에서 벌어진 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바로 이 상황이 대북문제를 풀 수 없는 중대한 조건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북한 입장에선 박근혜 정권의 남북관계 개선 제안을 일종의 흡수통일론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북한은 박근혜 정권의 드레스덴 선언 등 대화 제의에 호의적으로 반응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반발하면서 애초의 플랜A인 핵 미사일 능력 강화 노선을 벗어나지 않았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과 4차 핵실험은 그 결과다.

박근혜 정권 입장에선 헛물만 켠 셈이다. 순전히 박근혜 대통령의 시각으로 보자면 미국과 일본의 압박에도 대중관계 개선과 이를 활용한 대북개입을 위해 천안문 망루에까지 올랐는데(물론 이 과정에 리커창 중국 총리의 방한을 활용한 미르 재단 관련 펀드 조성 등 국정농단식 판단 역시 개입돼있었던 것은 별론이다) 남북관계의 진전은 없고 오히려 미국의 의구심만을 키웠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2015년 말은 이미 ‘타임 리미트’에 가까워진 상태였다. 미국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초청해 상하원 합동 연설까지 시켰고 우리 정부엔 한일관계의 연내 개선을 주문했다. 한일위안부합의는 바로 이 맥락에서 일어났다.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등이 이런 형태의 합의가 최선이었다고 항변하는 것은 바로 이런 조건 하에서의 최선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은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어떤 인내심을 바닥나게 하는 결정적 한 방이었던 걸로 보인다. 이 사건을 통해 어찌됐건 남북관계의 개선을 모색해보려 했던 박근혜 정권의 거의 3년에 걸친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가 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치 ‘배신의 정치’를 말하는 것처럼 단칼에 개성공단 폐쇄(당시에는 ‘개성공단 전면중단’이라는 다소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으로 발표되었다)라는 어떤 ‘복수’의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북한붕괴론을 믿고 이에 기반한 정책결정에 익숙한 군 출신들에게 외교안보정책의 전권을 맡긴 것부터가 문제였다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점 때문에 허송세월만 했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남북관계를 다음 정권에게 물려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위협이 이 시기의 유산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국민이 피해 당사자라는 점에서 단지 한일관계의 한 요소로서 고려하는 게 아니라 전쟁범죄 반대와 인권의식 제고를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에 호소하는 근거로서 사고됐어야 한다. 동일한 의미에서 베트남전 등에서 한국군의 가해행위에 대한 사과와 보상 논의가 이루어졌다면 일본에게 최고의 외교적 압박이 됐을 것이다. 2012년 이미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성노예’란 표현을 쓰자고 제안한 일 등은 이런 맥락에서 한국 정부에게 불리한 일이 아니었다. 이런 맥락에 눈을 감고 위안부 합의를 단지 한일관계의 틀 안에서 최선이었다고 평가하는 것은 사태의 한쪽 면만을 보는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과거를 돌아봐야 하는 이유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비록 파탄지경에서 다시 시작하지만 문재인 정권은 잘못을 되돌리는 걸 넘어 보다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국제관계를 재정립해야 하는 짐까지 짊어지고 있다. 결국 국제적 보편 가치에 호소하는 것을 1차적 목표로 해야 한다. 반전평화와 전지구적 군비축소를 앞장서서 말할 수 있는 나라가 되는 것이 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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