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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준비하고 있는가공동체 정상성 회복 모색했던 한 해, 극우 반격 버텨낼 미래 준비해야
김민하 / 저술가 | 승인 2017.12.27 08:59

또 한 해가 거의 갔다. 2017년은 촛불시위와 뒤를 이은 탄핵, 그리고 문재인 정권 탄생이라는 일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는 해였다. 사람들이 모여 최고 권력자를 끌어 내렸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 지금 생각해보아도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촛불시위를 ‘혁명’이라 부르며 의미 부여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현 정부를 “피플파워를 통해 출범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최근 정치권의 개헌 논의는 자유한국당의 몽니 덕에 지지부진이지만, 이것에 대해서도 촛불 정신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촛불시위의 정신은 대한민국을 근본부터 뜯어 고치라는 것이었고 정치권이 이런 의지를 받들기 위한 방법이 바로 개헌이라는 것이다.

촛불시위는 인터넷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촛불시위를 지배한 문법이 소셜미디어의 그것과 같았다는 게 이를 보여준다. 늘 하던대로 깃발을 들고 나온 시민사회단체들에게 “깃발을 내리라”고 요구했던 2002년과 완전히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는 게 대표적이다.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시민들이 제각기 말도 안 되는 내용의 깃발을 들고 나온 것이다.

영화 아수라의 공간적 배경인 안남시를 주제로 한 깃발이나 고산병연구회 등의 패러디성 깃발, 야구팀 우승 기원 깃발 등이 화제가 됐다. 보통 시민사회단체들의 깃발은 자기 조직원들에게 일종의 식별신호를 주기 위한 것이지만 이 깃발들은 소셜미디어의 ‘플픽’과 사실상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런 면에서 촛불시위의 현장은 인터넷의 정서를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 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집단적 논의는 대개 몇 가지 특징을 가진다. 누구나 논의에 참여할 수 있고 거의 동등한 발언권을 가지게 된다는 점은 쟁점 자체를 깊이 파고드는 것보다는 공격이냐 방어냐의 입장을 먼저 정하고 논리를 이후에 끼워 맞추는 세태를 일상화 한다. 여기서 각광받는 것은 상대의 논리를 형식에 기대 반박하는 게 아니라 ‘내로남불’이나 ‘이중잣대’라는 편리한 기준을 들이밀어 신뢰성에 타격을 입히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인터넷 공간을 통한 논의의 결론은 대개 정상적 공동체 안의 비정상성을 찾아내 이와의 절연을 선언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 과정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이루어지며 여론은 마치 인화성 강한 물질에 불이 붙듯 움직인다.

촛불시위 안에서의 논의도 이와 유사한 과정을 거쳤다. 대다수의 상식적 시민들이 만든 공동체의 기준으로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무능하고 탐욕스러우며 주술에 기댄 기괴한 구시대적 권력을 상징한다. 이런 인식 속에서 최순실 씨는 비정상의 결정체 같은 사람이다. 이러한 비정상성을 일소함으로써 공동체의 정상성을 회복하자는 게 촛불시위의 요구였다. 무언가를 어떻게 바꾸자는 것보다는 되찾거나 지키자는 것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논리 안에서 정상적 존재로 선택됨으로써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이렇게 보면 과연 개헌이 촛불시위의 요구인지 의문이 생긴다. 오히려 촛불시위의 요구는 현행 헌법의 취지를 잘 살릴 수 있도록 법제도를 정비하고 정치사회적 문화를 바꾸자는 것에 가깝지 않았나 싶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개헌을 원한다고 답하는 국민들이 다수인 것으로 나오지만, 구체적으로 개헌을 통해 이루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즉, 개헌을 향한 국민의 욕구는 구체적이지 않다.

개헌이 필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개헌은 필요하지만 정치권력의 상층부가 자기들끼리 합의해 조항 몇 개를 손보고 권력구조를 바꾸는 정도의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일부 세력은 개헌보다 선거제도 개혁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는데, 이것도 마찬가지다. 권력구조나 선거제도가 어떻게 바뀌든 모래 위에 집을 지어서는 금방 무너질 뿐이다. 뗏목 위에서 아무리 노를 저어봐야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는 걸 막을 길은 없다.

문재인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이 지난달 청와대 본관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이어진 촛불집회 모습이 담긴 대형 그림을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예를 들면 노동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호기롭게 인천국제공항을 방문해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하고 정규직화를 약속했다. 26일 인천공항공사와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는 비정규직 전체 1만여명 중 3천여명을 직접 고용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양측이 서로 양보한 결과다.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비정규직 제로’라는 액면을 기준으로 보면 크게 못 미치는 성과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수 없고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으니 합의가 됐다는 것 자체에서 의미를 찾을만 하다.

문제는 기존 정규직들의 반응이다. 정규직 노조 지도부는 조합원들에 의해 불신임됐다. 정규직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거 직접고용 되면 회사의 경영상태가 악화돼 자신들에게 불이익이 돌아올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정규직 노조 지도부가 사측과 비정규직 노조에 끌려 다니기만 했다는 불만도 있을 것이다.

이 문제를 잘못 다루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대립하는 최악의 비극이 벌어질 수 있다. 이미 이런 식의 노-노 갈등은 많은 현장에서 실질적 문제로 떠오른 지 오래다. 근래 들어서는 힘들게 얻은 정규직 일자리를 비정규직에게 양보할 수 없다는 노골적인 정서를 표현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과거 같으면 진보정치세력이나 노동운동세력이 나서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안을 내놓는 노력이라도 했을 텐데 요즘은 그야말로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계에 새로운 사회적 합의 모델을 만들겠다며 “1년만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있다. 대통령의 어떤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실제로 문재인 정권 내에서 보수정부가 퇴행으로 몰고 간 노동조합 등 관련 문제의 일부는 진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애초 촛불시위가 요구한 ‘정상성’의 범주 내에는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만들 실마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노동자 서민이 직접 나서 스스로의 세를 만들고 단결해서 자기 몫을 쟁취하려고 노력할 수 있을 때에야 해결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 개헌이 의미가 있으려면 바로 이 구도 안에서 대중의 동력이 구체적 요구로 이어지는 정치행위가 빛을 발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시도를 포기하지 않고 되풀이 하는 정치세력을 찾기는 이제 참으로 어렵다.

당장은 실감하기 어렵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진정성이 체제의 한계와 부딪칠 때 위기는 닥쳐올 것이다. 정상성 회복으로 완결적 상태를 유지하게 된 걸로 여겨졌던 세계가 사실은 여전히 파편화된 상태에서 위태로운 균열을 유지해왔다는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 온다. 이때 어떤 총합으로서의 세계상을 제출하는 것은 극우세력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제일주의를 말하고 유럽의 극우세력이 무슬림을 내쫓아 ‘유럽’을 회복하자고 말하는 게 이와 같다. 이런 극우세력의 ‘백래쉬’는 진보세력이 노동자 서민의 단결을 무기로 극우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총체적 인식을 가질 수 있어야 버텨낼 수 있다. 과연 진보는 이러한 준비를 하고 있는가, 2017년은 그것을 묻지 않을 수 없는 한 해 였다.

김민하 / 저술가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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