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시작한 단막극의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노희경의 섬세한 감정 묘사가 뛰어났던 '빨강사탕'에 이어 오늘 방송되었던 '무서운 놈과 귀신과 나' 역시 단막극이 보여줄 수 있는 함축적 재미가 넘쳐났습니다. 유쾌함 속에 묵직한 죽음을 이야기하는 이 작품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자신에게 찾아온 천사는 천사가 맞았다

1. 두섭을 깨우는 고양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악독했던 조폭 강두섭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그 세계에서도 전설로 통하는 인물로서 그를 모르고 있었다면 행복하다고 말할 정도로 악랄한 존재였습니다. 그런 그가 싸움 중 뒤에서 내려친 둔기에 의한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부지불식간에 당한 강두섭은 퇴원 후 주변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재개발 지역을 관리하는 그는 자신이 거주 중인 집으로 향하며 자신을 뻔히 바라보는 여고생을 발견합니다. 감히 자신을 쳐다본다는 것만으로도 당황스럽지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그는 당연하듯 여고생에게 욕을 한바가지 담아냅니다.

그렇게 집에서 퇴원 후 첫 날을 보낸 그를 반겨주는 것은 다름 아닌 지난 밤 밖에서 마주쳤던 여고생이 자신의 집에 들어와 있었던 거죠. 어르기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했지만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때리려던 순간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림자가 없는 그녀는 귀신이었으니 말이죠. 말을 이어가지 못하던 그는 드라이버로 실험을 해보지만 귀신인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황당한 상황에 몰린 그는 재개발 지구에 들어서 있는 모든 일이든 다 해주는 흥신소 용수를 찾습니다. 용수는 두려운 존재인 두섭의 제안이 당혹스럽기만 하지요.

자신의 눈에 보이는 귀신을 찾아달라는 그의 부탁이 생뚱맞기도 하지만 그를 잘 아는 용수로서는 거절할 수도 없습니다. 자신에게는 결코 보이지 않은 귀신을 찾는 작업을 시작한 용수와 자신에게서 떠나지 않는 여고생 귀신의 정체가 궁금한 두섭은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기 시작합니다.

원한이 있지 않다면 귀신이 사람에게 붙을 리가 없다는 생각에 그전에 자신이 행했던 온갖 악행들 속에 그 원인이 있을 것이라는 용수의 판단에 따라 자신 때문에 최악의 상황에 몰렸던 이들을 찾아다닙니다. 그렇게 찾아다니며 자신의 악행들을 되돌아보기는 하지만 여전히 의문만 남습니다.

어떤 말도 하지 않는 여고생 귀신은 온화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볼 뿐이지요. 그러는 동안 그에게 없었던 습관이 생겼습니다. 공터에 내버려진 아기 고양이들을 돌보는 일이지요. 악마로 비유되는 그가 어린 고양이들을 보살피는 모습이 어울리지 않았지만 지극정성을 보입니다.

귀신의 표정을 통해 악행이 아닌 사랑을 찾기 시작한 그들은 과거를 거슬러 그가 사랑했고 사랑받았던 사람들을 추적해보지만 그 누구도 그를 사랑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제빵학원에 있던 시절 자신이 받았다던 편지도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학원 원장이 보냈음을 알게 되어 허탈할 뿐입니다.

자신이 사랑했던 단 한사람을 찾아 나선 두섭은 우연히 어린 아이의 사진을 보고 아이가 여고생이냐고 묻습니다. 그를 떠나 아이를 데리고 살던 과거의 여인은 자신에게서 떠나기를 바랍니다. 아이를 함께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이 아이는 자신의 아이라며 말이지요.

여고생이 아닌 자신을 닮은 아들을 바라보며 눈시울이 불거지는 두섭은 그렇게 자신의 아이를 안아보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언제나처럼 공터에 버려진 고양이를 찾아 밥을 주던 그는 삶의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깨닫게 되며 숨을 거둡니다.

그렇게 살아 있을 때 대단했던 그의 장례식장을 지키는 이는 외롭게도 단 한 명뿐이었습니다. 그를 찾아와 조문하는 이들도 없고 그저 형식적으로 장례식장에 나와 있는 조폭들만 득실거리는 상황에서 그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고양이 한 마리는 그의 전부였습니다.

인생무상을 통해 두섭이 얻은 것은 다른 것이 아닌 자신이었습니다.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존재였는지를 확인했던 그 짧은 시간이 그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시간이었고 그런 시간을 가지게 만들어준 고양이를 바라보며 웃는 그의 모습은 깊은 여운을 남겨주었습니다.

2. 작가의 역량이 돋보이는 단막극

단막극은 다른 드라마들도 그렇지만 작가의 역량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짧은 시간 안에 이야기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담아내야 하기에 주제 의식이 뚜렷하지 않으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작품이 되기 쉽기 때문이지요. 첫 회 노희경에 이은 두 번째 작가는 박연선 작가였습니다.

박연선 작가는 <동갑내기 과외하기>, <그녀를 믿지 마세요>, 최근작 <백야행>까지 다양한 영화 시나리오를 썼고, <연애시대>, <얼렁뚱땅흥신소>로 마니아층을 거느린 드라마 작가이기도 합니다.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흥행과 절망을 번갈아 맛보던 그녀의 새로운 작품은 담백하면서도 깊은 고민을 하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평생을 타인에게 해만 입히며 살아왔던 한 인간이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고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색다른 방식과 코믹함을 자연스럽게 엮어내 재미있게 표현해냈습니다. 그가 여고생이라고 생각했던 귀신은 새끼 고양이를 놔두고 죽은 어미 고양이였지요.

머리를 다쳐 헛것이 보이는 증세를 보인 두섭에게 고양이는 하늘이 보내준 천사가 분명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순수했었던 시절을 떠올려볼 여력도 없이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아왔던 그로서는 어린 고양이를 키우며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었기에 어미 고양이는 분명 천사였습니다.

<얼렁뚱땅흥신소>의 맥을 이어가는 듯한 엉뚱함과 감동을 얹어 놓은 실력은 단막극의 재미를 만끽하게 해주었습니다. 챕터로 나눠 그를 바라보고 회상하는 장면에서 보여 지는 파격은 기존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는 색다름이었죠. 단막극이 줄 수 있는 명확한 주제와 함께 이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영상들이 잘 어울려진 <무서운 놈과 귀신과 나>는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최근에 보기 힘들었던 이원종과 <추노>에서 색다른 매력을 발산했던 박기웅, 신인 김민지 등의 출연은 반가웠습니다. 비록 말을 하지 않았지만 표정으로 모든 것을 보여준 김민지의 연기도 어색함 없이 잘 어울렸습니다.

최악의 인간에게도 가장 아름다운 시절은 있었다는 내용을 통해 작가가 이야기하고 했던 것은, 정신없이 앞만 보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자신을 돌아보는 휴식 같은 시간을 가져보라는 의미는 아니었을까요? 각박한 삶 속에서 잃어버리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값진 것들을 되돌아보는 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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