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 융합 시대를 맞아 관련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할 실질적인 통합기구의 개편은 향후 우리 사회 방송·통신의 미래를 좌우할 첫 단추가 된다는 점에서 그 의미와 중요성이 남다르다.

그러나 정권 말기에 통합기구 개편 논의가 급하게 진행되면서 방통 융합의 궁극적인 목표와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부재했고, 결국 부처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치면서 분산된 업무를 단순 통합하거나 분배하는 수준으로 논의가 좁혀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특히 방송통신 통합기구 개편의 정책 목표는 효율적인 산업 진흥 기능과 함께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맞춰져야 한다는 각계의 요구가 높지만 방송통신 관련 정책권을 민간 합의제 위원회 구조가 아닌 독임제 정부 부처로 환수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어 논란이 뜨겁다.

현재 방송통신융합기구 개편안을 논의하고 있는 국회 방송통신특별위원회가 활동 시한을 내년 3월 말까지 연장하면서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의 기구법 처리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방송통신 정책과 규제, 진흥 업무를 둘러싼 정치권과 부처별 논쟁이 여전히 불씨로 남아있는데다 대선 이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출범과 내년 4월 총선 일정 등이 변수로 남아있어 내년 2월 국회 통과 여부는 아직까지 불투명한 상태다.

▲ <표> 17대 대선 후보의 방송통신융합기구법에 대한 입장
방송통신융합 기구법에 대한 각 대선 후보들의 입장은 통합기구의 성격, 그리고 정책·규제·진흥 등 기구 개편시 소관 역할 분담과 관련해 쟁점을 형성하고 있다.

이명박 후보 "방송통신 정책권은 정부 부처로 일원화…위원회는 규제 집행 기능만"

무엇보다 방송통신융합 기구의 소관 직무와 관련해 크게 진흥과 정책, 그리고 규제를 어떻게 정리할 것이냐가 핵심이다. 큰 틀에서 진흥은 독임제 부처로 이관하고 정책과 규제는 독립된 합의제 위원회에서 맡아야 한다는 것이 언론계와 시민사회단체의 기본 입장이다. 정부 부처가 처리할 업무와 독립적인 규제 정책이 필요한 위원회의 업무를 정확히 분리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방송통신 정책권을 일원화해 독임제 부처가 담당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정부가 방송정책 기능을 맡을 경우 독립성이 훼손될 것이라는 비판과 우려가 제기되는 것에 대해서는 "오해에 불과하다"는 반론을 펴고 있다.

이명박 후보쪽 한나라당 이재웅 의원은 한국언론학회와 스카이라이프가 지난달 30일 개최한 '2007 대선 미디어 정책 토론회'에서 "집권당은 정책을 통해 가치관 실현을 하기 때문에 조직원리상 정책권은 부처로 가야 한다"며 "정부가 (방송을) 좌지우지한 과거 환경 때문에 기형적으로 위원회가 정책권을 갖고 있었는데 이를 정상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또한 "규제정책권이 정부 부처로 가면 정부 부처가 마음대로 결정해 방송의 공공성과 독립성을 해치리라는 지적은 오해다. 규제정책권이 부처로 넘어가도 방송통신위원회는 심의권, 규제(집행)권, 방송사임원 선임권, 사업허가권 등은 그대로 갖게 된다. 법안 제출권은 국회의 권한이지만 방통위 위원 발의를 통해서도 법안을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와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는 각론에선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큰 틀에서는 진흥을 정부 부처가 맡고, 정책과 규제를 민간 합의제 위원회가 담당해야 한다는 차원에서는 입장을 같이 하고 있다.

정동영·권영길·문국현 후보 "진흥만 정부 부처, 정책과 규제는 민간합의제위원회"

우선 정 후보는 진흥(정책)은 정부 부처가 맡되 규제(정책·집행)는 민간위원회가 담당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동영 후보쪽 대통합민주신당 정청래 의원은 한국언론학회와 스카이라이프가 지난달 30일 개최한 '2007 대선 미디어 정책 토론회'에서 "위원회가 방송정책권의 핵심인 법령 제·개정권을 갖고, 정부 부처는 진흥을 담당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는 '순수 합의제 기구' 원칙을 가장 강력하게 고수하고 있다. 또한 진흥은 정부 부처가 맡고 규제(정책·집행)와 일부 진흥을 합의제 위원회에서 담당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권 후보는 지난 11월 <미디어스>에 보낸 답변서에서 방통융합 기구개편의 원칙과 방향에 대해 "미디어 독립성과 공공성 확보, 시청자 주권 보장이라는 원칙이 제대로 구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통합기구법안의 핵심인데 이를 시급히 처리하다보니 일반 정부 부처와 같이 '독임제' 정부 부처를 지향하면서 일부 합의제 요소를 가미하는 기계적 통합으로 결국 애매한 위상이 돼 버렸다"며 "방송통신 위원 선임 및 업무 등 여러 조항에서 충돌과 불합리가 발생하게 됐다. 이렇게 해서는 자본으로부터의 미디어 독립성 담보가 요원해진다"고 지적했다.

권 후보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역무도 각 부처별 업무를 물리적으로 묶다 보니 사업진흥과 규제를 한꺼번에 다루면서 심지어 우정업무까지 맡는 등 문제가 있어 재정립이 필요하다"며 "무엇보다도 방송통신 관련 정책 및 규제기능 통합에 있어서 보다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판단에 근거할 수 있는 무소속 순수 합의제 모델에 근거해 위원 선임 및 역무가 조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문국현 후보 캠프 김동민 홍보미디어위원도 "정부는 진흥, 위원회는 정책·규제를 담당하는 방식으로 업무를 분리해야 한다"며 "방송은 시장논리에 기울지 않고 보편서비스로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 정부가 정책권을 갖게 되면 산업 논리에 기울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언론시민단체 "이명박 후보 주장은 '껍데기 독립위원회' 결과 초래"

방송통신 정책권을 정부 부처로 이관하려는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의 입장에 대해 언론계와 시민단체들은 "정부 부처가 규제 정책권을 갖고 위원회가 규제의 집행만 한다면 '껍데기 독립위원회'로 전락하게 된다"며 강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방송정책과 규제에 대한 모든 결정과 집행을 합의제 기구에서 담당하는 현재의 '위원회' 구조가 우리나라 방송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자 핵심적인 성과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선미디어연대가 발표한 '17대 대선 13대 미디어개혁 과제'에서도 방송의 독립성과 공익성을 담보할 수 있는 합의제 성격의 방송통신위원회 설치를 핵심 과제로 지목하고 있다.

독임제 요소를 배제한 독립된 합의제 위원회 구성으로 직무상 독립을 보장하고, 선임 방식에 있어서도 전문성과 대표성을 고려해 대통령이 임명하되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대선미디어연대는 "방송위원회, 정보통신부, 문화관광부, 산업자원부 등에 산재해있는 규제, 진흥 관련 업무를 단순히 나열하는 것으로는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며 "관련 산업 활성화를 위한 진흥은 독임제 부처로 이관하되 방송통신 정책과 규제 업무는 독립적인 위원회에서 담당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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