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갑질이 또 논란의 도마 위에 올랐다. 24일 자유한국당 권석창 의원이 제천 화재 현장에서 국회의원임을 앞세워 화재 현장을 통제하는 경찰과 심한 마찰을 빚었고, 경찰 고위급과의 전화 통화 끝에 현장을 들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현장은 화재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었고, 심지어 유족조차 아직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권 의원이 화재 현장에 들이닥쳤을 때도 현장은 국과수·경찰·소방관의 현장조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권 의원은 논란이 일자 의정활동의 일환이라고 주장하며 안전장비를 갖추고 경찰관 입회하에 현장을 둘러봤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현장을 담은 영상에 따르면 권 의원의 현장 진입 이유는 ‘보고’ 때문이었다. 당대표, 원내대표를 거론하기도 했다.

JTBC <뉴스룸> '금배지' 앞세워 멋대로…권석창 의원, 화재현장 출입·촬영 (보도영상 갈무리)

세월호 참사 당시 해경이 구조보다 청와대 VIP 보고에 쫓겨 아무것도 하지 못한 상황이 떠올랐다면 너무 비약한 것일까? 물론 권 의원은 제천시를 지역구로 하는 국회의원이고 다른 누구보다 관심과 의무가 많은 것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다만, 공식 조사가 진행되는 과정이고, 또 국회 차원의 조사가 필요하다면 공식절차를 거쳤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권 의원은 통화 중에 “국회의원이 못 들어가는 데가 여기뿐이다” “어차피 재난안전특위에 경찰청장 부를 거예요” 등의 고압적 언사를 써가며 충북경찰청장을 압박하는 모습이었다. 권 의원의 이런 태도는 자유한국당이 이번 화재를 소방당국과 정부의 책임으로 몰아가려는 의도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25일 “그동안 적극적으로 예산과 인력을 뒷받침만 했지 따끔한 지적이 없었다”며 현장 책임자에 대한 검찰 수사와 함께 조종묵 소장방재청장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사퇴를 요구했다. 그러나 김 대표의 말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여론이다. 정부의 소방관 증원을 반대했던 자유한국당이 예산과 인력을 뒷받침했다는 말에 기가 막히다는 반응인 것이다.

무엇보다 화재 직후 타 도 소속 소방관이 올린 글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대로 도 소속 소방본부의 열악한 인력상황이 국민들의 공감을 얻는 상황이고, 더욱이 아직 공식 조사결과조차 발표되기 전인데 무조건 현장 진화책임자에 대한 검찰수사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정치공세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런 한편 국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현장을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만난 유가족 김인동 씨는 “소방공무원 벌 절대로 주지 마세요. 인사 이동 하지마세요. 시청 공무원도 마찬가지”라고 했다고 전해졌다. 김 씨는 이어 “이런 일이 자산이다. 한번 경험을 했으니 그 사람 그 자리에 두면 얼마나 잘하겠느냐. 더 잘한다. 두 번 다시 (이런) 공부를 할 수 없다”고 문책하지 말라는 이유를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운데)가 25일 오전 제천 화재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충북 제천실내체육관을 찾아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한, 현장을 찾았던 홍준표 당대표 역시 “세월호와 똑같은 사건이다. 현장에 출동한 지휘관이 몸 사리고 제대로 대응을 하지 않으니 이런 참사가 일어나는 것”이라며 소방관의 책임을 성급히 규정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자격 없는 세월호 언급의 부적절함은 고사하고 화재 현장에서 겪는 소방관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외면한 발언이라는 비판이다.

화재 진압 후 재산권 문제로 소송을 당하는 등의 현실이 의식·무의식적으로 소방관들의 행위를 소극적으로 만드는 상황이다. 게다가 이런 소방관들의 면책범위를 넓혀주는 법안 개정안이 수천 건의 다른 법안들과 마찬가지로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발 묶여 있는 것이다. 화재 현장에서 불도저로 불법주차된 차량을 밀어버리는 장면은 외국영화에서나 가능할 뿐, 우리 현실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소모품마저 소방관이 자비로 사서 써야 하는 열악한 소방현실 속에 명색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보여준 정치공세는 언론이 섣불리 불 지른 책임론에 부화뇌동한 것에 불과하다. 그것도 모자라 갑질 논란까지 더한 것이다. 유족 전체의 뜻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소방관 등 누구도 처벌하지 말라는 피해당사자인 유족의 말이 던지는 공명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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