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벌써 옛날 가수가 되어버린 브라운 아이즈의 탄생을 알렸던 곡은 ‘벌써 일년’이라는 노래였습니다. 사랑하던 연인과 헤어진 시간이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감정의 앙금과 그 애틋함을 이야기했던 아름다운 사랑노래였죠. 하지만 우린 현실이 노래처럼 늘 그렇게 아름답지도 긍정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1년이 뭐랍니까. 십년이 지나도 기다리며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노래하던 가수도 아내와의 이혼 합의에 실패해 법정 조정에 들어가는 세상이니까요. 시간은 사람의 감정을 지우고 기억을 말소시켜주는, 기억상실을 위한 가장 강력한 특효약입니다. 특히나 기억의 축적이 빈약하고 얄팍한 한국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구요.

변화와 혁신만이 미덕인 우리에게 과거를 돌아보고 옛일을 회상하는 것은 구태의연한 늙은이, 좋았던 시절만을 기억하는 한물간 패배자나 하는 어리석은 짓처럼 취급되기 일쑤입니다. 누구나 과거로부터 배워야한다, 역사야말로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뿌리라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이를 위해 시간과 재화를 투자하고 그것을 존중하는 실질적인 행위는 하지 않죠. 전통과 국가 정체성을 중시하는 것이 존재의 이유인 우파 정부 하에서 국사는 선택으로 배워야하는 암기과목으로 전락해버렸고, TV속의 사극들은 역사적 사실 그 자체를 구현하는 것보다는 재미를 위해 의도적인 왜곡을 일삼는 것이 상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과거란 그저 거추장스러운 지나간 일일 뿐이에요. 언제나 현재, 늘 미래만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이 지금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눈앞이 핑핑 돌아가는 변화에 어지럽다 해도, 일주일 전의 일이 까마득한 옛날 일처럼 여겨지는 속도 전쟁 속에서 살아간다 해도 시간 그 자체의 절대적인 길이는 변하지 않습니다. 단지 사라졌다고, 이미 지난 일이라 생각하는 것뿐, 문제를 일으켰던 원인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불같이 격돌했던 갈등의 이유들은 해결되지 못한 체 잠시 미뤄져 있거나 잠재되어 있을 뿐이죠. 앞에서 행세하는 사람들의 면면이 바뀌었다 뿐이지 예나 지금이나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은 그 얼굴이 그 얼굴이고, 30년 전의 세상을 움직이던 이들도 여전히 건재합니다. 박정희와 전두환이 교과서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믿음은 그 당시의 각료 명단에 있는 이들의 이름과 지금 국회와 정부 요원들의 리스트를 비교해 봐도 금세 깨져버릴 순진한 생각이죠.

노무현. 대한민국 제 16대 대통령인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이제 1년이 지났습니다. 고작 1년, 365일이라는 시간이 지났을 뿐이지만 그의 이름도, 그때의 그 잔인했던 기억들도 벌써 까마득한 옛날 일처럼 느껴질 정도로 우린 열심히 숨 가쁘게 살아왔죠. 그를 지지하던 반대하던 간에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부인할 수 없는 뚜렷한 족적을 남겼던, 5년 동안 국가의 수장이었던 그의 비극적인 결말은 단순히 개인의 잘못된 선택으로 치부하며 넘어가기엔 그 상처가 너무 크고 남겨준 의미가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그 거대한 슬픔을 불러왔던 원인과 이유는 여전히 수정되지도, 개선되지도 않은 채 그냥 시간만 흘러 버렸습니다. 그 역시도 그냥 흘러만 가는, 그리고 금세 잊어버리고 마는 과거 속의 인물로만 머물러 버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2010년 5월 23일이 찾아왔습니다.

지난 1년간 어떻게 지내셨나요? 처음이라 그렇지 며칠 뒤엔 괜찮아진다며 그 시린 마음을 품고 살아가셨나요? 그가 남긴 각종 어록과 영상을 되풀이해 보며 슬픈 기억을 되살리셨나요? 아니면 무책임한 선택이라 원망하며 대통령을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왕이라 착각하며 매도하는 이들과 뒤섞여 무시와 욕설을 남기며 잊어버리셨나요? 그가 떠나며 남긴 수많은 문제들, 해결해야 하는 모순과 걱정거리들은 여전히 우리의 곁에 남아있었습니다. 그것을 외면하고 혹은 포기한 체 그저 패배감에만 휩싸여 세상을 원망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좌절하고 있지는 않나요?

언젠가 그룹 부활의 리더인 김태원이 말한 것처럼 과거는 무조건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상처투성이, 오욕과 절망이 가득한 어두운 시간이었다 해도 그 시절 역시도 지금의 자신을, 우리가 존재할 수 있게 해준 나름의 자산,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기억들이 단순한 추억이 되지 않기 위해선 잘못을 개선하기 위해 행동해야하고 움직여야하고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가 떠난 지 이제 고작 일 년. 우리에게 노무현이란 이름은 바로 그런 행동을 위한 출발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동안 잊고 있었던 그때의 아픔이 다시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 작지만 확고한 목소리를 내야 하는 시간이 되어야하지 않을까요? 2009년 5월 23일, 그때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그리고 2010년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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