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하다 싶으면 되풀이되는 기사거리가 하나 있습니다. 배꼽티 같은 노출이 있는 의상을 소화하는 그녀들을 집요하게 추적해서 굳이 뱃살 굴욕이라는 멍에를 씌우는 놀이이죠. 걸그룹 멤버들의 여러 다양한 활동을 담은 영상 중에서 특정 부분을 캡쳐하거나 현장에서 촬영한 사진을 두고 누리꾼들이 한두 마디씩 내뱉은 소일거리를 확대 재생산하는, 요즘 들어 기사가 만들어지는 주요한 경로 중 하나를 통해 만들어지는 소란 만들기에요. 2NE1의 박봄이나 카라의 구하라처럼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는 이들도 있지만, 사실 이런 가십 만들어내기의 덫에서 자유로운 아이돌은 별로 없을 겁니다.

이를 두고 나오는 구설수야 뭐 대상만 틀리다 뿐이지 늘 뻔합니다. 몸매관리도 못하는 것을 보니 프로의식이 부족하다. 간밤에 뭘 먹었는지 생각이 없다. 그런 몸매에 왜 이런 옷을 입고 나오는지 이해가 안간다. 가끔씩 그래도 인간적이고 귀엽다는 의견도 종종 눈에 띄지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의견은 그리 많지 않죠. 사진상으로 약간 볼록하게 보이는 그녀들의 뱃살은 가볍게 이야기하기 좋고, 놀리기도 쉬워 보이는 뒷담화거리니까요. 그녀들은 프로니까 당연히 그런 것쯤은 감수해야 한다는 일방적인 돌팔매질입니다.

그런데 그 한편으로는 정반대의 논란거리가 존재합니다. 언젠가 소녀시대의 트레이너의 입을 통해 약간 과장된 말이 나오고, 결국 팬들의 반발을 불러왔던 그녀들의 가혹한 식단 공개나, 카라의 멤버들이 복귀전에 했다며 털어놓은 힘겨운 다이어트 과정 같은 걸그룹의 몸매관리에 대한 안쓰러운 시선이 그것이죠. 도대체 뭘 먹고 사는지, 그렇게 음식을 섭취하고도 방송활동이 가능한 것인지 의아할 정도의 소량의 식사량과 운동 사이클은 아이돌이 아닌 고통을 감행하는 수행자를 보는 것 같은 우려와 걱정을 불러 옵니다.

이런 괴이한 충돌, 동전의 앞뒷면 같은 모순이 누구의 탓이다라고 손가락질하기가 난감한 일이기는 합니다. 점점 노래 그 자체보다는 부르는 이들의 외형적인 매력을 추구하는 기획사나 방송사의 풍조가 이런 경향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런 방향에 지지와 환호를 보낸 것은 결국 이런 이미지를 기꺼이 소비하고 있는 대중들이니까요. 남자 아이돌에게는 좀 더 관대하면서도 유난히 걸그룹에게는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시선이 밉살스럽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지적질이 여자들에게만 향하는 것만도 아닙니다. 지금은 뜨기 위해선 노래나 춤 연습만큼이나, 아니 오히려 그것보다는 몸매 만들기에 매진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 되어버린 몸짱의 세상이잖아요? 날씬한 허리, 잘빠진 다리, 혹은 강인한 근육과 명품 복근에 환호하는 목소리 뒤에는 점점 더 굶어야하고, 긴장해야 하는 젊은 소년 소녀들의 고행이 숨겨져 있습니다.

어디서 이상한 사진을 찍힐지 몰라 조금의 방심도 할 수 없이 늘 긴장상태로 무대에 올라야 하고, 평상시에도 잔뜩 배에 힘을 주고 다녀야만 하는. 그러면서도 부족한 잠, 격렬한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밥도 무대가 끝난 뒤 몰아서 먹거나 아애 걸러야 하는 잔인한 일상. 이런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프로의식이 부족하다며 몰아붙이면서도 한편에선 그들의 건강을 걱정하는 이중성. 지금 가요계를 지배하고 있는 몸짱 아이돌 세상이 만들어낸 삐뚤어진 풍경입니다.

그냥 뱃살이 좀 나오면 어떻고, 살이 좀 차오르면 어떻습니까. 전 그들을 굶기도록 강요하는 잔혹한 뱃살논란은 현재 아이돌 천하인 대중문화를 즐기는 올바른 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분명 조각같이 깎아놓은 명품 몸매, S라인으로 다듬어진 몸의 곡선이 그들을 더욱 아끼게 만든 요인 중 하나인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 이전에 우리가 아끼고 사랑해야 할 것은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가수와 퍼포머로서의 재능, 예능 프로그램마다 서툴지만 혼신을 다하는 젊은 소년 소녀들의 열정, 그리고 이런 저런 경험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가는 청춘의 생명력이 아닐까요? 찰나의 순간을 잡아낸 사진 한 장에 열을 올리며 비판하는 것보다는 그냥 있어줘서 고맙다는, 노력하는 것이 대견하다는 너그러운 마음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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