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도통 공공장소라고 해서 목소리를 낮출 교양 따윈 없는 강숙의 목청 때문에 털보 장씨는 문 밖에서 두 모녀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 항간에 신데렐라 언니를 도청 드라마라고 부르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이번에도 여지없었다. 차라리 엿듣지 않고 그냥 효선과 장씨의 대면으로 가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기왕 막판에 장씨를 좋게 묘사할 거라면 좀 더 드라마틱하게 끌고 갔어야 했다.
그전에 따져볼 것이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장씨 정도 나이의 남자라면 저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생각해볼 시간을 가져보자. 분명 어렵고 곤혹스러워 피할 것이다. 강숙과 장씨는 부적절한 관계인 것은 분명하다. 대성과 만나기 전에는 성실하지 못한 장씨의 삶 때문에 적절하지 않았고, 후에는 강숙이 어엿한 한 남자의 아내였기 때문에 부적절한 관계가 되었다. 그렇지만 아주 복잡한 부적절함이고 한편 장씨 입장에서는 억울한 구석도 전혀 없지는 않다.
털보 장씨는 못났을 뿐만 아니라 소심한 남자다. 소심한 남자는 남에게 잘 따지지도 못하지만 거꾸로 누가 따진다고 쉽게 잘못을 인정하지도 못한다. 장씨 정도의 나이를 먹은 남자라면 가진 것 쥐뿔 없어도 자의식은 강해져서 잘못했다는 말 쉽사리 꺼내지 못한다. 게다가 상대가 대성의 딸 효선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데 강숙은 그런 장씨를 잊지 못하고 몰래 만나왔다. 그 이유에 대해서 조금은 궁금증이 풀릴 수 있었다. 장씨는 의외로 따뜻한 인간미를 가진 남자였다. 남의 아픔을 받아들일 줄 알았다.
강숙을 대합실에 기다리라 해놓고 효선은 장씨와 주변 식당으로 가 막걸리 한 주전자를 시켜 놓고 앉는다. 사실 은조가 장씨를 데리고 가서 자살소동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어린시절 같이 살았던 익숙함 때문이었지만 효선이 장씨를 만나고 그리고 그 앞에서 막무가내로 죄인취급할 수 있는 것은 이미 효선이 반쯤 실성할 정도의 분노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효선의 사정일뿐 장씨가 고분고분 들어줘야 할 이유는 없다.
"내사 사람이 아이오. 마카 짐승인기라. 사람이 한 짓이 아니라 생각하소, 그라믄 쪼매 들 억울하지 않겠능교. 짐승이 하는 소리도 들어준다카믄 내 말하지예, 잘몬했소. 차마 낯빤지 뜨거버바 아가씨 부친 산소에 가 절은 몬하겠지만 아가씨가 대신 전해주소. 잘못했소. 진심이오" 한다. 진실한 사과이다. 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반전이었다. 장씨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착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 장씨를 통해서 실성할 듯한 분노에 빠져있던 효선도 어느 정도 마음이 풀어졌던 때문인지 사라져버린 강숙을 애타게 부르는 모습에서 본심이 드러났다. 엄마, 엄마, 엄마 가지마, 엄마 가지마~하고 깜깜한 역광장에서 울부짓는 효선의 눈물은 복수도 괴롭힘도 아닌 엄마에 대한 끊을 수 없는 마음, 그뿐이었다. 장씨를 만나서 효선이, 기정을 만나서 은조가 가슴 속에 놓지 못한 무거운 짐들을 조금씩 내려놓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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