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푸코는 신자유주의가 개인을 '기업가적 주체'로 만들어 버린다 경고했다. 즉, 노동자로서 결집하고 자본에 대항하여 싸우는 세력의 일부가 아니라, 개별화된 개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단련하는 자기계발의 주체가 되어 '자본주의 경쟁' 전선에 나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사회에서 부와 성공은 온전히 개인의 몫, 책임으로 전가된다는 것이다.

그런 개인에게 돌려진 책임은 사회적으로 '자기계발 열풍'을 조성했으며, 교육에 있어서 무한 경쟁을 대두시켰다. 지난 12월 18~19일 양일간에 걸쳐 방영된 <EBS 다큐프라임 - 미래人교육 2부작>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 6개국 학부모의 현실을 짚는다.

98점짜리 부모

EBS 다큐프라임 - 미래人교육 2부작

그 시작을 연 이들은 안산에서 부부 치과를 운영하고 있는 표영수-양은진 씨 부부다. 변화하는 세상에 대응할 최소한의 힘을 키워주고 싶다는 이들 부부의 소망은 '아빠 학교'로 귀결된다. 아빠가 병원에서 퇴근한 후 열리는 이 학교의 선생님은 아빠, 학생은 이들 부부의 연년생 두 아들이다. 말로는 최소한의 힘이라고는 했지만, 아빠가 치과를 운영하는 건물을 물려주겠다는 야무진 상품이 걸린 두 형제의 레이스이다. 방식은 아빠가 공부했던 80년대 학습지 위주의 수학 문제풀이와 단어 외우기부터 시작하는 영어 교육 방식. 경쟁 상대가 되어버린 형제 학습의 결과는 부모가 바라는 바를 이루지 못해 눈물짓는 형의 슬픔으로 귀결된다.

우리나라에 아빠 학교가 있다면 싱가포르에는 엄마 학교가 있다. '은수저'로 태어난 자신들은 노력을 통해 성취할 수밖에 없다는 부부의 절실한 현실 인식은, 결과에 따라 인문계 진학이 갈리는 싱가포르 초등졸업시험(PSLE)을 향한 총력전으로 이어지고 회초리까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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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라고 다를까? 독일 바이에른 주, 교육 심리학자인 엄마 한나가 코치가 되어 축구장을 누빈다. 프로 축구 선수가 꿈인 아들을 독려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정작 엄마가 바라는 건 의사인 할머니, 비행사인 사촌을 롤모델로 아들이 성공적으로 김나지움에 진학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학업 성적은 물론,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 레슨 등 과외 활동까지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챙기려 한다.

몽고 울란바토르의 엑시글랭의 부모는 부모 세대가 누리지 못한 것들을 자식에게 누리도록 하기 위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의사를 만들기 위해 '맹모삼천지교'를 실천하는 건 물론 걸음마를 떼면서부터 평균 3개 정도의 학원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인도의 교육열도 만만치 않다. 케랄라 주의 장거리 열차 운전수인 아버지는 한 달에 한번 정도 집에 들르지만, 그때마다 딸과의 수학 수업을 하느라 부녀간의 정은커녕 언성만 높아지기 일쑤이다. 11살짜리 딸의 교육을 위해 대학도시 명문 학교로 전학까지 시킨 부부는 아빠는 학습, 엄마는 양치부터 숙제까지 리모컨으로 조정하듯 딸의 일상을 책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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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비롯한 이들 세계 각국의 부모들은 자신들이 98점짜리 부모라 생각한다. 왜 98점일까? 아이의 미래를 위한 자신들의 계획과 그에 따른 관리, 그것이 성공적인 아이의 대학 입학, 원하는 직업으로의 성취로 이어졌을 때 나머지 2점이 채워지기 때문이다. 이들 부모는 엄마 아빠처럼 성공적인 어른이 되기 위해서, 혹은 엄마 아빠가 미처 가지지 못한 것들을 위해 아이의 미래를 담보로 삼는다. 그래서 놀고 싶은 혹은 쉬고 싶은 아이들에게 단호하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야'라고 선언하고, 아이들은 그런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자책하거나 슬퍼한다.

실험 결과는 흥미롭다. 작은 s자로 이루어진 큰 대문자 H. 그 문자를 본 이들 부모들은 대부분 작은 s에 주목한다. 즉, 눈앞의 작은 것들이 이들의 시선과 관심을 빼앗는다. 그런가 하면, 똑같은 3분을 측정하는 실험에서도 이 부모들의 특징은 드러난다. 부모의 시간은 아이의 시간보다 빨리 흐른다. 똑같은 1년이라도, 아이의 1년이 부모들에게 압박감으로 다가온다.

이런 교육이 미래에도 유효할까?

그런데 여기에는 유보된 질문이 있다. 이런 공부, 이런 성취, 이런 직업이 ‘미래’에도 유효할까란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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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의 표영수 씨 부부도, 독일의 엄마 한나도, 몽골 엑시글랭의 부모도 아이에게 바라는 건 '의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2017년의 중학생, 2037년에 33살이 된 주인공이 사는 시대에 의사는 '인공 지능'이 대체한다. '의사'가 필요 없을지도 모를, 상당수의 전문직이 사라질 위기의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하는데, 여전히 의사가 되라며 아이의 시간을 아이의 삶을 통치하고 관리하는 부모들. 이게 과연 현명할까?

이른바 학부모의 치맛바람은 교육의 탄생과 함께 대두된 문제이다. 하다못해 서당 시절에도 치맛바람은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에 대한 비판과 비난도 교육의 역사만큼이나 유장하다. 이미 경쟁 우선주의의 교육 시장에서, 아이의 자율성을 무시하는 부모들의 일방적인 교육 방식은 '인권적' 차원에서 지적받아 왔던 바가 크다. 하지만 비인권적이라 해도, 그렇게 닦달해서 좋은 상급학교를 보내고 입신양명을 하면, 그래도 다 '남는 장사'가 아니겠냐는 것이 우리 사회의 지금까지 인식이었다. 그러기에 아이들이 못 견디겠다 아우성을 치고 스스로 목숨을 거두어도 여전히 '교육 열풍'은 잠재워지기는커녕, 해를 넘길수록 그 경쟁의 도를 더하게 되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2부작 다큐는 바로 그런 '남는 장사'에 의문을 제기한다. 지금 당신들이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시작하는 그 교육이, 자식을 ‘관리’하는 그런 방식이 외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아이의 앞길을 망치는 것이라면? 하고 문제를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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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4차 산업혁명이 무엇이기에 지금까지의 교육 방식이 의미가 없다는 것일까? 아마 그건 무엇이기에가 아니라 ‘무엇이 될지 모르기에’라는 것이 정확한 답이 될 것이다. 즉, '디지털 혁명에 기초하여 물리적 공간, 디지털적 공간, 생물학적 공간의 경계가 희석되는 기술융합의 시대'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모른다는 것이다. 전문직의 상당수가 없어진다고 하는데, 어떤 직업이 없어지고 어떻게 변화할지 감조차 정확하게 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변화하는 세상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실패'하는 것이다. 대양에 흔들리는 부표처럼, 미래라는 부표를 따라 불안한 파도에 자신을 내맡길 수 있는 적응력, 바로 그것이 다큐가 말하고자 하는 바 ‘미래人’이다.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에게 요구되는 건 '회복 탄력성, 창의성, 소통력, 비판적 사고, 협업 능력, 복합적 문제해결능력, 유연성'이라 정의 내린다. 과연 앞서 등장한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학습 중에 이런 내용이 들어있을까?

지금처럼 경쟁 위주의, 너 하나 살아남으면 장땡인 시험을 통한 성취지향적 교육 시스템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헛다리를 짚고 있는 것이라 다큐는 말한다. 실패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미래의 불확실성을, 삶의 혼란을 적극적으로 헤쳐 나갈 인재를 필요로 하는 시점에서 부모에 의해 수동적으로 키워진 인재는 적응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즉, 경쟁주의에 매몰된 부모들에게 다큐는 말한다. 당신들의 교육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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