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바른정당과의 통합 '강행'을 선택했다. 안 대표는 27~2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케이보팅시스템을 통해 온라인투표, 29~30일 ARS 투표 방식으로 전 당원을 대상으로 통합 찬반투표를 진행한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안 대표가 보여준 통합 추진 방식은 '제왕적 당 대표'라는 비판을 사기에 충분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연합뉴스)

안철수 대표의 바른정당과의 통합 시도에 대한 평가는 틀린 방향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정치에 정답도 없거니와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정책적 방향이 크게 다르지 않고, 제3당으로서 문재인 정부를 견제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힘을 키워야 하는 필요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국민들도 양당제보다는 다당제를 원하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결국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 잡음을 최소화하고 시너지를 일으켜 한국 정치에서 역할이 있는 제3당을 만들어낼 것이냐는 거였다.

그러나 안철수 대표는 바른정당과의 통합론을 흘려놓고, 시기를 재다가 기습적으로 전 당원 투표를 발표하는 방식을 택했다. 정면돌파도 아니고, 전략적이지도 못한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안 대표는 지난 10월부터 언론에 국민의당 싱크탱크 국민정책연구원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흘리기 시작했다. 10월 18일 조선일보에 흘린 여론조사를 시작으로 국민의당이 실시한 조사에서는 바른정당과의 통합이 시너지를 일으킬 것이란 결과가 잇따라 등장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당내 의견 수렴은 없었다는 점이다.

의견 수렴이 없었던 만큼 안철수 대표가 이러한 여론조사 결과를 흘리자 당내에서 반발 여론이 일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특히 박지원, 정동영, 천정배 의원으로 대표되는 호남 중진 의원들은 안 대표의 통합 추진에 강하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안 대표는 부랴부랴 의원들을 1대1로 만나러 다니기 시작했지만, 이미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에서 의미 있는 성과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 대표가 여론조사 결과를 언론에 흘리기에 앞서 적극적으로 당내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는 게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당론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통합 드라이브를 건 것도 문제다. 20일 오후 2시 국민의당은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두고 의견 수렴을 위한 의원총회가 예정돼 있었는데, 안 대표는 불과 3시간 정도를 남긴 오전 11시 15분에 기습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전 당원을 상대로 통합 찬반투표를 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심지어 안철수 대표는 오후 열린 의원총회에는 참석도 하지 않았다. 안 대표는 "이미 입장을 밝혔으니 의원들의 뜻을 모아달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20일 오후 의원총회에서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이 안철수 대표의 의총 출석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호남 중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안철수 대표의 기자회견을 '알박기'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정동영 의원은 "어디서 배운 정치냐. 어서 오라고 하라"고 했고, 유성엽 의원은 "끌고 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과정에서 안 대표의 비서실장인 송기석 의원이 "그렇게 말씀하지 마라"고 하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했다.

안철수 대표의 기자회견 내용도 문제였다. 안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당원과 지지자들의 의사를 확인하고 있는 시간에 일부 중진 의원은 근거를 알 수 없는 호남 여론을 앞세워 당 대표 재신임을 요구했다"면서 "당원과 지지자들의 절박한 뜻을 왜곡하는 행위를 멈추고, 당내 혼란을 조속히 정리하고 마음을 모아야 할 때"라고 했다. 또 "국민의당이 앞장서서 김대중 정신을 호도하는 구태정치, 기득권 정치를 끝내야 한다"면서 "우리 당이 구태정치와 결별하고 통합, 미래의 길에 오를 수 있도록 국민의 관심과 당원의 지지가 절박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기자회견 내용은 안철수 대표가 호남 중진 의원들을 '구태'로 매도하고, 김대중 정신을 모독했다는 원성을 사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국민의당 의원총회에서는 안 대표에게 "기자회견 중 호남 정치인을 구태정치인으로 매도한 안 대표의 사과를 요구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결국 안 대표의 독단적인 판단과 밀어붙이기식 통합시도가 당내 분란만 가중시킨 셈이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국민의당의 지지기반이 누가 뭐래도 호남이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당은 호남에서 10% 내외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나마 지지율이 나오는 지역이 호남이고, 현역 지역구 의원들 대부분이 호남 지역구를 기반으로 하는 의원들이다.

그런데 안철수 대표가 국민정책연구원을 통해 실시한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바른정당과의 통합의 효과가 가장 미미한 곳 중 하나가 호남이다. 호남에 지역구를 둔 호남 중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반대여론이 이는 이유다. 당장 지방선거가 6개월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는 쉽지 않다는 위기감이 호남 의원들 사이에 돌 수밖에 없다.

이처럼 안철수 대표의 통합 추진은 매끄럽지 못했고, 절차적, 현실적 문제의 소지가 다분했다. 그러나 어찌됐든 안철수 대표의 독단으로 바른정당과의 통합의 시계는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안 대표가 찬반투표가 시작되는 27일 전까지 호남 의원들의 이탈을 얼마나 막아내느냐가 관건이다. 안 대표가 공언한 대로 제대로 된 제3당을 만들고 수권정당으로까지 올라서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제왕적 당 대표의 모습에서 벗어나, 호남 의원들을 아우르는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안 대표가 추진한 바른정당과의 통합은 상처뿐인 영광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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