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의 아랍에미리트(UAE) 방문 일정을 두고 여야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연일 목소리를 높이는 자유한국당의 행보에 보수언론이 엄호사격을 하고 더불어민주당이 이에 맞서는 동안 국민의당이 중간에서 ‘좋은 소리’하는 형국이다.

이 의혹은 애초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제기한 것이다. 임종석 실장이 대통령 비서실장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외국을 방문한 이유가 무리한 ‘적폐청산’의 부작용을 수습하기 위해서라는 내용으로 그간 자유한국당이 주장해 온 정치보복론의 다른 버전이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문재인 정권과의 투쟁을 내세웠는데 시기상으로 보면 ‘첫 작품’인 셈이다.

이 이슈에 인화성이 가미된 것이 단지 야당의 정치공세 때문만은 아니다. 문재인 정권에 대한 보수세력의 거부감을 키우는 요인인 핵발전소 문제가 결부되면서 파장이 더 커진 측면이 있다. 김성태 원내대표와 보수언론은 애초 문재인 정권이 이명박 정권의 원전수출이 연속성을 갖지 못하게 될 것을 우려한 UAE가 ‘국교단절’까지 언급하며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우려’는 원전수출 과정에서 이명박 정권의 비리를 조사하다가 UAE 왕정의 어떤 비밀스러운 영역을 건드렸기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정책을 UAE가 성실하지 못한 태도로 간주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이런 프레임대로 하면 허술하게 탈원전정책을 결정하고 추진하는 문재인 정권이 정치보복에 눈이 멀어 수십조 원의 국부를 날려버릴 위기에 처했다는 서사도 가능해진다. 실제 자유한국당 지지층 사이에선 이런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실정일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정책이 해외에 수출한 원전 또는 관련 기술에 대한 방치 내지는 외면으로 당장 이어질 거라는 주장은 정치공세일 뿐이다. 오히려 진지하게 탈핵을 주장하는 시민사회 일각에선 문재인 정권의 정책적 의지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표현할 정도이다. 또 이명박 정권 시절 원전수출 과정에 어떤 비리가 있다는 의혹이 실제 존재한다면 그것은 UAE 측과 성실히 협의해서 수사를 해 진실을 밝혀야 할 성격의 것이지 왜 타국에 폐를 끼치느냐고 면박을 줄 일이 아니다. 따라서 자유한국당의 공세는 과도한 측면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수석부대표가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일정 협의 없이 자유한국당에서 일방적으로 회의를 개회했다며 항의할 때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물을 한 잔을 주고 있다. (연합뉴스)

그럼에도 지적할 수밖에 없는 것은 꼭 정치공세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임종석 실장의 중동 방문 일정에는 석연찮은 부분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애초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아크부대 등을 격려차 방문하려 했으나 일정이 맞지 않아 임종석 실장을 대신 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의혹이 커지자 19일 청와대는 다시 “국가간 파트너십 강화가 목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애초 설명보다 중요도가 더 높은 일정이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국회 운영위 출석을 요구하자 임종석 실장은 휴가를 내버렸다. 청와대는 연차 휴가 문화 정착을 고려하는 입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휴가와 겹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급히 결정한 것이라고 했지만 명쾌하고 시원한 설명은 아니다. 어쨌든 임종석 실장의 UAE 방문 배경에 뭔가 특이한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는 추론은 합리적이다. 아마 외교적 문제 등으로 당장 밝힐 수 없는 이유가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차후에라도 적절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와는 별개로 자유한국당의 정치적 목적을 짚어볼 필요도 있다. 김성태 원내대표가 처음 이 문제를 제기한 배경은 물론 문재인 정권과 각을 세우고 투쟁 의지를 고취시키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결국 국회 운영위원장 문제가 배경에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회 운영위원장은 여당 원내대표가 맡는 것이 관례이다. 피감기관에 청와대가 포함되는 만큼 운영위원장이 정권을 수비하는 일종의 골키퍼 역할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 총선 결과가 여소야대로 귀결됐음에도 자유한국당은 이 관례를 내세워 운영위원장 자리를 유지했다. 당시 합의는 정권이 바뀐 이후에도 유지됐지만 최근 정우택 원내대표 임기가 종료되면서 자연스럽게 운영위원장 교체 문제가 도마에 오르게 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정권이 바뀌었고 운영위원장을 교체할 사유가 생겼으니 만큼 관례대로 여당이 운영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자유한국당은 정권 교체 이후에도 정우택 전 원내대표가 운영위원장을 유지해온 만큼 김성태 원내대표가 운영위원장직을 승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양쪽 모두 근거가 없지는 않지만 그간의 관례를 포함해서 순리대로 하자면 자유한국당이 운영위원장 자리를 여당에 양보하고 다른 상임위원장 자리를 포함한 정치 협상에 나서는 게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은 누가 뭐래도 운영위원장 자리를 내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사상 초유의 ‘평의원 운영위원장’ 시대가 지속되고 있다. 이 시점에 김성태 원내대표가 임종석 실장 의혹을 꺼낸 것은 이러한 정치적 무리수를 합리화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자신들이 청와대를 겨냥한 의혹을 제기하는 와중에 여당이 운영위원장 교체를 요구하는 것은 청와대를 감싸기 위한 것으로서 일종의 정치공세에 불과하다는 논리를 내세우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자유한국당의 이러한 고집은 국회 운영위원회를 정권과 여당을 공격하고 각을 세우는 장으로 활용하면서 지방선거 구도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자는 데에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방선거는 보통 정권의 중간평가 성격을 갖는 걸로 해석돼왔고 그렇기에 대개 야당은 ‘정권 심판’을 슬로건으로 걸고 선거에 대응해왔다. 특히 이번 선거의 경우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반성이나 혁신을 할 수도 없어 오로지 문재인 정권 심판 구호로 야권을 묶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시피 하다.

국회 내의 개헌 논의 역시 비슷한 논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자유한국당이 개헌 논의에 소극적으로 임하면서 사실상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를 진행하는 안을 반대한다면 개헌특위를 종료하고 대통령 발의권을 행사하도록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자유한국당은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치르는 방안에 사실은 반대하지만 ‘개헌 반대 세력’으로 몰리는 게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개헌특위 연장을 주장하는 중이다.

그러나 이대로 가면 가장 유력한 그림은 여야 합의가 필수적인 권력구조 개편 등이 빠진 대통령안이 국민투표에 부쳐지는 형태로 개헌 논의가 종결되고 권력구조 개편과 연동돼 논의됐어야 할 선거구제 개혁 등의 제도개선 논의는 사실상 실종되는 것이다. 앞의 국회 운영위원장 문제까지 묶어서 보면 결국 자유한국당 식의 정치공학적 논리에 국가의 중대사가 파탄적 영향을 받게 되는 셈이다. 이는 어떻게 봐도 바람직한 정치 행태라고 할 수가 없다. 지금이야 단기적인 정치적 이익이 될지 모르지만 이런 무책임한 정치는 결국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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