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조원희와 강민수(이상 수원), 그리고 김치우(서울)는 대표팀의 주축 자원이었습니다. 또한 황재원(포항) 역시 호시탐탐 대표팀 기회를 엿보며 기량을 쌓았고, 월드컵 본선 진출의 분수령이 됐던 북한과의 월드컵 최종예선 5차전에서 허정무 대표팀 감독의 부름을 받는데 성공했습니다. 저마다 좋은 기량을 갖춰 대표팀의 붙박이 자원으로 거듭났던 그들은 1년 뒤, 누구나 서보고 싶어하는 그 무대 월드컵 본선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하지만 1년이 지나고 월드컵 본선을 25일 앞둔 17일, 월드컵 본선에 출전할 2차 26명 엔트리 명단이 발표됐을 때 이들의 명단은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모두 부상, 경기력 저하 등을 이유로 경쟁에서 밀리며 결국 마지막에 가서 탈락의 고배를 마신 것입니다. 2박 3일의 외박 후 19일에 다시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의 정문을 들어서고 싶어 했던 꿈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허정무 감독 역시 너무나도 안타까운 마음에 진심어린 마음으로 "인간적으로 미안하다"고 할 정도로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엔트리였지만 이들은 결국 다음 월드컵을 기약해야 하는 형편이 됐습니다.

사실 1년 전까지만 해도 이들이 한국 축구대표팀에 남긴 성과는 대단했습니다. 조원희는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 김정우(광주)와 치열한 주전 경쟁을 벌였던 선수였습니다. 김정우에 무게추가 기울어지기 전까지 조원희는 투지 넘치는 수비와 활발한 공격 가담 능력을 앞세워 월드컵에서 활약할 자원으로는 충분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의 능력을 인정한 해외팀들 역시 잇따라 러브콜을 보냈고, 결국 '축구 종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위건 어슬래틱에 입단해 그야말로 성공 가도를 달리는 듯 했습니다.

▲ 함께 몸을 풀고 있는 차두리(좌)와 조원희(우) ⓒ대한축구협회
강민수는 독일월드컵 이후 핌 베어벡 감독이 야심차게 키웠던 중앙 수비수였습니다. 최진철의 은퇴로 중앙 수비진에 구멍이 생긴 상황에서 파워풀하고, 세트 피스시 공격 가담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인 강민수를 키운 것입니다. 그 덕에 강민수는 2007 아시안컵에서 김진규와 철벽 수비진을 구축하며 모든 경기를 뛰었고, 최근까지 중앙 수비수 가운데 가장 많은 A매치 출장수를 기록하며 커리어를 쌓고 있었습니다. 최종예선 기간에도 온갖 비판을 들어가면서 조용형과 파트너를 이뤄 활약하는 등 강민수의 입지는 누구도 건들지 못할 만큼 대단했습니다.

김치우 역시 베어벡 감독의 지휘 아래 부쩍 성장한 뒤, 허정무호 초기에 '김치우 시프트'라는 키워드가 나올 만큼 핵심 전력으로 자리매김하며 중요 자원으로 거듭났습니다. 특히 북한과의 최종예선 홈경기에서 천금 같은 프리킥 골로 결승골을 기록하며, 월드컵 본선에 오르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해내면서 그의 입지는 더욱 굳어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날 경기에 선발 출장한 중앙 수비수 황재원 역시 개인적인 아픔을 딛고 나름대로 제 몫을 다 해내면서 잇따른 주전 부상, 부진 등으로 고민에 빠져 있던 중앙 수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선수로 기대됐습니다.

그러나 이들 모두 적절치 않은 시기에 부상과 부진한 모습으로 발목이 잡히면서 결국 낙마하고 말았습니다. 먼저 김치우는 스포츠 헤르니아(탈장)로 지난해 6월 수술을 받은 뒤 좀처럼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며 전력에서 이탈했습니다. 또 조원희는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하기는 했지만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해 실전 감각이 떨어지면서 자신의 강점을 보여주는데 실패했고, 강민수 역시 수원 이적 후 전혀 팀에 녹아들지 못하면서 부진에 빠지며 마지막에 가서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1년 1개월 만에 기회를 얻은 황재원의 경우, 조금은 안타깝게 떨어진 케이스로, 에콰도르와의 마지막 국내 모의고사에서 2-3차례 결정적인 실수를 범한 것이 화근이 돼 결국 불안감을 가져다주며 엔트리에서 떨어졌습니다. 모두 기량은 좋지만 현 상황에서 최상의 경기력을 갖춘 선수를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요구조건에 미치지 못하면서 월드컵 출전의 꿈을 잃게 됐습니다.

탈락한 선수들의 마음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아플 것입니다. 지난 독일월드컵 때 최종엔트리에 오르지 못했던 차두리는 그 당시를 회상하며 "축구를 정말 하기 싫었을 만큼 마음이 아팠다"고 말한 바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몇몇 선수에게는 "빠져서 속이 시원하다", "정말 잘 됐다"는 반응을 보인 팬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물론 선수에 대한 비판, 비난, 그리고 엔트리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선수 생활을 하고, 월드컵 후 곧바로 열리는 아시안컵에도 참가할 수 있는 선수들에 이 같은 '악성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다지 유익해보이지 않다는 것이 블로거의 생각입니다. 이들 역시 월드컵 본선에 오르는데 나름대로 역할을 했던 선수들이고 허정무 감독의 말처럼 충분히 앞으로도 태극전사로 활약할 가치가 있는 선수들이기 때문입니다. 선수 개인에게 정말 영광스러운 무대이자 꿈이라 할 수 있는 월드컵에 나서지 못한 것은 아쉽고 안타깝겠지만 많은 팬들의 격려 속에 아픔을 딛고 다시 시작하는 4명의 선수, 조원희, 강민수, 김치우, 황재원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살아남은 26명의 태극전사들, 또 허정무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에게도 역시 무조건적인 비판, 편견보다는 격려를 보내는 성숙한 팬들의 모습을 더 많이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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