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표팀의 허정무 감독 ⓒ대한축구협회
7개월 만에 국내에서 열린 A매치 평가전은 시작 전부터 뭔가 달랐습니다. 남아공월드컵이 얼마 남지 않아서였는지 평소 A매치보다 더욱 붉게 물들어진 모습은 월드컵이 정말로 다가왔음을 물씬 느낄 수 있었고, 붉은 기운이 토해내는 열정은 정말 뜨겁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 열정에 걸맞게 우리 태극전사들은 시원한 골잔치로 결전의 땅을 향해 가는 첫걸음을 가볍게 내딛으며, 좋은 모습을 팬들에게 선사했습니다.

16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표팀 출정식 겸 에콰도르와의 평가전에서 허정무호 축구대표팀은 조금은 짧은 훈련, 그리고 완벽하지 않은 경기력에도 이승렬, 이청용 등 젊은 피의 잇따른 골에 힘입에 2-0 완승을 거두면서 지난 3월 코트디부아르와의 경기에 이어 2경기 연속 2-0 승리의 기쁨을 맛봤습니다. 기분 좋게 경기를 마친 태극 전사들은 경기 직후 가진 출정식에서 비교적 밟은 모습으로 관중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 월드컵에서의 선전을 다짐하는 굳은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일단 이날 경기 자체가 조직력을 다지는 것보다 엔트리를 걸러내기 위한 선수 점검에 목적을 뒀던 경기였다보니 유기적인 전술, 호흡보다는 개개인의 역량이 어느 정도 잘 드러났던 경기가 아니었나 생각됐습니다. 허정무 감독은 해외에서 온 선수들 다수의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어서 크게 무리시키지 않는 모습을 보였고, 대신 국내 선수들 가운데 어느 정도 점검이 필요하다고 본 선수들을 대거 투입시켜 경쟁력을 갖췄는지, 또 새로운 카드로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점검을 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선 비교적 합격점을 줄 만 한 모습을 보였다고 봅니다.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선수들은 '젊은 피' 20대 초반의 선수들이었습니다. 주어진 시간동안 임팩트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원했던 허정무 감독의 기대에 100% 충족시키는 모습을 보이며 남아공에서의 활약 가능성을 보였습니다. U-20 월드컵대표부터 시작해 올 1월부터 성인 대표팀에도 모습을 드러낸 이승렬(서울)은 투입된 지 6분 만에 정확한 득점 본능으로 선제 결승골을 집어넣으며, 원활한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또한 이청용(볼튼) 역시 피곤한 몸상태에도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보여주며 공격의 활력소가 됐고 결국 추가골을 넣는 주인공이 되며, 경기장을 찾은 6만 2천 여 관중들을 흥분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밖에도 김보경(오이타)과 구자철(제주) 역시 짧은 출전 시간이었지만 동료 선수들과 유기적인 호흡을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생존 경쟁에서도 일단 살아남을 가능성은 높아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허정무호의 절대적인 존재라 할 수 있는 해외파들의 활약도 단연 돋보였습니다. '주장' 박지성(맨유)은 45분간의 평소보다 짧은 출전 시간이었지만 자신의 전력을 다 보여준 것이 아니었음에도 감각적인 움직임과 날카롭게 찔러주는 패스 등 기술적인 면에서 보다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주며, '달라진 맨유'에서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홈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또 차두리(프라이부르크)는 오랫동안 경기를 뛰지 못해 실전 경험이 많이 떨어져 있을 것이라는 우려를 잠재우고, 공-수 양면에서 모두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면서 괜찮은 활약을 보여줬습니다. 그밖에 중앙 수비의 곽태휘(교토)도 터프한 수비로 상대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면서 지난 2월 동아시아컵 중국전에서 보인 실수를 완전히 만회했고, 기성용(셀틱)도 나쁘지 않은 경기력을 보이면서 핵심 자원임을 재확인했습니다.

'무명 선수'들의 활약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지난해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주역인 김재성과 신형민이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이들은 K-리그에서는 상당히 좋은 경기력을 갖춘 선수로 정평이 나 있지만 국가대표에는 올 1월부터 이름을 올려 조금은 생소하게 느껴지는 축구팬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꾸준하게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며 허정무 감독의 신뢰를 받았고, 에콰도르전에서 폭넓은 움직임과 감각적인 기술을 앞세워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며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신형민은 미드필더 가운데 유일하게 풀타임을 소화했으며, 김재성 역시 부상만 아니었다면 풀타임 활약이 가능했을 만큼 두 선수의 성장은 향후 허정무호 전력 향상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경기를 이겼고, 선수 개개인의 활약은 아주 돋보였던 경기였지만 조금은 아쉬웠던 모습도 있었습니다. 선수들의 컨디션이 전반적으로 최상이 아니다보니 간혹 잔실수가 눈에 보이기도 했고, 손발을 맞춰볼 수 있는 시간이 적어 유기적인 플레이에서도 다소 떨어진 모습을 보인 것은 아쉬웠습니다. 또한 상대팀 에콰도르가 국내파 선수를 위주로 진영을 갖춰 월드컵 예선에서 보여줬던 강력한 모습보다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경기력을 보여줘 월드컵 본선 상대를 가상한 제대로 된 평가전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던 경기가 아니었나 생각됐습니다.

그래도 경기를 이긴 것은 분명히 의미가 있고, 최상의 컨디션이 아님에도 조금씩 손발을 맞춰보면서 전술적인 면에서 선수들끼리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해보려 했던 모습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조용형을 주축으로 한 수비 조직력은 이전의 불안한 모습보다는 분명히 나아진 모습을 보였고, 미드필더에서 '주전-백업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박지성과 염기훈이 서로 위치를 바꿔가면서 상생하는 플레이를 선보인 것은 꽤 괜찮았던 새로운 시도였다고 봅니다. 이승렬의 활약과 컨디션이 회복된 염기훈의 가세로 가용할 만 한 공격 옵션이 늘어난 것도 에콰도르전에서 얻은 허정무호의 성과였습니다.

허정무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것이 마지막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고 본다"면서 더 나은 팀을 만들기 위한 당찬 포부를 밝혔습니다. 선수들의 기량, 능력이 충분히 있고, 이 선수들이 잘 뭉쳐지면 어떤 강팀과 상대해도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일단 본선을 향한 첫걸음은 이렇게 기분 좋게 뗐습니다. 남미 팀에 약하다는 징크스를 완전히 털어버리고, 남아공월드컵 본선을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은 허정무호의 항해가 순탄하게 이어질 것만 같은 기대감이 더 컸던 에콰도르전이 아니었나 생각됐습니다. 이 상승세가 앞으로 계속 지속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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