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2일 KBS <TV, 책을 말한다>의 한장면이다.

MBC <메리대구공방전>의 '대구'는 지난 11월 14일 어떤 일기를 썼을까? 어쩌면 '사부님 TV등장하셨다'는 감격을 세페이지쯤 썼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나도 더욱 훌륭한 무협작가가 되어야지!"하는 각오도 슬쩍 넣었을 것이다.

그날 <TV, 책을 말한다>는 '무협, 삼류의 경계를 허물다-김용의 사조 영웅전'편을 방송했다. 이는 파격이다. 그동안 <TV, 책을 말한다>는 어려운 인문사회과학 도서만 인정(?)한다는 편견을 깨고, 무협에도 손을 뻗쳤다. 거기에다 홍콩까지 날아가 무협 소설의 대가 김용 선생을 만났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팬들은 "누구랑 누구랑 싸우면 누가 이겨요?"와 같은 핵심질문을 던져 시청자를 후련하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아마도 '대구'가 기뻤던 이유는 세상이 무협소설을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라 '소설'로 존중하고 대접하는 걸 보면서, 그도 새로운 목표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12일 <TV, 책을 말한다>는 연말 시상식을 열었다. 레드카펫을 깔고 '올해의 책'들을 선정했다. 수상목록을 보면서 자신은 읽은 책이 하나도 없다며 기죽을 필요는 없다. 책은 모두 나오는 순간 '어제의 책'이 된다. 독서까지 타인과 경쟁할 필요는 없다.

<TV, 책을 말한다>는 '백수가 사랑한 책', '60대 노부부들의 필독서', '국회에서 가장 많이 본 책' 등의 주제로 특별상도 만들었다. 홈페이지(www.kbs.co.kr/1tv/sisa/book) '책말 검색'코너에서 명단을 확인할 수 있다.

방송에 따르면 1년에 5만권 이상의 책이 출간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람이 아니라 거꾸로 책들이 시상식을 연다면 누가 감사패를 받을까?

온라인서점? 책들을 쉽게 구매할 수 있게 만들어 책과의 거리를 좁혀주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온갖 할인제도와 끼워팔기를 남발하는 바람에 오히려 책 만드는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도서정가제가 강화되니 좀더 지켜본 후에 상을 주자.

대형서점도 고맙긴하다. 최근 서점들은 단순한 서점이 아니라 지역내의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을 모색중이다. 옷가게에서 모든 옷을 다 입어 보면 점원의 눈치가 보이지만, 서점에 있는 모든 책 다 읽어 본다고 욕하는 사람은 없다. 안 사도 된다. 대신 욕심이 너무 많다. 도시 여기저기에 다 세우는 바람에 작은 서점이 몽땅 죽었다. 그러니 굳이 상을 줄 필요가 없다.

동네서점이 중요하다. 퇴근길, 혹은 저녁먹고 들려볼 서점이 필요하다. 하지만 가보면 학습서나 베스트셀러만 진열되어 있다. 전문서점이 많아졌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다간 운영이 어려운 모양이다. 대학 앞 서점도 거의 없어진 마당이니 이해도 간다. 대상자가 너무 적다보니 패스해야 한다.

도서관? 그래 도서관이라면 상받을 자격이 있겠다. 특히 어린이도서관은 많이 생기는 추세다. 잘 활용하면 어른들이 이용할만한 제도도 많이 생겼다. 요즘은 주민들이 주문하는 책을 우선 구입하는 좋은 도서관도 많다. 하지만 가보면 도서관을 '독서실'로 이용해 수능이나 고시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정작 책읽는 사람들이 너무 한가해 보인다. 이걸 누구를 탓하겠는가. 더구나 도서관이 만족스러울정도의 숫자로 있는 건 아직 아니다. 정부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상징적으로 상을 미루겠다.

책을 많이 구입한 사람? 요즘 거실에 있는 TV까지 치우고 서재를 꾸며 책을 읽는게 유행이라던데 그거 좀 부담스럽다. 좋은 책, 나쁜 TV만 있는 게 아니다. 나쁜 책도 있고, 좋은 TV도 많다. 사고력이 어디 책만 읽어서 만들어지겠는가? 책을 외롭게 만들지 말라. 수백권을 책을 사서 장식품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에게 섭섭하다.

출판사? 나를 태어나게 해줘서 고맙다. 정말이다. 하지만 염치불구하고 부탁하나 하련다. 제발 나를 고도비만으로 만들지 말아달라.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날씬한가. 그게 비해 힘은 또 얼마나 없는지 잘 알고 있지 않는가? 망치 대용도 아닌데 너무 무겁다. 그리고 너무 좋은 종이를 사용하다. 낭비다. 얼마전 방송된 <불만제로>를 보니 우리나라 책들은 들고다니다가 골병나기 딱 좋겠더라. 여행책 무겁게 만드는 게 제일 어이없다. 다수의 책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수상자 명단에서 제외한다. 그래, 우리 불효자다.

결국 당신에게 주겠다. 공동수상을 남발하련다. 책을 읽어준 모든 독자들에게 주겠다. 돈 주고 사서 읽어도 좋고, 서점에서 읽어도 괜찮고,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사람도 고맙다. 1년에 한권만 읽은 사람도 물론 준다. 책을 박제된 장식품이 아니라 잠시라도 인생의 동반자로 여겨준 사람이라면 모두 상받을 자격이 있다.

물론 복사해서 읽은 사람은 제외다. 선은 지켜달라. MP3만 비판받을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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