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으로 축구에 대한 열기가 서서히 무르익어가는 가운데, 또 다른 축구 국가대항전이라 할 수 있는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서 경사스러운 일이 터져 나왔습니다.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한 K-리그 4팀이 전원 8강에 진출하는 사상 최초의 쾌거를 달성했기 때문입니다. 수원 삼성, 성남 일화가 먼저 포문을 연 데 이어 포항 스틸러스가 그 뒤를 이었고, 전북 현대가 호주 애들레이드를 극적으로 따돌리고 8강에 올라 K-리그는 동아시아판을 완전히 장악하는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단판 승부로 모든 것이 끝나는 챔피언스리그 16강이었지만 K-리그 팀들은 전혀 주눅 들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당당하게, 그리고 자신감 있는 경기력으로 멋진 승부를 펼쳤습니다. 그 덕에 수원, 성남, 포항은 상대팀이었던 베이징(중국), 오사카(일본), 가시마(일본)에 단 한 골도 내주지 않는 저력을 보여주며 K-리그의 위상을 밝혔습니다. 2006년 이 대회 우승팀이었던 전북 역시 후반 경기 종료 직전 골을 허용해 위기를 맞았지만 연장 후반 11분에 '라이언킹' 이동국의 헤딩 결승골로 멋지게 승리를 장식하며, 지난해 K-리그 최강팀다운 면모를 과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지난해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포항이 우승을 차지했기에 아직 8강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왜 경사스러운 일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분명히 K-리그 4팀의 전원 8강 진출은 의미 있는 '대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블로거가 이전에도 AFC 챔피언스리그를 이야기하면서 자주 언급했던 얘기지만 K-리그는 그간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그다지 강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련을 딛고 지난해 포항의 우승에 이어 이번에는 동아시아 파트에 주어진 8강 4장의 티켓을 모두 거머쥐어 잃어버렸던 자존심을 완전히 회복하며 상당한 성과를 거두는데 성공했습니다.

아시아축구연맹이 더욱 규모를 키우고, 이를 통해 축구의 질적인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야심차게 운영했지만 정작 K-리그는 챔피언스리그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K-리그는 지난 2006년 전북 현대의 우승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고, 2008년에는 전남 드래곤스와 포항 스틸러스가 참가해 모두 16강에도 오르지 못하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반면 일본 J리그는 우라와 레즈와 감바 오사카가 2007, 2008년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면서 아시아 클럽 축구에서 강한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했고, 중국 슈퍼리그팀들 역시 선전이 거듭됐습니다. 그 덕에 동아시아 최강을 자부하던 K-리그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고, '말로만 최강'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포항 스틸러스의 우승이 K-리그의 AFC 챔피언스리그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뒤바꿔놓았습니다. 지난해 챔피언스리그가 확대 개편되면서 4팀이나 출전할 수 있게 된 K-리그는 세 번 이상 일본에 자리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였고, 그 가운데서 '스틸러스 웨이'를 표방한 포항 스틸러스가 공격적인 축구로 우즈베키스탄, 중동 팀들을 잇따라 제압하며 우승을 차지해 '대외적인 이미지 알리기'에도 성공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FIFA 클럽월드컵에서도 3위에 올라 '2009년도 세계 3위 클럽팀'이라는 이름도 알릴 수 있게 된 포항은 유무형적으로 엄청난 이익을 얻으며, K-리그를 대표하는 명문 구단으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포항의 사례를 본 다른 K-리그 팀들은 AFC 챔피언스리그에 매력을 느꼈고, 마치 월드컵에 버금갈 만큼 사활을 거는 대회가 되면서 이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 덕분에 K-리그 팀들은 다른 팀들을 압도하는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전반적인 인식 개선과 전무후무한 성과를 낸 것까지 이번 일은 한국 프로 축구의 역사를 또 한 번 빛낸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일본에 잃어버렸던 자존심을 되찾은 것도 의미가 깊습니다. 그동안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K-리그에 우위를 보였던 일본 J-리그를 오히려 멀찌감치 따돌리고 8강을 독차지해 실력 면에서 우위에 있음을 증명해낸 것입니다. 이미 16강전에서 2팀이 진출한 J리그보다 우위에 있던 K-리그는 성남, 포항이 각각 감바 오사카, 가시마 앤틀러스를 따돌리면서 올 시즌 일방적인 우세를 점하게 됐습니다. 이전에도 지난 2008년, AFC가 조사해 내놓은 아시아 프로리그 실태 결과 보고서를 통해 K-리그가 J리그보다 기술력 면에서 앞선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었는데 챔피언스리그에서 증명이 또 한 번 이뤄진 셈이니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이제 남아있는 것은 어느 팀이 얼마나 4강에 진출할 지 여부입니다. 아직 대진표가 짜여지지 않아서 어떻게 대결이 이뤄질지는 모르겠지만 경우에 따라서 K-리그 팀끼리 붙을 수도, 혹은 엇갈릴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이제 남아있는 벽인 중동, 서아시아 팀들을 상대해서 동아시아를 넘어 진정한 아시아 최강 클럽 리그의 면모를 또 한 번 보여주는 K-리그 4팀이 될 수 있을지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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