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월드컵 본선까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어제 바로 남아공월드컵 본선이 30일 앞으로 다가왔는데요. 기간이 길고 짧게 느껴지는 것은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만큼 앞으로 남은 기간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이번 월드컵이 고지대에서 열리고 변수가 많은 월드컵으로 예상되는 만큼 허정무호는 철저한 준비와 훈련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요구됩니다.

이번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허정무호는 모두 4차례 평가전을 갖게 됩니다. 16일 에콰도르와 서울에서 평가전을 갖는 한국은 24일, 일본 사이타마에서 한일전을 치른 뒤, 고지대 적응 훈련을 위해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로 이동, 약 열흘간 있으면서 벨로루시, 스페인 등과 평가전을 갖습니다. 이 기간 동안 실전 점검을 통한 베스트11 및 23명 최종엔트리 확정은 물론 최상의 경기력을 키우기 위한 맞춤식 체계적인 체력 훈련도 병행하게 돼 한 달 동안 피땀을 흘려가며 월드컵을 준비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달 12일 저녁 8시 30분(한국시각)에 있을 그리스와의 월드컵 본선 1차전에 모든 포커스를 맞추면서 허정무호의 월드컵 준비는 차근차근 이뤄질 전망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이 출전한 역대 월드컵 본선에서 한 달가량 남겨뒀을 당시 축구대표팀은 어떻게 준비를 했을까요. 상대팀을 구하지 못해 쩔쩔매던 1986, 1990년 월드컵과 다르게 시간이 지날수록 보다 체계적이고 맞춤형 상대를 평가전 상대로 찾아 실전 경험을 쌓는 등 변화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준비 과정에서의 세밀함 부분에서 엇갈리는 결과를 가져와 허정무호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교훈처럼 눈여겨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처음 월드컵에 출전한 1954년에는 당시 어려운 재정 사정과 교통 상황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청, 백, 홍팀으로 나뉘어 선발전까지 치르는 등 나름대로 의욕적인 행보를 보였던 대표팀은 그러나 여행사의 실수로 1,2진으로 나뉘어 48시간동안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 불편한 미군 전용기를 타고 스위스로 가야 했습니다. 1진이 스위스에 다다랐을 때 이미 월드컵 본선은 시작됐고, 바로 다음날 헝가리와의 경기를 치러 0-9로 대패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 연습 상대를 구하지 못해 안타깝다는 1986년 5월 23일자 동아일보 기사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을 확정지은 1986년 월드컵을 한 달 남겨뒀을 때는 그나마 축구협회의 의욕적인 지원 속에 본선 개막 2주 전에 멕시코에 들어가 적응 훈련을 하는 등 1954년과는 크게 비교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평가전 상대를 구하지 못해 미국 LA에서 페루 프로팀과 평가전을 갖고 본선에 나서야만 했습니다. 당초에는 멕시코에 들어가 연습 상대를 구해 두 차례 평가전을 갖기로 했지만 알고 보니 계약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경기를 갖지 못했고, 결국 자체 청백전을 통해서 실전 경험을 쌓는데 만족해야 했습니다. 만약 지금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축구팬들의 엄청난 원성을 사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겠지만 당시 상황에는 인지도가 낮은 한국 축구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세계 축구의 시선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선전하는 경기력을 펼치고 세계 축구계에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는 했지만 1983년 청소년대회 4강 주역들로 구성돼 어느 정도 경쟁력이 있는 팀으로서 제대로 실전 훈련도 했더라면 결과가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1990년 월드컵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4차례 평가전을 가졌지만 국가대표팀이 아닌 스파르타쿠스(러시아), 도르트문트(서독) 등 유럽 클럽팀을 한국에 불렀던 것이 전부였습니다. 게다가 첫 경기 1주일 전쯤에 들어가도 현지 적응에 문제없다고 한 스태프의 말을 믿었던 것이 선수들의 부진한 경기력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결국, 서방 언론으로부터 강력한 16강 후보로 꼽히기도 했던 한국은 준비 부족으로 실패를 맛보며 3패 탈락의 굴욕을 맛봐야 했습니다.

이를 의식한 듯 1994년 월드컵에는 체계적이고 상당한 공을 들인 훈련으로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미 동계 전지훈련부터 미국으로 건너가 미리 현지 적응을 하는 등 대단히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한 달간 총 6차례의 평가전을 가진 한국은 인터내셔날(브라질), 레버쿠젠(독일) 등 클럽팀을 한국으로 불러들여 경기를 갖고, 본선 2주 전에 미국으로 들어가 에콰도르, 온두라스와 평가전을 가지며 본선에 대비했습니다. 그 덕분인지 몰라도 한국은 이전 월드컵과는 다른 경기력으로 선전하며, 세계 축구에 또 한 번 강한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2차전 상대인 볼리비아를 의식한 평가전만 치렀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은 볼리비아만 이기면 16강에 무조건 올라갈 수 있다면서 스트라이커 에체베리아 같은 스타 선수들에 온갖 집중된 분석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에체베리아는 1차전 독일전에서 퇴장을 당해 한국전에 나서지 못했고, 경기에서도 역시 잇따른 골결정력 부족으로 무득점에 그쳐 결국 0-0 무승부에 만족해야만 했습니다.

1998년 월드컵은 월드컵 본선을 열흘 앞둔 시점에서 가진 한중 정기전이 모든 것을 망쳐놓았습니다. 매달 3경기씩 A매치를 치렀던 한국 축구는 체코, 유고 등 동구권 국가들과 잇따라 평가전을 가지면서 서서히 기량을 끌어올리다 마지막 한중 정기전에서 황선홍의 부상, 0-0 졸전으로 분위기가 가라앉으며 우려를 자아내게 했습니다. '목적 없는, 의미 없는' 평가전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안타까운 '사건'이었습니다. 현지에도 이탈리아월드컵 때처럼 1주일을 앞두고 들어가 적응에 다소 애를 먹었던 한국은 결국 네덜란드에 0-5로 참패하는 등 부진한 모습으로 팬들을 실망시켰습니다.

그나마 홈에서 열린 2002년에는 월드컵 한 달을 남겨두고 어떻게 해야 준비를 잘하는 것인지를 남긴 거의 최초의 사례로 꼽힙니다. 당시 기초 체력, 기본기 훈련부터 착실히 해내면서 팀을 만들어 나간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 한 달을 남겨두고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프랑스 등 유럽의 강호들과 잇따라 평가전을 가지며 능력치와 자신감을 최대로 끌어올리는데 신경썼습니다. 세 팀을 상대해 1승 1무 1패를 거두며 자신감을 쌓은 한국 축구는 본선에서 거침없는 상승세를 이어가며 결국 4강 신화를 창조해냈습니다.

반면 2006년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 준비 모습을 보였습니다. 첫 상대인 토고를 잡기 위해 세네갈, 가나와 평가전을 치렀지만 상대적으로 유럽팀에 소홀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게다가 독일 입성 전에 베이스캠프로 삼았던 스코틀랜드 훈련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부분과 월드컵 본선에 오르지 못한 보스니아-헤르치코비나, 노르웨이, 세네갈 등과 평가전을 갖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비판 여론도 있었습니다. 결국, 목표했던 토고를 잡는 데는 성공했지만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패해 아쉽게 16강에 오르지 못하는 아픔을 맛봐야 했습니다.

다시 4년의 시간이 흘러 차질 없는 월드컵 준비로 원정 첫 16강 진출을 꿈꾸는 허정무호. 어떻게, 얼마나 착실하게 준비하느냐에 성패가 갈리는 만큼 허정무호의 월드컵 준비가 원활하게 잘 진행되는지 많은 축구팬들은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하려는 것보다 단계를 밟아가는 모습으로 최상의 경기력을 본선에서 보여주는 허정무호의 순탄한 준비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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