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 언니는 정말로 불친절한 드라마입니다. 무언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모호함 속에서 은은하게 움직이는 감정의 흐름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 드라마는 그저 우울하고 어둡고 짜증나는 가족 이야기일 뿐이거든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즐기기 위해선 더더욱 이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에게 유난히 몰입하고 그들의 행동과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됩니다. 이들이 도통 자신의 속내를 말하지 않는, 괴이하게 비틀어진 사람들이기 때문이에요. 물론 정우를 제외하면 주요 등장인물들 모두 서로 돌아가면서 내레이션이란 방법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기는 했지만, 이 마음 역시도 지극히 절제되고 제한된 내비침이었습니다.

그 단편적인 단서를 발판삼아 우리는 왜 이들의 마음이 이렇게 엇갈려야 하는지, 서로가 아끼고 소중히 생각하면서도 굳이 상처를 주고받아야 하는지 추측하고 안타까워할 뿐이죠. 그래서 더더욱 단순한 대사뿐만이 아니라 작은 눈짓 하나, 시선의 움직임, 표정의 일그러짐에 마음을 쏟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데렐라 언니가 20%를 상회하는 대박 시청률을 기록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쟁쟁한 경쟁자들의 선전도 선전이지만 이 드라마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몹시나 고통스럽고 피로한 과정을 거쳐야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렇게 자기감정 표현에 인색하고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을 두려워하던 이들이 갑자기 한꺼번에 스스로의 맨살을 드러냈습니다. 술기운을 빌어 말한다는 취중진담의 다소 진부한 방식을 통하기는 했지만 은조는 정우에게 기훈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정우와 기훈은 자신의 감정을, 말하지 못했던 비밀을 주고받습니다. 심지어 8년 동안이나 전해지지 않았던 아버지의 커다란 사랑은 결국 그렇게나 딱딱한 심장을 가졌던 강숙을 눈물과 함께 주저앉게 만들었고, 오랫동안 참고 참았던 친아버지를 향한 기훈의 절망과 분노는 드디어 폭발해버렸죠. 비교적 투명하게 감정을 드러냈던 효선을 제외한다면 모두가 급작스러울 정도로 솔직해졌어요.

그렇다면, 이렇게 각각의 짐을 덜어놓은 이들은 좀 더 행복해졌을까요? 서로와의 거리는 줄어들고 그 진심에 상대방의 마음이 움직였을까요? 우리가 익히 살아가면서 아는 것처럼 불행히도 이들은 여전히 괴로워하고 전해지지 않은 감정의 단절 때문에 고통스러워합니다. 진심의 방향은 조금씩 엇갈리고, 그 내용은 너무 늦게 전달되거나 어그러진 모습으로 받아들여지니까요. 그 두꺼운 마음의 옷을 힘겹게 한 꺼풀 벗어 버렸지만 대성참도가 사람들에게 찾아온 것은 따스한 햇살이 아니라 도박 빚 때문에 절박해진 장씨의 또 다른 진심, 얇아진 옷 위로 불어온 차가운 바람이었어요.

그렇기에 어쩌면 신데렐라 언니는 단순히 배다른 자매간의 애증을 보여주는 가족 드라마도, 표독스럽고 욕심투성이의 계모 때문에 불행해지는 대성참도가 사람들의 절망과 극복에 대한 동화도 아닌, 소통에 관한, 전해지지 않는 진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굳어진 마음의 사람들이 어떻게 스스로에게, 그리고 상대방에게 솔직하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는지의 과정을 살펴보는 집요한 심리 드라마이죠. 이제야 겨우 자신의 입으로 마음을 말할 줄 알게 된 이들은 분명 이전보다 성장했고, 또 다른 시련과 아픔이 다가왔을지언정 그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서로가 조금씩 각자의 진심을 알게 되었고, 그 마음을 차갑게 배반할 수 있을 정도로 이들은 매정한 사람들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신데렐라 언니는 비극이 될 수 없습니다. 은조가 기훈과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은조와 효선이 의좋은 자매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르죠. 강숙은 끝까지 그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고, 정우의 헌신과 사랑이 보답 받지 못할 수도, 혹시 주요 등장인물들 중 어떤 이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들은 차근차근 자신의 진심을 향해 걸어오고 있습니다. 무서워서, 부끄러워서, 더럽고 구차해서 피하고 외면했던 스스로의 마음에 말을 거는 연습을 조금씩 꾸준하게 반복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상황이 어찌 변하든지, 어떤 어려운 일들이 다시 생겨나든지 이들 참도가의 사람들은 확실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힘겹지만 소중한 성장은 그 어떤 결과와도 바꿀 수 없는 눈부신 해피앤딩이에요. 사람의 마음을 향한 이런 식의 접근, 껄끄럽고 집요하지만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신데렐라 언니의 힘이야말로 이 어두운 드라마가 수목드라마의 경쟁 속에서 제일 앞자리를 차지하게 해준 저력이 아닐까요? 이렇게 대사 한 마디, 꿀물 한 잔, 일기장 한 권에도 마음이 울리고 심장이 떨릴 수 있다는 발견은 흔하게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니니까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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