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월드컵 본선을 한 달 앞두고, 32개국 출전팀들의 예비 엔트리 명단이 거의 대부분 확정, 발표됐습니다. 하나둘씩 엔트리가 발표되니 벌써부터 월드컵 열기가 실감이 나는데요. 하지만 명단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의외로 떨어져나간 선수들이 적지 않아 몇몇 팬들에게는 아쉬움이 남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프랑스에서는 23살의 젊은 미드필더, 카림 벤제마(레알 마드리드)가 개인적인 문제로 발탁이 좌절됐으며, 미국에서는 '신성'으로 예전부터 주목받았던 프레디 아두(아리스)가 결국 대표팀에 탈락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브라질에서는 호나우지뉴(AC 밀란), 아드리아누(플라멩구), 파투(AC밀란) 등 스타급 선수들의 줄줄이 탈락이 이어졌고, 포르투갈의 조제 보싱와(첼시)는 끊임없이 시달린 부상 때문에 결국 낙마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불꽃'을 태우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던 노장 선수들의 월드컵은 특별함이 있습니다. 38살로 월드컵 본선에 출전해 카메룬의 8강을 이끈 로저 밀러의 활약은 1990년 월드컵 당시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어도 치열한 엔트리 경쟁 관문을 뚫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 될 것입니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는데요.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아깝게 월드컵 엔트리에 탈락한 노장, 그리고 반대로 피나는 노력 끝에 결국 본선 출전 기회를 얻은 노장이 누가 있는지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디펜딩 챔피언' 이탈리아에서는 프란체스코 토티(34)알렉산드로 델 피에로(36), 루카 토니(33)가 결국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독일월드컵 직후 대표팀 은퇴 의사를 밝혔던 토티는 유로2008 이후 간접적으로 남아공월드컵에서 뛸 의사를 밝히기도 했지만 결국 리피 감독의 부름을 받지 못했고, 독일월드컵 우승의 주역이었던 델 피에로와 루카 토니 역시 후배들과의 경쟁에서 끝까지 밀리며 명단에 드는데 실패했습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전문 골잡이, 뤼트 반 니스텔루이(34)의 탈락이 아쉬웠습니다. 최근 경기력을 끌어올리며 오랜만의 대표팀 승선이 점쳐졌던 니스텔루이는 그러나 판 마르바이크 대표팀 감독이 요구하는 수준까지 기량이 미치지 못한다는 판단으로 결국 제외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이는 브라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호나우두(34), 호베르투 카를로스(37), 호나우지뉴(30) 등 특급 선수들의 대표팀 승선이 적어도 1-2명 정도는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지만 둥가 감독은 이들의 경기력이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과감하게 제외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독일 역시 골잡이, 케빈 쿠라니(28)가 요아힘 뢰브 감독에 의해 부름을 받지 못하며 월드컵에서 또 한 번 뛸 수 있는 기회를 놓쳤고, 프랑스에서도 파트리크 비에이라(34)가 감독이 요구하는 수준에 미달됐다는 평을 받으며 낙마했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가장 유력한 대표팀 선수로 예상됐던 에스테반 캄비아소(30)하비에르 사네티(37)가 의외로 탈락해 디에고 마라도나 감독이 어떤 생각으로 이들을 낙마시켰는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감독의 결정이 팀 운영에 얼마나 절대적인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 ▲ 카를로스, 호나우지뉴, 호나우두(사진 왼쪽부터)
부상으로 결국 대표팀에 낙마한 노장 선수들도 많습니다. '원더보이' 마이클 오언(31)과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35)은 일찌감치 장기간 부상으로 대표팀 합류가 어려워졌으며, 한국에서는 2회 연속 출전했던 설기현(31)이 결국 무릎 부상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대표팀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아픔을 맛봐야 했습니다.

감독과의 불화, 개인적인 문제로 월드컵 출전이 좌절된 노장 선수도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후안 로만 리켈메(32)는 디에고 마라도나 감독이 부임한 이후, 대표팀에 독설을 퍼부으며 "절대 마라도나 팀에서 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고, 결국 이 말은 그대로 지켜져 월드컵에서 활약할 기회를 잃고 말았습니다. 또한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카사노(28)는 월드컵 본선 기간인 6월 19일로 예정된 자신의 결혼식을 연기할 수 없다며 대표팀 합류를 거절했고, 잉글랜드의 웨인 브릿지(30)는 약혼녀였던 바네사 페론첼과 대표팀 주축 수비수, 존 테리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후 자신이 대표팀에 있는 것이 팀의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해 스스로 대표팀 합류를 포기했습니다. 또한 잉글랜드 대표팀 은퇴 의사를 이미 밝혔던 폴 스콜스(35)는 파비오 카펠로 감독의 부름을 받기는 했지만 최상의 경기력을 보여줄 수 없고, 이미 은퇴 의사를 밝힌 것을 번복할 수 없다면서 역시 스스로 팀 합류를 거부했습니다.

반면, 마지막이나 다름없는 월드컵 출전 기회를 얻어 '마지막 불꽃'을 태울 노장 선수들도 제법 많았습니다. 한물 간 선수로 취급받아 한동안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던 선수가 모처럼 합류한 것도 적지 않았고, 꾸준한 노력 끝에 결국 또 한 번 기회를 얻은 스타들도 많았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2006년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던 파비오 칸나바로(37)와 '슈퍼 지지' 지안루이지 부폰(32)이 또 한 번 월드컵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독일월드컵 때 물샐 틈 없는 수비 능력을 보여줬던 이들의 활약에 이탈리아 축구계는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또 37살의 멕시코 노장 스트라이커, 콰테목 블랑코(37)도 하비에르 아기레 감독의 부름을 받고 결국 월드컵 예비 엔트리에 드는데 성공해 '마지막 불꽃'을 태울 예정입니다.

▲ 설기현, 안정환, 김남일(사진 왼쪽부터)
브라질에서는 유럽 진출에 실패했다가 브라질 자국 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던 클레베르손(31)이 결국 엔트리에 포함됐으며, 일본의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다 한동안 부상으로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던 가와구치 요시카즈(34)도 모처럼 승선해 월드컵에서 활약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독일의 특급 스타, 미하엘 발라크(34)미로슬라프 클로제(32), 그리고 프랑스의 두 스트라이커, 티에리 앙리(33)니콜라스 아넬카(31)는 '마지막 월드컵'에서 '유종의 미'를 자신하고 있으며, 아르헨티나에서는 한물 간 스타로 취급받다 자국 리그에서 부활한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35)이 남아공월드컵에서 화려한 비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 한동안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던 안정환(34), 김남일(33), 차두리(30) 등이 마지막 경쟁을 뚫고 예비엔트리에 이름을 올려 또 하나의 월드컵 신화 창조를 꿈꾸고 있습니다.

저마다 '유종의 미'라는 같은 꿈을 꾸며, 마지막 투혼을 불태우려는 노장 선수들.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지는 별'이 될 가능성이 높은 선수들이지만 마음만큼은 예전 전성기 못지않은 활약을 다짐하며, 선전을 자신하고 있을 것입니다. 메시, 카카, 호날두 같은 젊은 선수들만큼이나 이들의 마지막 투혼을 바라보는 것도 월드컵을 보는 색다른 재미로 다가올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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