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프로그램이 존재한다면 좋겠지만 웃음과 재미란 결국 취향에 따라 미묘하게 갈리는 선택인지라 어떤 이는 환호를 보낸다 해도 일부는 그에 대한 불만이나 거부감을 가지기 마련입니다. 이런 다양성이야말로 그 해당 프로그램이 자신의 문제점을 돌아보고 좀 더 조심스럽게 시청자들에게 접근하게 돕는 자양분일테구요.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1박2일 역시 마찬가지겠죠. 이 프로그램에 대한 불만을 말하는 이들의 이유 중 하나는 일요일 저녁 온 가족이 시청하는 방송에서 지나친 억지나 속임수, 사기극이 난무한다는 것입니다. 일견 이해할 수도 있는 지적이고 웃음의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니 뭐라 할일은 아니겠죠.

하지만 전 이런 1박2일의 시끌벅적하고 유쾌한 사기극이 좋습니다. 가끔씩 그 수단과 과정이 억지스럽고 자의적일 때도 있고, 별것도 아닌 일에 죽어라 매달리다가 어처구니없는 결말을 만들 때도 있긴 하지만 그들의 속임수에는 음습함도, 잔인함도 찾아볼 수 없거든요. 겉으로는 조금이라도 더 먹으려고, 좀 더 편한 잠자리를 확보하려고 아옹다옹 소란을 일으키지만 그 궁극적인 목적이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한 것임이 너무나 뻔히 보이기에 이정도의 귀여운 사기극 정도는 얼마든지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 웃기기위해선 아무거나 해도 되는 것이냐고 물어보실지 모르겠지만 1박2일을 끈기 있게 시청해본 사람이라면 이들의 엉성해 보이는 짜고 치기, 혹은 각종 음모와 술수가 얼마나 뛰어난 팀워크와 서로에 대한 배려, 그리고 자기를 돌아보지 않는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짜고 치려면 이들처럼. 1박2일의 사기극이 유쾌한 이유는 바로 그것이에요.

그런데 이런 사기극의 중심에 한동안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던, 혹은 그리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던 한 사람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뜨거운감자의 뮤지션 김C가 그 주인공이죠. 그렇게도 오랜 시간동안 여행에 동행해 왔었지만 언제나 자신은 다른 멤버들과는 다른 존재라면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던, 그저 한쪽 구석에서 묵묵히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만 자리했던 그가 변하기 시작한 것이죠. 그것도 너무나 능청스럽게, 새로운 사기의 달인이란 모습을 하고 말이에요.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언제나 1박2일에서 상식인으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멤버들의 개그욕심이 다소 과할 때는 조용한 언질과 행동으로 그 정도를 조정하기도 했고, 혹은 정색을 하며 비정상적인 상황을 정리해주기도 했죠. 무리한 개그가 이어질 수도 있는 억지협상이 난무하는 1박2일이 극단으로 치닫지 않고 언제나 적정한 선에서 마무리될 수 있었던 것은 1인자 강호동의 균형감각 덕분만큼이나 1박2일의 어머니, 김C의 일반인스러운 존재감 덕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헌데 요즘의 김C는 확실히 변했습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상황에 끼어들고, 그 소란스러움을 좀 더 확산시키며 뻔뻔함을 드러내기도 하죠. 예전에도 그런 모습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특유의 식탐을 위한 적극성을 넘어서서 과감하게 사건 전면에 나서는 모습은 의외의 발견이에요. 오히려 오랜 시간동안 유지해왔던 비연예인, 혹은 일반인이라는 캐릭터를 활용해서 논리적이고 상식적인 것처럼 위장하며 뻔뻔하게 사기를 치려는 모습은 정말 능청스럽고 재미있습니다. 천하무적 야구단에서 이미 그 특유의 넉살을 보여준 적은 있지만 그런 사기꾼의 모습을 UFO 조작 사건처럼 능수능란하게 보여준 이번 방송은 1박2일에 새로운 사기의 달인이 탄생했음을 알려주는 신고식이었어요.

이런 변화가 1박2일 내내 울려 퍼지는 뜨거운 감자의 신보 홍보를 위한 김C의 적극적인 방송 참여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각종 인터뷰에서 토로한 것처럼 이젠 뮤지션뿐만 아니라 예능인으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의욕이 생겨났기 때문인지는 그만 아는 사실이겠죠. 하지만 전 그런 김C의 새로운, 혹은 감춰졌던 모습이 무척 재미있고 신선합니다. 그의 각성으로 이제 1박2일은 이전과는 다른 조합, 또 다른 관계 설정이 가능해졌거든요. 리얼 버라이어티의 재미 중 하나는 이렇게 시간과 함께 그 멤버들의 캐릭터들도 조금씩 변하고, 그에 따라 같은 사람들에게서 또 다른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진화를 지켜보는 재미가 이젠 김C에게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저력이 오랜 시간을 견디고 살아남은 장수 버라이어티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즐거움 아니겠어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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