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1일 MBC <이산>의 한장면이다.

큰일 날 뻔했다. 이산이 암살 당할 뻔했다. 홍국영과 대수 덕분에 위험한 상황에서 겨우 벗어났다.

다음 날 신하들은 모두 얼굴이 누렇게 떠서 등장했다. 밤새 '저하'걱정을 하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한다.

역시 나라걱정에 잠을 못 이루고 있는 요즘 시청자들은 그 마음 100번 동감하며 TV 앞에 앉아있을 수 있었다.

<이산>은 이병훈 PD의 뛰어난 연출력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지만 전작 <대장금>의 재미를 넘어서지는 못한다. 여러 언론에서 지적했듯이 사건의 전개상황이나 문제해결 방식이 <대장금>과 너무나 유사하다. 더구나 출연진 중복도 많으니 같은 드라마라는 착각이 자주 든다.

볼 사극이 <이산> 밖에 없는 것도 아니다. 지상파의 사극경쟁은 여전하고, 케이블 자체제작 사극 또한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별순검>, <메디컬 기방 영화관>, <정조암살 미스테리 8일>은 차별화 된 소재와 화려한 영상으로 인기를 끌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산>이 선전하는 것은 대선을 앞두고 있는 현 상황과 맞물렸기 때문인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정조 같은 대통령을 기대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당파싸움은 식상하고, 훌륭한 '저하'를 향한 일편단심 충심들은 때론 우스꽝스러워보인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니? 하면서 말리고 싶은게 솔직한 심정이다.

정순왕후 역을 맡고 있는 탤런트 김여진 씨가 훌륭한 말을 했다. 그는 최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정조에 대한 해석을 내놓았다.

"정조가 아무리 성군이었다 해도 그 혼자서 정치를 해봐야 한계가 있습니다. 혼자서 잘난 척해서는 절대로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없거든요. 특히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결코 한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은 없잖아요? 그런데 왜 정치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정조에 빗대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그렇다면 이 시대의 '저하'는 누구일까? 일단 정치권력은 아니다. 언론도 이제 정치문제에는 쉽게 정론직필한다. 어떤 '저하'가 무사히 임금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는가? 아무리봐도 자본이고 기업이다. 과연 그들이 백성들을 행복하게 할까? '나라'가 잘살면, '나'도 잘사는가? 그들이 잘 살아야 나도 무사할까? 나라걱정보다 기업걱정을 온국민에게 강요하는 언론을 보고 하늘에 계신 정조가 울지도 모른다.

참고로 정조시대를 다룬 프로그램의 최고봉은 지난 11월 19일 방송 된 KBS <한국사 전> '신중하고 신중하라 수사관 정약용' 편인 듯하다. 정약용은 철저한 과학수사로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데 주력했다고 한다. <별순검>과 세트로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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