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태국 이주노동자 상담 등을 통해서 알게 된 한국인 활동가 H씨는 화성에서 이주노동자 쉼터를 운영하다가 지금은 천안에서 같은 활동을 하고 있다. H씨는 태국에서 몇 년 동안 살다왔기 때문에 태국어 통역이 능통하고 임금체불, 퇴직금 등 노동 관련한 사건은 물론이거니와 이삿짐 나르기, 서울 관광, 여름엠티 등 태국인 노동자들이 원하는 일이라면 365일 두 발로 뛰어다닌다.

늘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인 H 씨가 어느 날 매우 우울한 목소리로 전화가 걸어왔다. 평소와 같지 않은 목소리에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니 태국인 여성노동자 한 명이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한국인 직원에게 살해당했다는 끔찍한 소식을 전했다. 통화를 통해 들었던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였다.

광화문광장에서 지난 11월 1일 살해당한 태국 미등록 이주여성노동자를 추모하는 기자회견이 23일 열렸다. 올해만 10명 넘는 이주노동자들이 산재, 자살, 강간, 살해 등으로 세상을 떠났다.

경기도 안성의 한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근무 중이던 태국인 추티마 씨는 10월 31일을 마지막으로 태국의 가족들과 연락이 두절됐다. 고 추티마 씨는 한국에 살고 있는 기간 동안 본국의 가족들과 하루에 한 번 이상 통화를 했었다고 한다. 11월 1일 고 추티마 씨가 야간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던 중 한국인 동료(가해자)가 "오늘 출입국 단속이 있으니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주겠다"며 추티마 씨를 차에 태우고 어딘가로 데려갔다 한다. 회사 동료이자 가해자는 이후 회사로 돌아와 추티마 씨를 살해한 사실을 자백했고 11월 4일 친형과 함께 경찰서로 찾아가 자수하였다.

추티마 씨는 턱을 비롯한 얼굴 부위가 돌 등으로 심하게 가격당해 숨진 채로 새벽 3시경 경북 영양의 한 야산에서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가해자는 성폭행을 하려다 추티마 씨가 저항하자 살해하게 됐다고 최초진술했다. 그 이후 태국언론을 통해 이 사건이 연일 보도가 되어 긴급히 추티마 씨의 아버지가 입국을 하였고 뒤늦게 11월 12일부터 한겨레신문을 포함한 몇몇 국내 언론에 보도가 되기 시작했다. 결국 10년 넘게 가족을 위해서 고된 노동을 했던 추티마 씨의 시신은 태국으로 돌아가 11월 15일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다.

추티마 씨의 아버지가 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H씨에게 넋두리처럼 계속 되뇐 말이 있다고 한다. “좋은 집에서 태어났으면 굳이 한국까지 가서 일을 안 해도 되었을 텐데, 그랬으면 이런 일도 당하지 않았을 텐데” 11월 23일 뒤늦게 광화문에서 고 추티마 씨의 추모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영정사진을 구하는 과정에서도 고인이 10년 동안 한국에서 찍은 사진이 거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태국 현지에 있는 유가족에게 연락을 취해서 겨우 몇 년 전에 찍은 사진을 어렵게 구해서 영정사진을 마련할 정도로 추티마 씨는 오로지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살던 이 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였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작년 필리핀 최남단 민다나오 섬에서 만난 여성노동자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그 당시 FGI(focus group interview)의 일환으로 이주노동의 경험이 있는 여성노동자들을 만나는 자리였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한 여성이 인터뷰가 끝날 때 쯤 눈물을 흘리면서 내 손을 잡고 하소연을 한 적이 있다. 통역을 통해서 들었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본인이 중동지역에 있는 여러 나라를 이주하면서 계속 가사노동자로 30년 넘게 살다가 얼마 전에서야 필리핀에 있는 고향으로 귀국을 했다고 한다. 사실 그녀의 어머니도 이주노동자로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일을 해야만 했고 본인도 가족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했다. 말이 선택이지 사실상 필리핀의 일자리 부족 문제나 경제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한 강요된 이주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결국 인터뷰 말미에 눈물을 흘렸던 이유는 자신의 딸 역시 조만간 이주노동을 하러 가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타국에서 힘든 이주노동을 버틴 이유는 자식이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함이었는데 언제까지 이 악순환이 계속될지 모르겠다며 생전 처음 보는 내 두 손을 붙잡고 우는 그녀에게 나는 어떠한 위로의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올해 경북 군위 돼지농장에서 사망한 고 테즈 바하두르 구룽 씨의 형 발 바하두르 구룽 씨도 네팔로 돌아가면서 한국에 일하러 오기 위해 한국어 시험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한국 땅에서 테즈 바하두르 구룽, 고 추티마 씨처럼 가족을 위해서 이주노동을 하다 세상을 떠난 모든 이주노동자들의 명복을 빈다. 다시는 이와 같은 죽음이 없기를 바라며 11월 23일 살해된 태국이주여성 추모와 단속추방 중단 및 이주민인권보장촉구 기자회견에서 이주노동인권단체가 한목소리가 촉구한 요구안을 싣는다.

하나. 다양한 체류 형태의 모든 이주여성을 포괄하는 이주여성 폭력피해 지원체계를 마련하라!

하나. 범죄 피해 이주민의 체류를 보장하고 보상체계를 마련하라!

하나. 단속추방을 중단하고 미등록 이주민을 합법화하라!

하나. 공무원의 통보 의무를 폐지하고 통보 금지 조항으로 확대 실시하라!

박진우_ 2012년부터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일을 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주아동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한 지 5년이 되어가지만 부족한 외국어실력 탓인지 가능한 한국어로만 상담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 합법화 이후에 다음 역할이 무엇이 되어야 할지 고민 중이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무엇을 하더라도 스스로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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