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신원호 피디 앞에 붙었던 수식어였던 '응답하라'라는 수식어는 이제 그 주체가 분명한 새로운 수식어로 개명하는 게 맞을 듯하다. 그건 '응답하라'에 이은, '감빵' 생활이 아니라, '응답하라'라는 시간과 공간이란 영역을 통해서만 빛날 줄 알았던, 신원호표 휴머니즘이다.

이제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 지상파의 여러 드라마로 그 영향력을 확장해 나간 '추억'을 밑거름으로 삼은 '응답하라'브랜드, 하지만 이번에는 또 어떤 시대로 갈까하고 궁금해 했던 호청자들의 기대가 무색하게 신원호 피디가 들고 나온 공간은 가장 인간적이지 않은 '감빵', 교도소다.

tvN 수목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 >

추억 대신 극한의 감옥?

여동생에게 성폭행을 시도한 범죄자를 트로피로 가격하여, 정당방위를 넘어선 과잉 방어로 인해 실형을 선고받은 야구 선수 김제혁. 그는 한국시리즈 2년 연속 MVP, 골든글러브 3연패, 세이브왕, 방어율왕을 차지한 넥센히어로즈 특급 마무리투수. 대한민국 세이브 기록을 죄다 보유한 괴물 클로저이며 미국행을 앞둔 국민적 인기를 얻고 있는 존재, 하지만 법정 구속이 된 그는 하루아침에 '감빵'행을 하게 되는 처지에 놓인다. 조금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한 구치소, 하지만 그 짧은 기간을 보낸, 1,2회를 통해 그 공간에서 김제혁은 그의 감빵 동료 법자의 말처럼 볼 거 못 볼 거를 다 보게 된다.

입소 과정, 항문 검사라는 뜻밖의 수치스러운 과정에 국민적 인기를 얻고 있는 야구 선수의 비밀스러운 부위에 관심을 가지고 모여든 교도관들을 여유롭게 내쳐주며 그의 호감을 얻은 조주임(성동일 분), 하지만 같은 방 갈매기와의 육박전을 눈감아주는 조건으로 제혁에게 돈 3,000만원을 요구한다.

이번에도 역시 ‘성동일과 함께!’ 라면서 그간 '응답하라'의 아버지로 그 역할을 이어왔던 성동일을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극 초반 그 캐릭터와 흡사한 너그럽고 넉넉한 조주임의 캐릭터로 등장시키며 시청자들의 긴장을 풀어낸다. 하지만, 그 긴장은 곧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제혁에게 징벌방을 가는 대신 돈 3,000만원을 요구하는 그의 돌변한 태도로 인해 배신감으로 급전환된다. 바로 이 지점이, <슬기로운 감빵생활(이하 감빵생활)>이 그간 시리즈로 이어왔던 응답하라의 그 '추억'처럼 호락호락한 시리즈가 아니라는 확실한 각인을 주는 장면이다. 더 이상 '추억'을 반찬 삼아 옹기종기 '남편 찾기'의 로망을 이루지는 않겠다는 선언문이다.

그렇게 '응답하라'의 상징적 인물 성동일의 캐릭터로 반전과 환기를 주며 여기는 더 이상 추억의 그곳이 아니라며 마침표를 찍은 드라마, 하지만 '추억'은 없지만, 그곳에는 여전히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면면히 이어져 온 그 '인간의 냄새'가 났다.

tvN 수목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 >

극한의 장소에서 펼친 진검승부

이쯤에서 되돌아보자. 과연 '응답하라' 시리즈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킨 이유가 과연 '추억'과 추억에 기반 한 음악 등의 문화적 장치들 때문만이었을까? 오히려, 신원호 피디는 <감빵생활>을 통해 그간 자신이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대중과 '손쉽게' 교감했던 그 장치들을 제거한 채 그간 정말 자신이 해왔던, 그리고 여전히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을 '감빵'이라는 극한의 무대를 통해 '진검승부'를 펼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 '진검승부'는 1회 도대체 왜 낯선 박해수를 주인공 김제혁으로 했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 국민 투수라지만 감빵 동료들조차 '어리버리'하고 늦다며 평가를 내린 그 인물로부터 비롯된다. 1회의 초반 눈길을 사로잡은 건 상습 마약 복용으로 정신을 못 차리는 재벌 2세로 등장한 <비밀의 숲>에서 반전의 주인공이었던 윤과장 역할의 이규형이었다. 그의 뒤를 이은 건, 허허실실 조주임이었고, 그리고 막판에 김제혁을 안타깝게 찾아다닌 팬인 줄 알았는데 오랜 친구 준호(정경호 분)였다.

이 늦된 캐릭터, 하지만 그 인물 설명에서도 드러나듯 교통사고로 심한 부상을 입었는데, 좌절 대신 할 게 이것밖에 없다며 묵묵히 치료받고 재기를 해낸 역전의 인물처럼, 1회를 넘어 2회에 이르러 김제혁은 그 '인간미'을 증명해 나간다. 감빵 안에서 부당하게 힘을 행사하는 갈매기를 제압하고, 조주임의 3천만원 대신 밥자 어머니의 수술을 전화 한 통화로 부탁하는 등 그의 친구 교도관 준호의 말처럼 '오지랖'을 부리기 시작한다.

신원호 피디의 말대로 '사소한 인간미'일 수도 있고, 교도관 준호의 말대로 '쓸데없는 오지랖'일 수도 있는 김제혁의 그 '인간미', 그런데 익숙하다. 수학 여행비가 없어 쩔쩔매는 아랫집 덕선네 처지를 모른 척 하다 슬쩍 남겨놓은 윗집 아줌마 미란의 여비처럼,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다수의 시청자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했던 그 '인간적인 정서'의 기시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21세기의 혹한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주었던 지난 20세기의 '인간미'가, 극한의 감빵 속 김제혁을 통해 슬그머니 등장하며 <감빵생활>은 마치 눈을 맞은 상록수처럼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어렵고 힘든 시절에 콩 한쪽도 나누어 먹던 그 이웃, 혹은 친구들의 훈훈한 덕담이 있었기에 <응답하라> 시리즈가 빛났듯이, 가장 '인간적'일 수 없는 극한의 교도소라는 공간에서, 피디의 말대로, 검사나 형사 등 어떤 '직위'를 가지지 못한 죄수, 그럼에도 여전히 '성선설'의 주체인 김제혁을 통해 의지적 '휴머니즘'을 어렵지만 포기하지 않고 풀어가고자 하는 <감빵생활>은 신원호 피디의 세계를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빛낸다.

물론 준호와 제혁의 청소년 시절의 전사로 부터 시작된 준호와 제혁과 그리고 지호(정수정 분)의 '인연'은 '응답하라'의 외전과 같은 기시감을 준다. 하지만, 그 '기시감'이 <감빵생활>의 정서를 지배하기에 구치소, 그리고 그에 이은 진짜 교도소 생활의 현실은 극한적이다. 이번엔 어느 시대일까? 하는 당연한 기대를 뒤엎고, 가장 자신이 해오던 시리즈와 반대의 상황에 '출사표'를 던진 것만으로 이미 이 작품의, 그리고 신원호 피디의 의의는 대단하다. 그리고 그럼에도 오히려 그래서 그 속에서 빛나는 신원호가 그리고자 하는 '인간적 세계'의 지향점을 고수하는 점은 그래서 또 기대가 된다. 새로워서 빛나고, 여전해서 더욱 가치 있는 <감빵생활>의 선전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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