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국민의당 국민정책연구원이 실시한 자체여론조사 결과가 23일 공개됐다. 국민의당은 여론조사 결과를 배포하고 보도자료를 통해 바른정당과 통합 시 지지도가 양당 합산 지지율보다 7.4%p 높은 19.2%가 된다고 강조했다. 안철수 대표가 주장하고 있는 '바른정당 통합론'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다. 하지만 여론조사 결과 면면을 살펴보면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은 결국 바른정당에 기울어진 '범보수통합'이 될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왼쪽)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연합뉴스)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 시 19.2%로 정당 지지율 2위

23일 국민의당은 보도자료를 통해 "국민의당이 앞으로 가야할 길에 대해 다른 정당과 연대·통합해야 한다는 비율이 독자세력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보는 비율보다 약간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국민의당 싱크탱크인 국민정책연구원이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R&R)에 의뢰해 공표한 '현안 관련 여론조사 결과 보고서'에서 연대·통합 응답은 45.6%로 독자세력 성장 40%보다 조금 높았다"고 밝혔다.

국민의당은 "하지만 막상 특정 정당과 통합을 묻는 물음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않는다는 비율이 높았다"면서 "국민의당이 바른정당이나 더불어민주당과 통합하는 것에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각각 58%, 57.9%로 공감한다 비율 36.6%, 37.2%를 크게 앞질렀다"고 설명했다.

국민의당은 "추구해야 할 노선은 '진보나 보수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중도'라는 답변이 36.1%로 월등했다"고 밝혔다. 또 국민의당은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통합할 시 통합정당을 지지하겠느냐는 응답은 19.2%로 더불어민주당 47.5%의 뒤를 이었다"고 강조했다. 국민의당은 "이는 두 당의 정당 지지율 단순 합산인 11.8%보다 7.4%p 높은 수치다"면서 "자유한국당은 11.7%였다"고 분석했다.

국민의당의 보도자료는 안철수 대표의 '바른정당 통합론'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가 나왔다는 논조로 풀이된다. 실제로 7.4%p의 가중효과가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기 때문에 통합의 효과를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1일 국민의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의원들과 안철수 대표. (연합뉴스)

국민-바른 통합, '호남' 잃고 시너지 적어

하지만 국민의당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세부적으로 들여다 보면 통합은 곧 노선이탈과 함께 호남 기반을 잃는 것이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일단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 시너지가 크게 나타나는 지역은 서울·경기·강원을 중심으로 하는 수도권과 충청지역이다.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을 가정한 정당지지율 여론조사에서 국민바른 통합정당은 서울에서 23.2%, 인천·경기에서 19.4%, 대전·세종·충청에서 21.3%, 광주·전라에서 11%, 대구·경북에서 21.9%, 부산·울산·경남에서 14.1%, 강원·제주에서 25.4%의 지지율을 나타냈다.

국민의당, 바른정당 양당의 단순 지역별 지지율 합산보다 서울에서 9%p, 인천·경기에서9.8%p, 대전·세종·충청에서 8.7%p, 대구·경북에서 8.6%p, 강원·제주에서 16.3%p 높은 것으로 나타나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진다.

반면 호남과 부산·울산·경남에서는 각각 1%p, 0.7%p 상승하는 데 그쳐, 통합의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호남의 경우에는 통합시에도 지지율 1위를 기록하는 더불어민주당(64%)과 50%p 이상의 격차를 보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내년 6월 열릴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호남 주자들 입장에서는 국민바른 통합정당으로 출마하는 것은 패배의 위험성이 너무 높다는 결과가 도출된 셈이다.

문제는 국민의당의 지역적 기반이 현재 호남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4·13총선에서 호남은 국민의당에 큰 지지를 보내며 안철수의 '새정치'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낸 바 있다. 호남 민심은 호남 의석 28석 중 25석을 국민의당에 몰아줬다. 현재 40석인 국민의당 의석 중 63%에 해당하는 수치다. 호남에 지역구를 둔 중진의원들이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반발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다.

사실 이러한 결과가 나올 것이란 예측은 정치권 곳곳에서 제기돼 왔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안철수 대표의 통합 드라이브에 대해 "안 대표가 호남을 버리고 정치적 기반을 옮기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 5·9대선에서 안철수 대표를 지지했던 응답자 중 국민·바른 통합정당을 지지하겠다고 한 응답률은 43.4%에 그쳤고, 현재 국민의당 지지자 중 67.6%만이 통합정당을 지지하겠다고 답했다. 국민의당 기존 지지층이 이탈할 것이란 예상이 가능한 대목이다. 오히려 지난 대선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지지했던 응답자 17.4%가 통합정당을 지지하겠다고 밝혀 보수성향의 유권자들이 유입될 것으로 보인다.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양대 연대 통합 의미와 전망 그리고 과제> 세미나 모습. (연합뉴스)

국민-바른 통합정당, 대표얼굴은 안철수 아닌 '유승민'

문제는 더 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통합했을 경우 바른정당이 주도권을 가진다는 점이다. 이날 국민의당이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야권을 대표하는 인물' 조사에서 1위는 안철수 대표가 아닌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였다.

유승민 대표는 이 조사에서 26.2%의 지지를 받아 14.5%의 안철수 대표를 앞섰다. 안 대표는 18.2%의 지지를 받은 홍준표 대표에게도 밀린 3위에 그쳤다. 물론 유 대표가 대선 때 보여준 합리적이고 지적인 이미지로 민주당과 정의당 등 범진보적 지지층 사이에서 높은 지지를 받은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통합을 가정한 국민·바른 통합정당의 잠재적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유 대표가 32%로 26.2%의 안 대표를 눌렀다.

또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추세대로 지방선거가 치러진다면 유승민 대표 측이 통합정당 내에서 힘을 받을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당의 주축인 호남 지역에서 민주당과의 지지율 격차가 50%p가 넘는 상황이지만, 대구·경북에서는 통합정당의 지지율이 21.9%로 23.3%의 자유한국당과 오차범위내 접전을 펼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결국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 바른정당 통합론이 현실화 될 경우 국민의당의 과거·기존 지지층인 호남·범진보가 아닌 범보수가 통합정당의 중심세력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주도권도 장기적으로 안 대표보다는 유승민 대표가 쥐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이번 국민의당 여론조사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통합했을 경우 안철수 대표보다 유승민 대표에게 더 유리한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준 여론조사"라고 분석했다.

이번 여론조사는 국민의당 싱크탱크 국민정책연구원이 R&R에 의뢰해 지난 18일과 19일, 전국 성인 1050명을 대상으로 유·무선 RDD 1대1 전화면접조사 방식으로 진행했다. 응답률은 11%, 95% 신뢰수준에서 표본오차는 ±3.0%p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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