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툭하면 웁니다. 아버지한테 죄송해서 울고, 어머니가 원망스럽고 무서워서 울고, 기훈에게 대한 자신의 감정 때문에 울고, 효선이에게서 아버지의 그림자를 발견하며 웁니다. 바늘을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게 냉랭하고 비정하게 자신을 꾸미고 있던 은조가 이젠 신데렐라 언니에서 가장 눈물이 많은, 너무 서럽게, 애달프게 울어서 보는 사람의 속까지 쓰리게 만드는 눈물의 여왕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여전히 말투는 가라않고 표정은 굳어있지만 이제 은조는 울보일 뿐이에요.

왜 그렇게 변해버렸을까요? 뭐, 사실 그 본성이 변한 것은 아닙니다. 드라마 시작 전부터 호들갑을 떨었던 것처럼 문근영의 은조가 정말 못된 악역이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 모두 알고 있잖아요? 그 의도된 딱딱함은 지독한 엄마로부터, 소스라치게 싫은 현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보호막이었으니까요. 그 누구보다도 사람에 대한 애정에 굶주려있었고, 자기 이름만 불러도 눈물을 주르륵 흘리던 은조는 이 드라마에서 가장 약하고 힘들어하던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녀가 지금 떨어뜨리는 눈물은 그동안 마음에 쌓아 놓았던 묵어있던 감정의 앙금들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그것만이 아닙니다. 지금의 상황은 은조가 더 강해져야 하고, 그녀의 보호막은 더 단단해지는 것이 당연해보이거든요. 유일한 보호막이었던 아버지는 죄책감만 남기고 떠나버렸습니다. 어머니는 끝까지 속물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은조를 점점 더 숨 막히게 몰아놓고 있죠. 아버지를 닮은 철없는 동생은 여전히 불안해보이기만 하고, 그런 효선이 때문에 자신의 사랑인 기훈과도 거리를 두어야만 합니다. 질질 짜면서 과거를 후회하고 힘들어하기엔 자신을 더 추스르고 좀 더 강하게 살아가야할 이유들이 은조에겐 너무나도 많아요.

그녀가 흘리는 눈물이 단순한 후회나 슬픔, 격정적인 감성의 토로가 아니라는 말이죠. 무언가 은조 안에서 변하고 있다는, 기본적인 변화의 조짐이 은조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눈물과 함께 보이고 있거든요. 현실은 점점 더 힘겨워지고 책임감과 자책감은 마음을 짓누르지만 은조는 이제 혼자 서있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지켜주었기에, 그래서 무의식중에 기대고 안주했던 그녀의 보호막이 사라진 지금 은조는 더 이상 혼자 고고한 척, 강하고 당당한 척 할 수가 없게 되어 버렸어요. 원래는 너무나 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부족한 점이 너무나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울음소리는 감정의 앙금들인 동시에 그녀가 그동안 쌓아올렸던 마음의 벽이 녹아내리면서 들리는 해동의 소리에요.

은조의 마음에 봄이 오고 있다는 말입니다. 얼음공주라고 손가락질 받고, 오해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스스로를 자학했던 그녀가 점점 더 자신의 감정에게 솔직해지고 다른 이에게 손을 내밀기 시작했어요. 이제 그녀는 기훈의 도움을 의지하고, 정우의 소박한 마음을 받아주고, 효선의 따스한 장점을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신데렐라 언니의 진짜 왕자님이었던 아버지는 이미 떠났지만 그 왕자님이 떠나면서 준 마지막 선물은 바로 오랫동안 걸어 잠그고 어떻게 열어야 할지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마음의 빗장을 풀어줄 열쇠였던 것이죠.

그래서 전 울보가 된 은조의 모습이 더 좋습니다. 다음주에 이어질, 아버지를 자신이 죽게 만들었다는 기훈의 고백이 다시 그녀의 마음에 상처를 줄지도 모르고, 시한폭탄같은 어머니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또 어떤 새로운 갈등과 시련이 휘청거리게 만들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확실한 것은 은조가 다시 예전의 그 차가운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어졌다는 것이에요. 너무나 힘들게 찾아온, 매서운 겨울이 끝나고 드디어 봄이 찾아왔으니 이젠 그녀의 마음에 꽃이 필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다가올 꽃샘추위가 매서울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어른들의 동화인 신데렐라언니는 제발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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