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을 두고 국민의당 내홍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국민의당이 또 다시 바른정당과 연대에 관련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지난달 조선일보에 보도된 여론조사에 이어 두 번째다. 안철수 대표 측 의원들이 주도해 실시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번 여론조사 결과는 보수언론인 동아일보를 통해 보도됐다.

▲20일자 동아일보 기사.

20일자 동아일보는 <국민의당 당원이 바라는 연대 대상 "바른정당" 49.9% "민주당" 30.3%> 기사를 단독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국민의당 당원의 절반 가량은 다른 정당과 연대할 경우 바른정당과 해야 한다고 응답한 자체 여론조사 결과가 19일 나왔다"면서 "또 바른정당과의 공조에 대해선 응답자의 42%가 통합에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국민의당은 앞으로 외부 기관에 의뢰해 일반인을 상대로 바른정당과의 통합 찬반을 묻는 여론조사를 실시할 방침이라고 한다.

국민의당은 지난달 26일과 이달 9일 2차례에 걸쳐 권리당원 1500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 조사를 실시했는데, '국민의당이 문제 해결 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타 당과 연대가 필요하다면 어느 당과 우성 연대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당원의 49.9%가 바른정당이라고 응답했고, '바른정당과 연대나 통합을 한다면 어느 수준까지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42.2%가 통합이라고 답변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안철수 대표는 이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합리적 진보, 개혁적 보수의 빅텐트를 치자"는 중도 통합 드라이브를 이어간다고 한다. 지난 17일에는 손학규계 이찬열 의원을 만나 "당 통합에 대한 가교 역할이 돼 달라"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국민의당의 행보는 안철수계가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의당 싱크탱크 국민정책연구원은 지난달 13~14일에도 어느 당과 합치는 게 좋은지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국민의당은 당시 조선일보에 여론조사 결과를 흘렸고, "바른정당과 합당 때 지지율 20%로 올라 2위를 차지한다"는 취지의 기사가 게재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여론조사가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사이의 통합의 명분을 만들어줄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국민의당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는 시점에서 당원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는 국민의당의 잠재적 지지층까지 감안했을 때 나아가야 할 방향성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국민의당은 지난해 4·13 총선 정당투표에서 더불어민주당을 제치고 2위를 차지했다. 그 같은 기반에는 진보층의 기대심리가 존재했다. 당시만 해도 안철수 대표는 2030세대 청년들에게 '멘토'라는 이미지가 강했고, 호남에서의 지지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연합뉴스)

하지만 현재는 상황이 다르다. 대선을 거치면서 한 때 국민의당 지지율이 20% 가까이 육박했었지만, 현재의 국민의당 지지층은 매우 빈약해진 상태다. 대선 당시 안철수 대표와 국민의당 지지율 상승과 하락의 모습을 분석해보면 국민의당의 '집토끼'는 진보층과 청년들이었다. 10% 내외를 기록하던 안 대표의 지지율은 안희정 충남지사의 경선 탈락을 기점으로 문재인 대통령과의 양강구도를 이룰 정도로 급등하는데 이는 기존의 안철수 대표의 지지자로 보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관련기사 : 안철수, 급상승했지만 "불확실성·변동 여지 커")

반면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대표의 지지율 하락 과정을 보면 보수성향의 지지율이 빠지면서 동시에 진보, 청년, 호남 지지층이 이탈하는 경향을 보인다. 연이은 우클릭 행보의 부작용이다. 즉 안 대표가 대선을 기점으로 집토끼를 잃었다는 얘기다.(▶관련기사 : 안철수, 우클릭 이후 두마리 토끼 다 놓쳐)

현재 남아있는 국민의당 지지율을 분석해보면 모든 연령층에서 2030세대의 지지율이 가장 낮은 수준이다. 최근에는 10% 내외를 유지하던 호남 지지율마저 한 때 한 자리수로 하락하기도 했다.(▶관련기사 : 안철수 판단 미스가 부른 국민의당 '호남 엑소더스')

결국 안철수 대표와 국민의당이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정계개편을 하더라도 과거 지지층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현재 안 대표가 추진하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통합 노력은 여러 측면에서 맞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먼저 시기적으로 봤을 때 이미 적기를 놓쳤다는 지적이다. 대선에서 안철수 대표는 3위에 그쳤지만 20%대 득표를 기록하며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충분한 경쟁력을 보였다.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도 13명이 탈당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6%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중도보수의 입지를 다졌다. 대선 직후 문재인 정부의 진용이 갖춰지기 전인 해당 시기가 중도통합노선 구성의 적기였다는 정치공학적 판단이 많다. 그러나 지금의 통합은 내년 6월 있을 지방선거를 위한 인위적인 정개계편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내용적으로도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길로 가고 있다. 안철수 대표가 말하는 '합리적 진보·개혁적 보수 빅텐트'를 치려면 정책이든 이념이든 확실한 비전을 갖고 나아가야 하는데, 비전이 없다. 안 대표가 얘기하는 '문제해결 중심 정당'이란 말은 나아갈 비전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정당의 비전은 국민의 지지를 얻어 정권을 획득하는 방향으로 구성돼야 하는데, 아직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언어 선택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달 18일자 조선일보 기사.

또한 언론에 여론조사 결과를 흘리는 방식도 문제다. 지난달 18일 조선일보에 여론조사 결과를 흘리더니, 20일에는 동아일보에 여론조사 결과를 흘렸다. 이런 식의 여론몰이는 결국 반작용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지난달 18일 안철수 대표가 받았던 스포트라이트는 '3일 천하'로 끝났다.

여론조사 결과를 흘린 언론이 보수언론이라는 점도 문제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3대 보수언론 '조중동'에 속하는 대표적 보수언론사다. 중도를 지향한다는 국민의당이 보수언론에 자신들의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흘린다는 것은 중도·진보성향의 국민으로부터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관련기사 : 안철수 '비밀 여론조사'의 나비효과)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