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국회의원의 8급 비서 1명을 늘리는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운영위원회를 통과했다.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부정적 여론이 팽배하지만 비정규직인 보좌진의 처우 등에 대한 실상을 들여다보면 필요한 조치라는 게 정치권의 반응이다. 물론 부작용이 예상되는 부분도 있어 지적은 필요하다. 그러나 보수언론은 단순히 1명이 늘었다는 숫자놀음으로 '정치혐오' 부추기기에 나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지난 17일 국회 운영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어 국회의원 사무실에 근무하는 2명의 인턴을 1명으로 줄이고, 별정직 8급에 해당하는 비서 1명을 늘리는 내용을 담은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의결했다. 당초 국회의원 보좌진은 4급 상당 보좌관 2명, 5급 상당 보좌관 2명, 6·7·9급 비서 3명 등 7명으로 구성되고, 인턴 2명을 채용할 수 있었다. 이번 법안 통과로 앞으로는 8급 비서를 포함한 보좌진 8명과 인턴 1명을 채용할 수 있게 됐다.

▲18일자 조선일보 보도.

이 같은 법안 논의에 대해 보수언론은 정치혐오 부추기기에 나섰다. 18일자 조선일보는 <보좌진 이미 7명인데…의원들, 8급 1명씩 또 추가> 기사에서 "이 방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연간 67억 원의 인건비가 추가로 들 것으로 보인다"고 돈 걱정을 시작했고, 중앙일보는 <공무원 증원 놓고 싸우던 여야, 보좌관 늘리기엔 합심> 기사에서 "국가 공무원 증원을 놓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첨예하게 맞붙으면서도 의원 보좌관 증원에선 여야의 이해가 일치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여야, 의원 보좌진 8명으로 증원 슬쩍 의결> 기사를 게재해 "'국가 공무원 증원을 놓고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보좌관 증원은 이해관계가 맞아 소리 소문 없이 처리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면서 청와대 게시판에 등에 올라온 글을 인용해 "국회를 해산하자. 총선 때는 특권을 내려놓는다고 하다가 이제는 잊었다"고 보도했고, 세계일보는 <예산전쟁 벌이던 여야, 보좌진 증원안은 '일사천리'> 기사에서 "예산 전쟁 속에서 보좌진 증원안을 처리하는 것은 '제 밥 그릇 챙기기'라는 비판이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특히 18일자 조선일보는 <보좌진 또 늘리겠다는 의원들 후안무치하다> 제목의 사설까지 게재해, 보좌진 증원을 반대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우리 국회의원의 특권은 방대한 수준"이라면서 "1인당 국민소득 대비 의원 세비는 OECD 국가 중 3위"라고 꼬집었다.

조선일보는 "여야는 선거 때만 되면 특권을 줄이겠다고 했지만 실행된 적은 없다"면서 "스웨덴 의원은 전용차나 개인 비서가 아예 없다. 정책보좌관 1명이 3~4명의 의원을 보좌한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덴마크 의원은 상당수가 자전거로 출근하고, 좁은 사무실을 의원 2명이 갈라서 쓰고 비서도 의원 2명 당 1명"이라면서 "하루 평균 12시간 일하지만 특권은 없다"고 말했다.

▲18일자 조선일보 사설.

한국 국회의원들의 줄여야 할 특권이 많다는 부분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실제로 조선일보가 사설에서 지적한 대로 45평에 달하는 의원회관 사무실도 있고, 면책특권, 불체포특권 등의 200여 가지 특권을 갖고 있다. 실제로 세비 삭감, 회의 무단 결석 시 수당 삭감 등의 내용을 담은 법안을 발의하고도 통과시키지 못한 것이 한국 국회다.

그러나 보좌진 증원에 대해서는 분명 억울한 면이 많다. 국회의원의 의원회관 사무실과 각 지역의 지역사무실의 경우 늘 민원인으로 차고 넘친다. 이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국민의 여론을 정책에 반영하는 게 국회의원의 할 일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식으로 숫자 놀음을 해보자. 한국 국회의원이 담당하는 1인당 국민수는 약 17만1000명으로 OECD 회원국 중 3번째로 많은 수준이다. 국회의원 1명이 청취해야 할 여론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반면 조선일보가 비교대상으로 삼은 스웨덴은 국회의원 1인당 국민 수가 2만7000명, 덴마크는 3만1000명이다. 한국 국회의원은 스웨덴 국회의원보다 6.3배, 덴마크 국회의원보다 5.5배 많은 국민의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 조선일보가 제시한 내용대로 인구수 대비로 따져보면 스웨덴 8.19명, 덴마크 8.25명, 한국 8명으로 한국 국회의원이 더 적은 인력으로 일을 하는 셈이다.

게다가 국회 인턴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현재 의원실에서 근무하는 인턴직원들의 보수는 기본급 135만2230원에 연장근로수당 월 23만2920원이다. 연장근로를 모두 채운다고 해도 실제 수령액은 150만 원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이들을 8급 비정규직 공무원으로 채용하는 것이 무엇이 그렇게 배가 아픈지 모를 일이다.

물론 이번 법안의 문제점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내년부터 인턴 기간이 2년으로 제한돼 많은 인턴이 그만두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라고는 하지만, 8급 비서직이 실제 국회에서 인턴으로 일했던 직원에게 돌아갈 지는 미지수기 때문이다. 국회 곳곳에서 지역행정직원에게 8급 비서직을 준다는 등의 편법적인 얘기가 들려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300명의 의원실이 각 국회의원의 입맛대로 운영되는 허술한 시스템에서 비롯된 문제다. 국회 의원회관은 사실상 300개의 서로 다른 사장이 있는 개별 업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의원실마다 업무나 노동권 보장 등 보좌진들의 근무여건이 천차만별이라는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나온다. 보좌진들은 비정규직이다보니 늘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고, 모 의원실의 경우 보좌진이 수시로 교체돼 보좌진 목숨이 '파리목숨'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언론이 해야 할 일은 보좌진이 1명 늘었다는 것에만 주목하며 앞뒤 뺀 보도로 정치혐오를 조장할 것이 아니다. 국회의원이 보좌진을 제대로 활용해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지, 보좌진들의 노동권이 제대로 보장되는 국회 시스템이 갖춰져있는지, 어떤 의원실에서 어떤 부당노동행위가 발생하고 있는지 등에 대한 실질적인 취재를 해야 한다. 언론이 해야 할 일은 권력을 견제하는 일이지 정치혐오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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