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KBS 금토 드라마의 부활 <고백부부> (11월 17일 방송)

KBS2 금토드라마 <고백부부>

<프로듀사> 이후 KBS 금토 드라마가 큰 반응을 얻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불황 속에서 ‘타임슬립’이라는 진부하다는 말조차 진부한 소재를 가져온 <고백부부>는 한참이나 불리한 출발선에서 시작한 작품이다. 그러나 회를 거듭할수록 타임슬립 소재를 고전적이면서도 영리하게 잘 활용했다는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로맨스가 아닌 가족. <고백부부>의 타임슬립이 여느 타임슬립 드라마와 다른 점이다. 좁혀 들어가면 부부의 의미. 진부한 말처럼 보이지만, 진부해서 더 공감이 가는 말이다. <고백부부>는 결혼이라는 의미, 부부가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해 타임슬립을 통해 고찰해보는 드라마다.

KBS2 금토드라마 <고백부부>

<고백부부> 11회의 핵심은 고은숙(김미경)의 죽음을 둘러싼 마진주(장나라)와 최반도(손호준)의 속마음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마진주가 원했던 남편의 모습은 ‘함께’ 있어주는 것이었다. 최반도는 “너랑 장모님한테 너무 미안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면서 마진주를 더욱 보듬어주지 못한 이유에 대해 변명했다. 마진주는 “네 잘못 아니라는 거 알아.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는 것도 알아. 나 좀 들여다봐주지. 나 좀 안아주지. 나랑 좀 울어주지”라며 속마음을 고백했다.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했던 남편과, “날 먹여 살리려고 하지 말고. 나랑 같이 먹으려고 했어야지”라고 말하는 아내.

스무 살의 마진주와 최반도가 벤치에 앉아 부부가 삐걱거리게 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은, <고백부부>가 두 사람을 20년 전으로 되돌려놓은 이유를 설명하는 클라이맥스 신이었다. 그렇게도 진부한 소재인 타임슬립을 굳이 또 써야만 했던 이유기도 하다. 현재의 부부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시간적 여유, 마음의 여유를 주기 위해서는 ‘고백(Go Back)’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KBS2 금토드라마 <고백부부>

그래서 마진주와 최반도에게 타임슬립이란, 이혼숙려기간과도 같은 것이다. 가장이라는 무게, 엄마라는 이름의 책임감에서 벗어나 온전히 서로가 서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은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시기인 스무 살이었다.

마진주와 최반도 사이를 삐걱거리게 만든 부부 문제는 대한민국 평범한 부부들이 안고 사는 문제기도 하다.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고,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상대방에게 상처를 줬고, 그것을 서로 보듬어줄 새도 없이 시간은 흐르고 상처는 아물지 않고 결국 이혼이라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가게 되는 상황이 비단 드라마에서만 볼 수 있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다. 마진주와 최반도처럼 타임슬립을 해서 오로지 서로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이상, 평범한 부부들에게는 결혼과 부부의 의미에 대해 고찰해볼 여유가 없다. <고백부부>의 타임슬립이 유난히 더 잘 몰입되는 건, 그래서다.

이 주의 Worst: <악마의 재능기부>가 용두사미가 된 이유 (11월 16일 방송)

Mnet <악마의 재능기부>

재능 기부를 모토로 한 예능인 Mnet <악마의 재능기부>에서 연예인 MT라니. 재능 기부와는 1도 연관 없는 방송이었다. 정말 말 그대로 순수한 의미에서의 MT. 그동안의 재능 기부 시리즈가 큰 반응을 얻지 못하자 소위 ‘게스트빨’로 시청률이나 이슈몰이를 해보려는 제작진의 꼼수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봤다. 만약 정말 그런 의도였다면, 미안하지만 그것도 먹히지 않았다.

상대방의 약점만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다가 끝나버린, 상처뿐인 MT였기 때문이다. 지상렬, 뮤지, 임형준, 김상혁, 김성수 등 별 콘셉트 없이 오로지 신정환-탁재훈의 친분으로만 엮인 것 같은 자칭 “막장 캐스팅” 게스트들은 버스에 탑승하는 순간부터 ‘신정환 몰이’를 시작했다. 점심 내기는 ‘카드 뽑기’로 하자는 둥, 버스가 잠시 정차하자 ‘섰다’고 외치는 둥, 심지어 지상렬은 신정환의 지극히 평범한 검정색 티셔츠를 지적하면서 “나 같으면 이런 거 안 입는다. 앞에는 카드, 뒤에는 화투 그림 새겨진 티셔츠를 입는다”는 식으로 말했다. 하지만 신정환의 과거가 이런 가벼운 농담 몇 마디로 희석될 정도의 무게는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재미도 없다.

Mnet <악마의 재능기부>

실내 토크배틀인 ‘손병호 게임’에서는 본격적으로 약점 공격이 이어졌다. 이혼한 사람 접어, 이혼했는데 자식 있는 사람 접어, 자숙한 사람 접어,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운전한 사람 접어 등. 자숙, 이혼, 음주운전 등 논란거리 혹은 상대방의 약점을 반복적으로 공격하고 나섰다. 웃음기는 사라진 지 오래다. 그 자리에는 피로도만 쌓일 뿐이었다. 역시 가장 중요한 건, 이것도 재미가 없었다. 김상혁의 음주운전, 탁재훈과 신정환의 자숙 카드는 너무나 많이 써먹은 낡은 아이템이다.

물론 토크쇼에서 연예인들의 자숙 토크는 단골 소재다. 그럼에도 지난 16일 방송된 <악마의 재능기부>가 유독 지루했던 건, 메인 진행자의 부재가 큰 이유다. “이 프로그램은 전문 진행자가 필요해”라는 임형준의 말이 정확한 분석이다. 신정환과 탁재훈 그리고 9명의 게스트까지 총 11명이 출연했는데, 중심을 잡아주는 진행자가 없다. 트로트 가수 허민영처럼 예능이 낯선 게스트를 챙기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방송의 중심을 잡고 흐름을 만들어가는 메인 진행자가 없다 보니 정체성 없는 방송이 될 수밖에 없다.

Mnet <악마의 재능기부>

심지어 신정환은 게스트의 지적을 받을 정도로 우왕좌왕하는 모습이었다. 출연자와 시청자들을 사로잡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입담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이날 MT 게임 설명에만 3분이 넘게 걸렸다. 게임의 종류를 소개하는 것도 아니고 “오늘 남자만 11명이기 때문에 더 재밌게 놀 수 있다”는 한 문장을 말하기 위해 3분이 넘게 걸렸다. 오죽했으면 제작진이 편집하고 CG로 게임 설명을 대신했을까.

신인 MC도 아니고 한때 ‘악마의 예능인’이라고 이름을 떨친 신정환이었는데 말이다. 그것이 <악마의 재능기부>가 용두사미가 된 근본적인 이유다. 신정환 때문에 시작한 예능이 결국 신정환 때문에 망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신정환의 과거 재능을 지나치게 맹신했던 탓일까. 오히려 예능 재능을 기부 받아야 할 입장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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