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버라이어티의 심장은 진정성입니다. 장소도 소재도 등장인물도 모두 다르지만 각 방송사에서 경쟁적으로 만들고 있는 이들 일련의 쌍둥이들은 화면 안에서의 모습이 모두 ‘리얼’하다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죠. 비록 현실은 매번 아이디어회의를 거쳐 완성된 무수한 설정과 사전 합의에서 출발해서 엄청난 수의 스텝이 지켜보는 앞에서 촬영한 뒤, 연출자에 의해 사후 편집된 내용을 내보내는 가공품이지만 그런 인공적인 과정을 거친 이후에도 미약하게나마 살아있는 생생함, 진실한 맨 얼굴을 강조하며 시청자들에게 이 모든 것이 리얼하다는 착각을 유도하는 것이죠.

이들에게 조작, 혹은 짜고 치기라는 지적과 비판은 그들이 밟고 있는 토대 자체를 위협하는 치명적인 공격입니다. 모두가 이들의 이야기가 인공적인 것임을 알고 있지만 그들이 화면 안에서 벌이는 그 많은 소동들이 결국은 치밀한 각본과 예정된 결말을 향해 달려 나가는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은 자기 발등에 도끼를 찍는 것과 마찬가지이죠. 이것이 모두 사실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하는 이들이 사실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배신감은 웃음과 즐거움이란 친근한 감정이 생기는 것을 완벽하게 봉쇄해 버리니까요. 모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방송이 끝난 이후에 그 진위여부로 홍역을 치루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리얼 버라이어티의 성공 여부는 어찌 보면 인공적인 방송환경에서 스스로 지키기 힘든, 자신이 파놓은 리얼이라는 함정을 얼마나 현명하게, 그리고 똑똑하게 피하며 나아갈 수 있느냐에 달려있어요.

그런데 코리안 루트의 두 번째 내용을 방송하면서 1박2일은 바로 이 치명적인 함정, 조작이라는 위험천만한 소재를 태연하게, 너무나 뻔뻔하게 활용했습니다. 그들 역시도 몇 차례의 복불복에서, 여러 번의 퀴즈 꼭지에서 조작이라는 논란과 의심을 받은 아픔이 있었으면서 이런 유쾌한 조작 쇼를 만드는 이들의 모습에는 별다른 망설임이나 고민 따위는 보이지 않더군요. 다 큰 어른들이 합심해서 UFO 인증 샷이라는 터무니없는 소재를 억지로 밀어붙이는 떼쓰기는 너무나 어이없어서 기가 차는, 1박2일만이 할 수 있는, 뻔뻔해서 귀여운 조작 사건이었어요.

물론 아무도 UFO를 찍었다는 이들의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장하는 7명의 형제들이나 그 억지스러운 주장에 기가 막혀하는 제작진들이나 이것이 모두 조작이고 거짓말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음모의 시작 단계부터 사진 조작 과정, 이에 대한 각각의 반응까지 친절하게 소개받는 시청자들 역시 UFO 사진이 가짜라는 뻔한 사실을 당연히 알고 있죠. 이 해프닝은 3월의 너무 이른 시간에 봄이 오는 풍경을 찍으라는 제작진의 무리한 과제에 좌절한 이들이 어떻게든 제작진을 협상 테이블에 않으려는 여행 도중의 작은 소란일 뿐입니다. 조작이라는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그토록 치명적인 소재도 이렇게 대놓고 뻔뻔하게 내밀면 또 다른 웃음 포인트가 된다는 묘한 뒤통수였죠.

그래서 전 이들의 조작 방송이 유쾌하고 의미심장했습니다. 코리안 루트 편에서 보여준 다른 여러 모습들과 함께, 1박2일이 무언가 하나의 페이지를 넘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동안 이들이 보여주었던 모든 요소들이 다 합쳐져 있는 종합선물 세트식의 구성은 하나의 대단원을 마무리하고 남극여행 무산과 뜻밖의 결방으로 얻은 휴식기 동안 새로운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요? 그것이 각종 복불복이나 야외 취침, 낙오, 사진 찍기 등등의 긍정적인 요소이든, 조작이나 떼쓰기, 억지 부리기의 다소 호불호가 갈리는 웃음 만들기나 부정적인 요소였든 간에 무언가 총정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우리는 지금까지 이렇게 달려왔다라고 친절하게 말해주는, 친근함과 식상함 사이에 서있는 1박2일의 완결판이었다고나 할까요?

아직 2주 분의 방송 분량이 더 남았지만, 코리안 루트 이후의 1박2일이 궁금하고 더 기대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조작 방송조차도 유쾌하게 활용하는 이들의 과감함과 재치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꽉 짜여진 1박2일 포맷에 어떤 전환을 가져올 수 있을지 무척 궁금해졌거든요. 물론 기존의 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시청자들이 멀미를 하지 않도록 은은하게, 조심스럽게 변해 가겠지만 이 4주간의(결방 사태까지 합친다면 거의 2달에 가까운) 여행이 끝난 뒤의 1박2일은 분명 달라져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토록 7형제들이 뻔뻔하게 우기던, 그리고 제작진들이 난감함에 머리를 부여잡던 진짜 미확인 물체란 그렇게 변해갈, 앞으로의 1박2일의 모습이 아닐까 싶네요. 일주일의 피로를 웃음으로 날려버려 줄 수 있는 그런 긍정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만 있다면 고작 10억의 돈이 문제겠어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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