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안현우 기자] 철이 지나도 한참 지난 대검찰청의 이적표현물 공안자료집이 아직도 공안 사건의 유죄 입증 자료로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대검찰청이 지난 1996년 6월 만든 ‘판례에 나타난 이적표현물’ 공안자료집이 실체를 드러냈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지난 9월 대검찰청에 공안자료집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한 바 있다. 대검찰청은 공개될 경우, 사생활의 비밀 또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비공개 결정을 내렸지만 부분 공개는 할 수 있다는 천주교인권위의 주장을 받아들여 지난달 26일 검찰 사건번호와 피의자 성명 부분을 가리고 공개했다.

유엔(UN) 자유권규약위원회는 지난 2015년 한국 정부에 국가보안법 7조를 페지하라고 권고했다.(JTBC 뉴스화면 캡처)

이번에 공개된 공안자료집 중 법원이 이적표현물로 인정한 도서 가운데는 현재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이 다수 포함돼 있다. △리영희의 <우상과 이성> △<전태일 평전>으로 다시 발간된 고 조영래 변호사의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 △송건호 등의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같은 역사서 △김지하의 <오적>과 같은 시집 △권운상의 <녹슬은 해방구>와 같은 소설 등이다. 공안자료집에는 법원이 이적표현물로 인정한 △도서 1072종 △유인물 1584종 △기타 121종 등 모두 2777종이 수록되어 있다.

더구나 문제는 1996년 발간된 공안자료집이 최근 공안사건에도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은 2017년 3월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반포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전자도서관 ‘노동자의 책’ 운영자 이진영 씨 사건에서 공안자료집을 유죄 입증의 증거로 법원에 제출했다.

그러나 2017년 7월 재판부는 “(지목된 이적표현물은)피고인이 직접 작성한 것이 아니어서 그 내용들이 피고인의 사상 및 가치관과 전적으로 부합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대부분 국립중앙도서관 또는 국회도서관에 비치되어 누구나 쉽게 열람이 가능한 것”이라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 씨는 무죄 판결이 날 때까지 반 년 넘게 구치소에 갇혀 있어야 했다.

천주교인권위는 “국가보안법 중 이적표현물 관련 조항은 근본적으로 표현 행위를 하는 목적 즉 내심의 사상을 처벌 대상으로 하는 것과 다름없어 폐지해야 한다”며 “폐지 전이라도 수사기관과 검찰은 공안자료집을 수사와 기소에 활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적표현물을 규정하고 있는 국가보안법 7조 제1항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제5항은 “(제1항의 행위를 할 목적으로) 문서·도화 기타의 표현물을 제작·수입·복사·소지·운반·반포·판매 또는 취득한 자는 그 각항에 정한 형에 처한다”고 밝히고 있다.

천주교인권위는 “국가보안법은 ‘국가의 존립·안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위태롭게’, ‘찬양·고무·선전·동조’ 등 불명확한 표현으로 인해 수사기관 또는 법원의 자의적인 판단이 가능하여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며 “반대자나 소수자를 억압하고 위축시키는 정권 안보 수단으로 오·남용된 역사가 있다”고 폐지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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