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지난달 31일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책임행정원 손 모 씨가 쿠키뉴스 김 모 기자와 갈등 끝에 "당신은 펜을 든 살인자"라는 문자메시지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 기자가 일반적인 취재 활동을 넘어서는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유족과 진상규명대책위원회가 김 기자를 강요미수,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손 씨와 김 기자의 갈등은 한국패션산업연구원에서 운영하는 한국패션센터 대관을 두고 발생했다. 김 기자가 B업체의 행사가 예정돼 있는 날짜에 A업체에게 대관을 해줄 것을 요구했고, 대관 담당자였던 손 씨가 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손 씨가 대관 불가 입장을 밝히자, 김 기자는 지난달 16일과 30일 2차례에 걸쳐 손 씨가 특정업체에 돈을 받고 봐주기를 했다는 등의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를 작성했다. 손 씨는 31일 김 기자에게 "당신은 펜을 든 살인자"라는 문자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대해 김 기자는 "문제라고 생각해 취재를 한 것"이라고 반박하며, "통화를 하다보니 서로 언성이 높아진 것은 맞지만, 괴롭히거나 폭언을 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미디어스는 지난 3일 이 과정에 대해 상세히 보도한 바 있다.(▶관련기사 : "당신은 펜을 든 살인자" 사건 전말)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책임행정원 손 모 씨가 지난달 31일 목숨을 끊기 전 쿠키뉴스 김 모 기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사진=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제공)

그런데 손 씨와 김 기자가 지난달 27일 나눈 통화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사건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9일 공공연구노조가 공개한 녹취록 일부에서는 김 기자가 손 씨에게 압력을 가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정황이 다수 드러나 있었다.

녹취록에 따르면 김 기자는 통화 시작부터 "안 그래도 기사는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차장님(손 씨)께서는 이 기사에 대해서 불만이 없느냐"고 물었다. 통화에 앞서 지난달 16일 <한국패션센터가 개인 건물? '갑질' 도 넘었다>라는 기사를 게재한 시점이었다.

해당 기사에서 쿠키뉴스 김 기자는 "대구시 보조금까지 지원받아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이 수탁 운영하고 있는 한국패션센터가 개인 건물처럼 변질 운영돼 '갑질'이 도를 넘고 있다는 지적"이라면서 "책임행정원 S씨가 16년 동안이나 대공연장 대회의실 등 대관업무를 도맡아 운영,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특정업체의 편의를 봐주는 등 각종 횡포를 부리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 손 씨가 "불만 있다"고 답하자, 김 기자는 "불만이 있으면 저한테 법적으로 고발해버리라"고 말했다.

한국패션센터의 관리 현황에 대해 잠시 질문을 던진 김 기자는 "저한테 따로 하실 말씀은 없느냐"고 물었고, 손 씨가 "따로 제가 뭐라고 하겠느냐"고 하자, 재차 "할 말은 없으시냐"고 되물었다. 이에 손 씨가 "제 입장은 그냥 서운하다는 거, 그것뿐"이라면서 "나는 진짜 지금까지 세상을 그렇게 안 살았는데 그렇게 사람을 매도하니까 서운하다 그건뿐"이라고 하자, 김 기자는 "형사고소 해버리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 기자는 손 씨가 가지고 있는 자격증이 뭐가 있는지 물은 뒤 "끝까지 고생하고 안전관리 그리 잘 했는데 사람 대응을 그리 못해서 되느냐"고 말했다. A업체의 대관 문제를 말한 것으로 보인다. 손 씨가 "제가 9월 달에 행사 다음에"라고 상황을 설명하려 하자, 김 기자는 "내가 그랬잖아요, 부탁을 드린다고"라면서 "내가 걔들 해주고 싶어서 한 것도 아니고, 굳이 안 해줘도 되는데 내가 전화했을 때는 나도 화가 나서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

손 씨가 "지금 행사가 거의 풀이다. 3월 첫쨰, 둘째는 대구 패션페어 해야 되고, 지금 국장님이 알고 계시는 거는 우리 유료대관된 것에서만 얘기한 것"이라면서 "우리 연구원에서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제가 팀장님한테 보고한 거는 우리 유료대관만 한 거지, 우리가 실제로 패션페어나 패션 체험행사라든지 그런 계획에 대해서는 말 안했다"고 설명하자, 김 기자는 "다 좋은데, '이 날은 비어있고 이런데 국장님 뭐 하시렵니까' 그런 건 담당자로서 한번 묻는 게 맞지 않느냐"면서 "그래야 내가 차장님이 빼준다고 그러면 '다음에 한번 보자'하고 끊을 수도 있는데 무조건 안 된다고 하고 말야"라고 불만을 제기했다.

손 씨가 "12월 달에 해달라는 건 12월 달에는 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자꾸 12월에 해달라고 하니까"라고 하자, 김 기자는 "그러니까 사람이 이래 만나서 얘기한다는데도 오지 말라고 하고, 그렇게 하면 잘 풀릴 수도 있는 얘기잖느냐"면서 "일을 자꾸 키워서 내 깡다구 테스트하는 것도 아니고"라고 말했다.

손 씨가 "선 예약이 돼 있어서 해줄 수 없는 상황인데 그걸 자꾸 얘기하시면 제가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하자 김 기자는 "나는 사업 안 한다. 내가 사업자도 아니고 기자가 무슨 행사를 하겠다고 대관을 묻겠냐"고 답했다. 손 씨가 "국장님이 직접 하는 건 아니라고 알고 어느 정도는 눈치 챈다. 저도 그 정도 눈치 없는 사람은 아니다"고 하자, 김 기자는 "내가 마지막으로 그리 물었을 때 손 차장이 한 발만 물러섰어도 일이 이렇게까지 안 오고, 나도 짜증도 덜 났고 감정도 안 상했고, 손 차장도 감정 안 상했고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11월 9일 대구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한국패션산업연구원 고 손진기 노동자 사망관련 김강석 기자, 검찰 고발 기자회견(고 손진기 노동자 진상규명대책위원회 제공)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손 씨의 유족과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등이 참여하는 진상규명대책위원회는 9일 기자회견을 열고 대구지검에 고발장을 접수했다. 기자회견에서 "오늘 우리 대책위는 '펜을 든 살인자'를 대구지검에 고발한다"면서 "고 손 노동자 사망 후 우리 대책위는 김 기자가 작성한 기사 내용을 분석하고, 기사 작성의 배경과 목적, 취재 과정에서 있었던 김 기자 일련의 행위 등에 대해 파악해 왔다"고 밝혔다.

진상규명대책위는 "이 사건과 관련해 패션산업연구원 관계자, 패션센터에서 함께 일한 노동자, 관련 업체 등 다수의 진술을 확보했고, 고인의 휴대폰에 남아 있는 통화 녹음파일, 패션산업연구원 관계자와 통화 등 녹음 파일도 확보했다"면서 "우리 대책위는 이러한 일련의 자료들을 법률자문단을 구성해 함께 검토했고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 김 기자의 기사작성 목적과 전후 과정의 행위가 대관업무 청탁 거절에 대한 보복 행위라고 결론지었다"고 밝혔다.

진상규명대책위는 김 기자가 ▲고인과 패션산업연구원 관계자에게 강요·협박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등의 일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누가 봐도 김 기자가 기사를 작성한 목적과 고인을 반복적으로 괴롭힌 일련의 행위는 대관업무 청탁 거절에 대한 보복 행위"라고 강조했다.

진상규명대책위는 "김 기자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진정으로 뉘우치고 고인과 유가족에게 사과하기를 기대해 왔다"면서 "하지만 김 기자는 쿠키뉴스를 사직했을 뿐 지금까지도 각종 언론 인터뷰를 통하거나 인맥을 동원해 지속적으로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며 아무런 반성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진상규명대책위는 "우리 대책위는 검찰이 김 기자를 즉각 구속 수사할 것을 촉구한다"면서 "그것이 최소한이나마 고인의 원혼을 달래고 명예를 회복하는 방안이다. 동시에, 비뚤어진 언론 권력에 의해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게 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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