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조가 가슴에 맺힌 이름을 마침내 불렀다. 그리고 누구에도 한 적 없었을 용서를 빌었다. 8년 전 효선과 다투다가 종아리를 맞을 때 끝끝내 하지 못했던 말도 잊지 않고 아버지 구대성에게 했다. 또한 8년 전 수학경시대회에서 상을 받을 때부터 아버지 구대성에게 칭찬받고 싶었던 어린 은조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며 울었다. 어디 8년뿐이겠는가. 구대성이라는 실재하는 인물이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은조가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 없었던 이름, 아빠였다.

진작부터 털어놓고 싶었던 마음에 잠긴 말 꺼내고는 은조는 눈물을 터뜨렸다. 효선이 정말 자기 아버지를 좋아했었냐고, 그렇다면 어떻게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을 수 없냐며 진심을 의심할 정도로 독하게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런 은조를 바라보는 세상 모두가 따라 울었다. 아무리 세상에 찌들었다 해도 은조의 눈물에 몰입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은조 문근영의 힘이며, 독하게 참았다가 터뜨리는 한방의 파괴력을 끌어낸 작가의 힘이었다.

스물네살 극중 은조보다 두 살 어린 문근영의 나이에 가능한 표현과 흡입력이라 믿겨지지 않을 상황이었다. 험한 세파 겪을 만큼 겪은 사람조차 찰나에 끌어들여 은조의 눈물과 함께 울게 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은조가 소리 내어 울 때쯤에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나이 많은 사내가 꺼이꺼이 소리까지 내어 울게 했다. 나쁜년이 맞다.

허나 슬픈 동화란 이런 맛이 또 아닐까 눈두덩에 손바람을 불어넣으며 괜히 변명을 하게 했다. 잠을 자기 위해서 자리에 누웠으나 자꾸 그 장면이 엔드리스 필름처럼 맴돌게 했다. 결국 잠자기를 미루고 문근영이란 연기자에 대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서 연기 잘한다는 배우들을 보아왔다. 그렇지만 겨우 스물넷의 나이에 사람을 이토록 들었다 놓을 수 있었던 이름을 끄집어내려 했지만 머리속에서 맴돌뿐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누군가와 비교하는 일은 포기하고 말았다.

드라마가 끝나고 이어지는 광고시간에서는 뭐 아직도 애기같은 표정으로 요구르트를 떠먹던 그 아이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뻔히 보면서도, 그럴 것이라 이미 알면서도 근영이에게 당하고 말았다. 일찍부터 국민여동생으로 스타가 된 문근영이 어디서 저런 설움을 경험해봤을까 의심이 갔다.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자랐을 텐데 언제 저런 설움을 배웠나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지금까지 10화의 모든 내용을 응축시킨 혼이 실린 1분이었다. 작두 위의 무당에게서도 느끼기 어려운 몰입을 보였다. 저러다 죽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눈빛 하나, 말 한마디에도 작은 체구 어디에도 있을 것 같지 않은 힘을 다 쏟아냈다. 보면서도 믿겨지지 않는 문근영의 연기는 보는 사람을 눈물의 주술에 걸리게끔 했다. 효선에게 인정받은 술항아리를 품에 안고 도가 곳곳을 도는 모습이 마치 무당이 굿을 하기 전 신을 모시는 단계인 신청맞이를 보는 느낌이었다.

대성을 죽음으로 몰고 간 배경이 된 수출사기로 인해 대성참도가는 경영의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또한 효선의 계모 송강숙이 매몰찬 진면목믈 드러냈으며, 누군가를 설득해본 적 없는 은조의 성격은 날카롭게 직원들과 맞서 가뜩이나 어려운 공장운영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아버지의 죽음이 자신에게 가져온 것이 단지 슬픔뿐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여전히 순진한 효선에게 강숙과 은조는 서로 다른 마음으로 현실을 알려주려고 한다.

강변에서 가련하게 우는 효선을 보듬어주고 다독이고 싶은 것이 언니 은조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음만 그럴 뿐 여전히 은조는 자기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법도 모르거니와 당장 효선에게 필요한 것은 강해지는 것이라 믿는 까닭에 매몰차게 대한다. 그것조차도 은조와 효선에게는 각기 다른 모습의 아픔이다. 다만 효선에게 꼭 있어야만 할 것만은 지켜줄 뿐이다.

20부작의 신데렐라 언니는 은조가 초혼하듯이 구대성을 아버지라 부르는 시점에서 정확히 전환점을 맞고 있다. 많은 오해와 아픔은 표면적으로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그대로지만 적어도 효선에 대한 은조의 본심 혹은 달라진 마음을 확인한 지점에서 지금까지와 다른 전개로 이어질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제 은조가 착해졌으니 효선이 나빠질 차례이다. 효선이 독해지길 바라는 은조의 바람대로.

자기를 버리지 말라는 대성의 말을 기억하고 있을 은조가 그렇게 독해져서 세상에 기댈 곳 없는 효선이 혼자서 비틀거리지 않고 설 수 있도록 또 다른 악역을 자처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시청자의 시선은 은조와 기훈 혹은 은조와 정우 등의 러브라인이 아니라 은조와 효선 두 자매가 서로의 진심을 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연애 따위 신데렐라 언니에서는 별 것 아닌 것이 될 듯하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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