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빈으로 대한민국을 찾았다. 아시아 순방 일환으로 일본을 시작으로 한국과 중국을 찾는 트럼프의 두 번째 일정이다. 북한을 사이에 둔 동북아시아 핵심 국가들을 찾는 트럼프는 오직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세일즈 외교이다.

무기 장사꾼 트럼프;
독도 새우와 위안부 할머니, 노무현의 회한과 친구 문재인의 유연함

손님맞이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게 누구라고 해도 말이다. 물론 反 트럼프 정서가 강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비난할 이유는 없다. 과격한 행동은 문제가 될 수 있지만, 트럼프에 대한 국민들의 다양한 반응은 당연하다.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외교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당연하다. 여전히 초강대국의 위상을 지니고 있는 미국 대통령의 25년 만의 국빈 방문이라는 점에서 극진한 대접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 도착한 트럼프를 위해 문 대통령은 깜짝 이벤트를 보여주었다. 청와대에서 만나기로 했던 두 정상은 완공을 앞둔 새로운 미군 기지에서 조우했다. 전 세계에 미군을 파병하고 있는 그들에게도 캠프 험프리스는 특별한 공간이다. 넓이와 최신 시설 등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최고의 공간이니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공동기자 회견 도중 미소짓고 있다. ⓒ연합뉴스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압박하는 트럼프의 전략에 맞서 문 대통령의 방식은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었다. 이 거대한 공간은 한국이 92% 비용을 부담했다. 토지와 시설에 들인 막대한 비용은 트럼프 정권이 외치던 방위비 분담에 맞서는 전략이었다. 최소한 막무가내식 주장을 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는 부여했다.

오후에 진행된 두 정상의 정상회담 결과 기자회견 자리에서는 예고된 내용이 등장했다. 한국이 미국의 첨단무기를 구매하기로 했다는 것과 북한과의 관계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모두가 예상가능한 수준의 발언이었고, 이 과정에서 무기 판매에 대해 과도한 성과를 자랑하는 트럼프의 행동은 역시 장사꾼의 면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국빈 만찬장에서 축사를 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콜라를 든 채 화답하는 트럼프 대통령. 많은 이들이 함께한 현장에서 유독 눈길을 끈 이는 바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였다. 이미 한 차례 청와대 초청을 받았던 위안부 할머니들. 그날 국빈 만찬장에는 이용수 할머니가 초대를 받았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이용수 할머니를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소개했다. 그리고 미 대통령이 위안부 할머니를 포옹하는 장면은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국빈만찬에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포옹하며 인사하고 있다. 왼쪽은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일본의 아베 정권이 과할 정도로 극진하게 트럼프 대통령을 대접했지만 돌아온 것은 무역 불균형에 대한 질타였다. 자국과 미 현지에서도 아베의 굴욕 외교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일 정부를 더욱 당혹스럽게 만든 이 장면은 시사하는 바가 너무 크다. 제멋대로 외교로 대한민국을 외교 미아로 만들어버린 이명박근혜 정부, 잃어버린 위상을 되찾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었던 문 정부는 빠르게 정상을 되찾고 있다.

균형 외교를 외치는 문 정부를 비난하는 자유한국당은 외교에 대해 말할 위치도 아니다. 중국과 사드 분쟁을 불러온 것이나, 위안부 문제를 졸속으로 체결한 것이나 남북 관계를 경색 시킨 그들의 전과는 결과적으로 '코리아 패싱'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자신들의 잘못으로 만들어진 용어를 문 정부에게 뒤집어씌우기에 여념이 없는 자들의 행태는 국가운영 능력 자체도 되지 않는 자들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트럼프 내외를 위한 음식에서도 문 정부의 당당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트럼프를 위해 내놓은 식단에는 '독도 새우'도 존재했다. 최고급 새우. 독도에서만 잡히는 이 새우를 올렸다는 소식에 일본 정부가 경악하는 것은 당연하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국빈 만찬에 초대되고 독도 새우가 식탁에 오르는 풍경, 일본에 저자세로 일관했던 이명박근혜 정부와 달리 외교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알려준 셈이다.

"정축년 설날 아침. 남한산성 내행전 마당에서는 조선의 왕이 명나라를 향하여 올리는 망궐례가 열렸습니다. 마당에 깔린 멍석 위에 올라 지극한 마음으로 절을 올린 사람들. 때는 조정이 청군에 쫓겨 산성으로 피신한 지 18일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망월봉 꼭대기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았던 청의 칸 홍타이지의 목소리는 낮게 깔렸습니다"

JTBC 뉴스룸 보도 영상 갈무리

"며칠 지나지 않아 청은 갇힌 성을 향해 포를 발사해 행궁을 부수었지요. 조정은 결국 엿새 뒤 스스로 성문을 열고 나와 청을 향해 삼배구 고두례의 예를 취해야 했습니다. 신흥의 청과 황혼의 명 사이에서 조선은 그렇게 무기력하게 무너져갔습니다"

"2003년 5월 1일, 취임 두 달을 맞은 노무현 대통령은 제가 진행하던 백분토론에 나와 당시로써는 가장 뜨거운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라크 파병으로 시끄러웠던 그때, 한 초등학교 선생님은 정부의 이라크 파병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를 물었습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나온 대통령의 답이 바로 남한산성의 최명길과 김상헌의 대립이었습니다. 강대국을 상대로 한 화의와 척화, 그 두 개의 노선 가운데 어느 쪽을 택하겠느냐는 질문의 형식을 띤 답변이었지요. 그로부터 17일 뒤, 미국을 다녀온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미국관이 바뀐 것 아니냐는 한 학생의 질문에 한 발 더 나아가 '한신도 무뢰한의 가랑이 밑을 기었다'는 고사를 인용했습니다"

"훗날을 기약하기 위해 지금의 수모는 견딜 수 있다는 고사… 듣기에 따라서는 너무나 솔직해서 듣는 사람이 오히려 당황스러운 말이기도 했습니다. 거기에는 어떤 자기 합리화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왕이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든 주변의 강대국들 사이에서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하는 것은 숙명이겠지요"

"지지율이 최악이어서인지 미국의 국익을 어느 대통령보다도 대놓고 외치는 트럼프와… 훗날을 위해서라면 상대의 바짓가랑이 밑을 기어가야 했다는 회한을 남겼던 전직 대통령의 친구,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만난 오늘… 한반도의 역사는 또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은 영화로도 개봉돼 큰 사랑을 받았다. 명과 청의 변환기에 딜레마에 빠졌던 조선,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을 담은 이 소설과 영화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이라크 파병과 관련해 시끄럽던 시절 백분토론에 출연한 노무현 대통령은 한 초등학교 교사의 질문에 한참을 고민하다 최명길과 김상헌의 대립을 언급했다. 화의와 척화. 그 두 개의 노선 중 어느 쪽을 택할 것이냐는 역질문으로 대답을 대신했던 노무현 대통령.

JTBC 뉴스룸 보도 영상 갈무리

백분토론 17일 뒤 미국을 다녀온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미국관이 바뀐 것 아니냐는 한 학생의 질문에 "한신도 무뢰한의 가랑이 밑을 기었다"는 고사를 인용해 답했다. 약소국인 대한민국이 초강대국인 미국과 대립각을 세울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고뇌가 그 답변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이라크 파병과 FTA는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던 이들이 돌아선 이유가 되었다. 고뇌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을 노무현 대통령은 국익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회한, 그리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와 함께했던 영원한 친구 문재인. 그는 대통령이 되어 미국의 대통령을 25년 만에 국빈으로 맞았다. 더욱 비대해진 중국과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북한, 그리고 군사 대국을 지향하며 다시 전범국을 꿈꾸는 일본. 여기에 미국과 러시아라는 강대국들이 모두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한반도에서 어떤 선택이 최선이 될까?

노무현의 회한과 문재인의 담대함. 그 긴 시간 동안 변한 것은 노련함이었다. 과거 실패 원인을 분석하고 다시는 유사한 상황에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문재인 정부에서는 돋보인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균형 외교를 통해 약소국인 대한민국이 강대국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정치는 그렇게 시작되고 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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