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과 관련한 민감한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첫 번째는 현직 검사가 수사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다. 6일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서초동 모 법무법인 사무실에서 상담을 받다가 빌딩 4층에서 투신한 변창훈 서울고검 검사가 그 주인공이다.

변창훈 검사는 국정원에 파견됐다가 2013년 당시 이른바 ‘현안TF’의 성원으로 검찰의 국정원 댓글 공작 관련 수사를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현안TF는 검찰의 압수수색을 대비해 가짜 사무실을 꾸려 놓고 핵심 증인들의 증언을 ‘코치’하는 등 수사 방해 행위의 ‘콘트롤타워’ 역할을 한 걸로 추정된다. 지난달 30일 현안TF 관련 수사를 받던 정 모 변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후 변창훈 검사까지 극단적 선택을 함으로써 검찰의 입지는 매우 곤란해졌다.

변창훈 검사의 빈소에 큰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는 건 위기에 봉착한 검찰의 오늘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유족들은 검찰 조문을 받지 않겠다며 반발했다고 하고 일부 검사들도 같은 자리에서 검찰 수뇌부의 구속영장 청구에 반발해 고성을 질렀다고 한다. 현안TF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은 따로 있고, 변창훈 검사는 단지 국정원에 파견된 입장에서 법률적 조언을 했을 뿐인데 강압적 수사로 일관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불합리한 처사라는 것이다.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문무일 검찰총장이 침통한 표정으로 퇴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수세력은 물을 만난 물고기 같다. 자유한국당 소속 국회 법사위원들은 7일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등을 겨냥해 “좌파검사가 정통 공안검사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라며 “죽음의 굿판을 멈추라”고 주장했다.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도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정치보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라고 했고 정치보복대책특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성태 의원도 “적폐청산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된 권력형 살인”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보수언론 역시 문재인 정권의 적폐청산을 빙자한 정치보복이 검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며 흥분했다.

그러나 억울하다고 하고 끝낼 문제는 아니다. 물론 변창훈 검사는 그 바닥에서 나름대로 훌륭한 인재였다고 한다. 보수언론은 압수수색을 하러 온 후배 검사에게 과일을 손수 깎아줬다는 후일담을 전하고 있다. 평소 검사들과 형님 아우 하는 법조 출입 기자들은 “그는 국가관이 투철한 사람이고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한 것뿐이라며 평소 억울해했다고 한다”는 평을 써내기 바쁘다. 궁금한 것은 아무리 맡은 직무가 그랬다고는 하지만 그런 똑똑한 사람마저도 국정원 심리전단 요원이 북한이 아닌 국민을 적으로 돌리고 한심한 댓글이나 쓴 일을 기계적으로 비호하는 일에 매진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냐는 거다.

보수세력은 때만 되면 그들이 생각하는 ‘종북좌파’를 단죄하자며 ‘법치주의’를 입에 담지만, 이 사건은 정작 그 보수세력이 만든 체제가 법치주의를 내면화 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법치주의는 법의 지배(The rule of law)를 뜻하는 말로, 굳이 유식한 개념을 동원해 말하자면 근대성(modernity)을 이루는 중요한 축일 것이다.

따라서 근대국가의 체제는 어쨌든 표면적으로 큰 힘에 큰 책임을 지워 놓았다. 국가기관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법적으로 명확히 구분돼있는 이유는 그래서다. 특히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정보기관이 이 선을 넘었을 경우 법치주의를 내면화 한 주체는 ‘근대인’의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문지상에 등장한 검사들은 “나라를 위해 일한 것 뿐”이라고들 한다. 이런 반응은 한 마디로 체제의 근대적 시도가 실패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권력에 대한 냉소적 인식은 그 결과이다.

같은 관점에서 보면 아직까지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이 왜 문제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는 일군의 인사들은 거칠게 말해 근대의 원리를 어떤 이유로든 내면화하지 못한 사람들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지난날 많은 사람들을 뜨거웠던 촛불시위의 한복판으로 불러낸 것은 국가를 ‘정상화’함으로써 스스로 근대적 주체로서의 자격을 회복하려는 열망이 아니었나 한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권의 ‘적폐청산’은 과거의 기만적이고 냉소적인 정치를 일소함으로써 지금껏 완성된 일이 없는 ‘근대성’을 회복하려는 몸짓을 다시 시도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적폐청산’의 와중에 명을 달리해야 했던 검사의 비극은 ‘정치보복을 중단’하는 것으로 보상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적폐청산의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해소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문제는 칼을 쥐고 있는 검찰 조직이 과연 이런 과제를 달성할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느냐는 거다. 검찰이 7일 e스포츠협회 사무실을 전격적으로 압수수색하고 옛 보좌진을 체포함으로써 ‘살아있는 권력’의 일부인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을 향해 칼을 겨눈 사건에 대해 생각해보자. 검찰이 세운 가설의 큰 줄기는 롯데홈쇼핑이 방송 채널 재승인을 위해 2015년 당시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으로 야당 중진 의원이었던 전병헌 수석 측에 금품로비를 벌였다는 것이다. 전병헌 수석은 e스포츠협회장을 지낸 이력을 갖고 있는데, 당시 롯데홈쇼핑이 e스포츠협회에 후원금을 낸 사실 역시 이런 가설을 뒷받침한다. 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이 후원금이 협회를 통해 사실상 ‘돈세탁’ 됐을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의아한 것은 이 의혹 자체가 새롭게 제기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2016년 롯데그룹 관련 수사 당시 검찰이 해당 의혹을 내사한 사실이 있다. 동아일보는 지난해 9월 20일자 지면에 이 사건 기사를 싣기도 했다. 즉, 이 건은 검찰 캐비닛에 잠들어있던 수많은 정치인 관련 사건 중의 하나였을 가능성이 크다. 검찰이 이 시점에 새삼스럽게 이 의혹 관련 수사를 ‘재개’한 것은 새로운 제보나 증거가 확보된 탓일 수도 있겠지만 ‘정치적 판단’을 내린 결과일 수도 있다.

동아일보 2016년 9월 20일치 지면 기사

‘정치적 판단’이란 결국 권력을 수사할 때는 여야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거다. 그렇잖아도 보수언론 등은 검찰이 정치보복을 의도한 하명수사에 무기력하게 장단을 맞추고 있다는 취지의 비판을 내놓고 있다. 이 시점에 살아있는 권력을 향해 칼을 겨누는 모습을 보여야 오히려 이른바 ‘하명수사’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게 사실이다. 이 사건 소식을 전하는 언론의 기사 말미에는 대개 이런 식의 해석이 덧붙여져 있다.

그런데 여기서 검찰의 사정을 좀 더 들여다볼 필요도 있다. 지난 정권에서 우병우 전 민정수석으로 대표되는 검찰의 권력지향적 모습은 모처럼 검찰개혁의 여론을 들끓게 만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신설하고 검경 수사권 조정을 강행함으로써 검찰의 권력을 축소하려고 한다. 권한이 줄어드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지만 검찰 조직 입장에선 치열한 수 싸움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법무 검찰개혁위의 공수처 권고안이 법무부안에서 축소된 것을 두고 “‘호랑이 안’이 나와서 ‘고양이 안’이 통과되고 실행은 ‘쥐꼬리’로 된다”는 우려가 나오게 된 건 이 때문이다.

이런 정국에 ‘살아있는 권력’의 핵심에 칼을 겨누면 어떻게 될까. 검찰 권력이 축소되는 것에 내심 불만을 가진 세력들은 “검찰개혁은 정권 실세에 대한 수사를 방해하려는 것에 불과하다”란 논리를 꺼내들 것이다. 이게 실제 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 논의에 부담이 될 것인지는 앞으로 지켜봐야할 일이겠으나 검찰 조직 입장에서 ‘나쁠 게 없는 수’인 것은 분명하다.

우리 공동체의 운명에 가장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경우는 문재인 정권이 ‘검찰개혁’과 ‘적폐청산’ 중 양자택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거다. 해결책은 언제나 기본으로 돌아가 핵심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좌고우면할 필요가 없다. 청와대 실세의 운명이나 검찰 조직의 권한 따위가 아니라 ‘적폐청산’의 대의와 목표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분명히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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