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들의 단편영화 제작기를 예능에 담은 <전체관람가>는 정윤철, 봉만대 감독의 제작기를 통해 메이킹과 영화의 콜라보의 의미를 십분 발휘해왔다. 하지만, 정윤철 감독의 <아빠의 검>이나 봉만대 감독의 <양양>이 게임과 실사 영화의 콜라보라던가, 19금 감독의 전체관람가 가족영화라는 신선한 시도라는 측면에서는 주목을 받았지만, 메이킹과 영화라는 균형추에서 영화적 완성도의 아쉬움을 남긴 것도 사실이었다. 그 아쉬움은 3000만원이란 적은 제작비와 짧은 촬영 시간의 핑계로 대신되었었다.

이원석 감독의 <랄라랜드>, 마침내 단편영화의 빛을 발하다

JTBC 예능 프로그램 <전체관람가>

이제 4회를 맞이한 <전체관람가>는 이원석 감독의 <랄라랜드>를 통해, 그런 핑계거리를 역설적 기회로 활용하며 프로그램 본연의 가치를 제시한다. 부족한 제작비 때문에 액션 영화에서 급 변경된 뮤지컬이라는 장르. 그것도 '노래방' 음향이라는 척박한 환경의 산물이 오히려 이원석 감독이 주제로 삼은 '아재들의 이야기'의 화룡점정이 되어 작품의 빛을 더한다.

<상의원>이라는 작품이 있지만, 그보다는 그 전작 <남자사용설명서>를 통해 자신의 색깔을 분명하게 했던 이원석 감독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 이래 <영웅: 샐러멘더의 비밀(2010)>을 유일하게 개봉한 극장에 가 찾아 볼 만큼 배우 김보성의 팬이었던 자신의 팬심을 영화에 활용하고자 한다. 그리고 김보성만큼이나 액션 배우로 일가견이 있는 이동준 배우와 함께하고자 한다.

예능프로그램 혹은 광고에 등장해 철 지난(?) '의~리'를 외치는 그 아재들의 감성을, 변화하는 시대에서도 여전한 그 무엇에 대한 고찰로 승화시키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아재들의 액션 감성을 고수시키고자 하는 그런 이원석 감독의 의도는 3000만원이라는 제작비에 엄격한 조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에 의해 대번에 가로막히고 만다. 그리하여 정윤철 감독의 '즉흥환상곡'처럼 아재들의 감성을 역설적으로 '랩 권하는 세상' 속에서 구원하고자 발리우드의 한국판 버전 '코리우드 뮤지컬'로 급변경한다.

열악한 제작환경이 만들어낸 코리우드 노래방 뮤지컬

JTBC 예능 프로그램 <전체관람가>

빠듯한 제작비에 하나 둘씩 톡방을 빠져나가는 스텝들, 그리고 말 꺼내기도 어려운 배우의 섭외 과정은 이제 <전체관람가>의 통과의례처럼 지나간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자신을 팬이라 알아봐주는 이원석 감독을 위해 혹은 여전히 영화인으로서의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감독을 위해,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촬영에 성실하게 임하는 배우. 생전 처음해보는 랩에서부터 60의 나이에 등에서 땀이 나도록 안무 연습을 하는 이동준 배우의 노익장(?)은 그 자체로 한편의 '인간극장'처럼 다가온다.

드디어 영화 개봉. 영화는 신나는 싱어롱 노래방 뮤지컬을 표방하며, 당부의 말을 덧붙인다. 뜬금없는 설정에 이해가 되지 않으신다면 잠시 옆 사람을 보거나 다른 생각을 한 후 본다면 이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영화는 여전한 의리의 김보성이 영화 오디션 현장에서 난감한 처지에 빠지는 컷으로 시작된다. 어떻게 요구해도 변하지 않는 김보성의 일정한 연기는 '갓잇'의 수식어를 요구하는 '랩부심'이 충만한 현장에서 당연히 거절당하고, 그에게 겨우 오디션 자리를 소개해준 후배의 타박이 이어진다. 그리고 뜻밖에도 음악이 흘러나오며 김보성의 '시간이 째깍째각~ 흐르는 세월~'하는 노래가 이어진다. 김보성의 노래에 맞춰 방금 타박을 주던 후배의 백댄서 변용까지, 우리가 이른바 '발리우드'라 칭하는 인도영화에서 흔히 보던 뮤지컬의 등장방식을 영화는 그대로 차용한다.

JTBC 예능 프로그램 <전체관람가>

혼자 술을 마시며 눈시울을 적시던 아버지 김보성 앞에 등장하여 아버지는 '아재'라며 구박하는 아들의 대사 역시 랩으로 대신한다. 이후 열 번의 오디션에서 계속 물을 먹은 아버지 김보성은 마지막이라며 후배가 권한 영화의 배역 '랩에 빠진 아버지'의 역을 맡기 위해 '랩하는 방법'부터 첫걸음을 뗀다. 그리고 이원석 감독의 <남자사용설명서>에 등장했던 방식을 차용하며 '보헤미안 랩소디'의 도입 부분처럼 CG를 활용한 김보성의 랩 입문기는 그 자체로 실험적인 영역으로서 단편영화의 맛을 한껏 만끽하도록 만든다.

드디어 랩에 빠진 아버지 역할의 오디션을 보는 날, 말이 래퍼지 80년대 촌스러운 운동복에 머리띠까지 두른, 아재미 풀풀 풍기는 김보성 래퍼가 뜻밖에도 오디션장에서 그처럼 오디션을 보러 온 그와 같은 왕년의 액션배우 이동준을 만난다. 아내의 롱 털코트를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과거를 상징하는 트로피까지 들고 온 또 다른 아재 배우 이동준.

두 사람이 트로트 반주에 어머님을 그리는 노래를 채 마치기도 전에 시작된 오디션. 의상까지 맞춰 등장했지만 빠른 비트박스에 이동준 배우는 차마 입도 떼지 못한 채 오디션 장을 나서고 만다. 김보성 배우라고 다를까. 하지만 한 번의 기회를 더 청한 그는, 그만의 리듬으로 '현실을 피한 돈키호테'로서의 자신의 현실을 토해내고 오디션 장을 빠져나간다.

얼마 후 다른 촬영 현장의 보조 출연자로 조우하고, 그곳에서도 타박을 받다 잠시 벤치에서 쉬던 두 사람은 아직도 두 사람을 알아보는 왕년의 팬들로 인해 한숨을 돌린다. 그리고 <라라랜드>의 그 절정의 음악 못지않은 아재들의 <랄라랜드> 협연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새롭지 않지만 새로웠던 아재들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

JTBC 예능 프로그램 <전체관람가>

영화가 끝나고 많은 감독들은 기립 박수를 쳤고 눈물로 환대했다. 이렇듯 이원석 감독의 <랄라랜드>는 그 특유의 B급 감성과 그 속에 담겨있는 아재들의 순정으로 인해 한 조각의 '맛있는 케이크'처럼 15분을 60분처럼 느끼게 다가왔다. 문소리의 평처럼 김보성, 이동준이라는 두 배우의 현실이 그대로 영화 속에 녹아든 아재들의 <랄라랜드>. 랩으로 대변되는 흐르는 세월 에 템포를 맞출 수 없는 '돈키호테' 같아진 아재들, 영화는 사나이로 대변되는 '순정'의 가치에 대한 경의를 표하며 나이듦에 대한 긍정적 단상으로 결론 내려진다.

이원석 감독의 영화는 새로운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제는 뒤처진 단어가 되어가는 아재, 그들의 존재가치를 '코리우드'라는 신조어가 어울리는 노래방 뮤지컬의 형식을 통해 그려낸다. 이제는 아니 예전에도 A급은 아니었지만, B급 그 자체로서도 얼마든지 가치가 있는 '아재'의 존재가치를 빛낸다. 바쁘게 변하는 세상에 오히려 변하지 않아 가치가 있는 영역에 대해 말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김보성, 이동준 배우의 재발견은 물론 나이 들어가며 세월에 뒤쳐져 조바심을 내는 이들을 위로한다. 장편이라면 투자를 받지 못했을 것이란 이 <랄라랜드>야말로 단편만이 해낼 수 있는 독보적인 감성의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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