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 언니>에서 김갑수가 죽으며 폭발적인 몰입을 이끌어냈다. 9회에서 은조가 기훈이 자신에게 편지를 보냈었고 효선이 때문에 그것을 못 받았다는 것을 안 순간과 김갑수가 죽은 순간은, <신데렐라 언니>가 시작된 이래 가장 보는 이를 격동시키는 장면이었다.

드라마 차원에서도 가장 극적인 두 사건이었지만, 은조의 입장에서 봐도 가장 거대한 두 사건이다. 그녀의 생애에 가장 크면서도 가장 안타까운 두 사건.

그것은 그녀가 처음으로 마음을 연 두 인물이 떠나간 사건이기 때문이다. 은조는 효선이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뒤틀려버렸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지만 물은 엎질러진 후였다. 그녀는 이미 가시갑옷 안으로 몸을 숨겨버렸다. 운명이 장난치지 않았다면 기훈을 잡을 수도 있었기에, 은조의 상처가 치유될 수도 있었기에, 뒤늦게 진실을 알게 된 안타까움이 크다.

새 아빠는 어쩌면 기훈보다 더 은조에게 중요한 존재였다. 왜냐하면 새 아빠야말로 은조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부모의 보살핌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 가능성을 보이자마자, 새 아빠가 은조의 손을 꼭 붙잡으며 ‘괜찮아’라고 말해주자마자, 그마저도 떠나버렸다. 아직 은조가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못했는데.

은조가 아버지라고 불렀다면 그 순간 은조의 마음이 조금은 치유가 됐을 것이다. 가시갑옷 안에서 나와 사람의 손을 잡을 수 있게 됐을 테니까. 하지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은 채 새 아빠는 떠나버렸고, 은조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은조가 어두운 병원 계단에서 오열하는 장면은 <신데렐라 언니>가 시작된 이래 가장 마음이 아팠다.

- 겹치기 출연 대왕 김갑수? -

이렇게 은조의 감정선을 이끌어내는 데에는 배우 김갑수의 열연이 큰 역할을 했다. 김갑수는 <신데렐라 언니>에서 중심을 잡아줬고, 이미숙과 문근영의 연기가 빛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이미숙이 러브스토리를 펼칠 수 있도록 해주고, 문근영이 새 아빠에게 차츰 마음을 열어가는 것에 설득력을 부여한 것이다. 그야말로 자신의 역할을 120% 해냈다고 할 수 있다.

김갑수는 최근에 겹치기 출연이 과도한 것 아니냐는 말을 잠깐 들었었다. 일주일에 그가 나오는 날이 6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월화엔 <제중원>에서 역관으로 나왔고, 수목엔 <신데렐라 언니>에서 새 아빠, 토일엔 <거상 김만덕>에서 악덕 상인으로 나왔다. 금요일만 빼고 매일 밤마다 ‘김갑수 드라마’가 방영된 셈이다. 그래서 한국에 중견 배우가 김갑수밖에 없느냐는 말까지 나왔었다.

하지만 드라마들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며 겹치기 출연 얘기는 쏙 들어갔다. 무려 세 편에 연이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식상하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배우 김갑수가 아니라 작품 속의 배역 그 자체가 되었다. 월화엔 그냥 역관이었을 뿐이고, 수목엔 은조의 새 아빠, 토일엔 상인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사람이 겹친다는 느낌이 없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해낸 역할이다. 그는 모든 드라마에서 확고하게 기여했다. <제중원>에서도, <거상 김만덕>에서도, <신데렐라 언니>에서도 김갑수는 극을 살렸다.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 배역을 연기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도록 했다. 그렇게 모든 작품에서 자신만의 존재감으로 확실히 역할을 해내니, 무리한 겹치기 출연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 세 번 죽다 -

<신데렐라 언니>에서 김갑수가 죽은 이번 주에, 공교롭게 <제중원>에서도 그가 죽었다. 항일 운동을 하다가 의롭게 죽은 것이다. <거상 김만덕>에선 그 전에 죽었다. <신데렐라 언니>에서 배신당했다는 충격에 죽었듯이, <거상 김만덕>에서도 배신당해 죽었다.

세 작품에 연이어 나오다가 세 번의 죽음으로 모든 작품에서 사라진 것이다. 이젠 당분간 김갑수를 볼 수 없게 됐다. 이렇게 갑자기 사라지니 허전해진다. 김갑수의 존재감은 그만큼 컸다.

비중이 작은 조연이면서도 주연 이상의 존재감을 느끼게 할 때 ‘미친 존재감’이라고 하는데, 그런 점에서 보면 김갑수야말로 미친 존재감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이전에 <연개소문>에 수양제로 나왔을 당시, 주인공이었던 청년 연개소문을 제치고 드라마를 사실상의 ‘수양제전’으로 만들어버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 연기력과 존재감 때문에 많은 드라마가 그를 찾을 수밖에 없다.

<신데렐라 언니>의 ‘대인배 아버지’와 <제중원>에서의 ‘대인배 역관’ 역할로 시청자의 김갑수에 대한 호감도도 대폭 상승했다. 조연으로만 나오는 중견배우가 이렇게 사랑 받기도 힘들다.

김갑수의 휴식이 그리 오랜 시간이 아니길 바란다. 벌써부터 그의 다음 연기가 기다려진다. 아무튼, 황망하게 새 아빠를 떠나보낸 은조가 불쌍하다. 울 때조차도 새 아빠를 마음껏 끌어안지 못하고 어두운 계단에서 홀로 우는 여린 아이 은조. 이런 은조를 두고 떠난 새 아빠가 야속할 뿐이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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