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8세 선거권 보장하라!", "정치는 19금이 아니다!",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다!"

지난 겨울 촛불을 든 청소년들의 외침이었다. 당시 촛불집회에서 청소년이 보여준 활약은 대단했다. 교복을 입고 행진을 하는가 하면, 수능이 끝난 뒤엔 청소년 촛불집회를 따로 진행하기도 했다. “촛불의 중심엔 청소년이 있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정도로 청소년들의 발언과 행동은 놀라웠다. 그 당시 선거권 연령을 낮추라는 청소년들의 요구는 당장 내일이라도 실현이 될 것처럼 정치권은 반응했지만, 본격적으로 탄핵정국에 들어서고 조기 대선이 시작되자 '만 18세 선거권 보장'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다행히 문재인, 안철수, 심상정 등 당시 대선후보들은 이를 약속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100대 국정과제에 ‘선거연령 하향’을 넣었지만 여전히 정치권은 묵묵부답이다.

▲지난 1월 18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과 한국YMCA전국연맹,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정치개혁 특위 관계자들이 선거연령 18세 인하 촉구를 위한 1만인 선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만 18세로 선거권 연령을 낮추자는 이유는 분명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만 18세가 되면 혼인신고를 할 수 있으며, 취직, 입대, 운전면허 취득이 가능하다. 즉 만 18세가 되면 국민의 4대 의무인 근로, 납세, 국방, 교육의 의무를 지게 된다. 그러나 의무만 있을 뿐 정작 권리는 없다. 권리와 의무의 관계를 설명하는 고등 교과서 ‘윤리와 사상’을 보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권리와 의무는 상호 보완적인 조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현실과 다를 거면 왜 가르치는지,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다”는 청소년들을 쳐다보기가 민망할 정도다.

선거연령 하향조정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치적 판단능력이 미흡하다.", "지적, 정신적으로 미성숙하다"는 것이 주된 논리다. 종종 위와 같은 이유로 선거연령을 낮추는데 반대하는 정치, 교육계에 계신 분들이 있는데 이 글을 빌려 한 마디 하고자 한다.

"당신들 모두 직무유기다!"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정치적 판단능력이 미흡하다면 미국이나 스웨덴처럼 초등학생 때부터 정치교육을 시작하면 된다. 미국에서는 5세 때부터 투표를 가르치고, 스웨덴에서는 유치원 때부터 민주주의와 투표의 개념을 배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나는 12년을 학교에 다니면서 배운 정치란 고작 사회과목 내에 있는 짧은 몇 챕터가 전부였고, 고등학교 땐 선택 과목이었던 정치과목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없어 아예 배우지도 못했었다. 미흡하다면 미흡하지 않도록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정치, 교육계에 종사하는 분들이 하셔야 하는 업무가 아닌가.

문제가 있으면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정치인들의 몫이다. 정치적 판단 능력이 미흡해서 또는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선거권을 줄 수 없다는 건 문제를 해결하려는 쪽이라기 보단 그냥 방치에 가깝다. 미흡하고 미성숙하다면 어떻게 하면 성숙하게 할 수 있을지 최소한 고민이라도 하는 것이 정치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또 "지적, 정신적으로 미성숙하다"는 발언처럼 대한민국 청소년을 폄하하고 무시하는 말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청소년들을 무시하는 것은 또한 우리를 무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적,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청소년들이 우리가 뽑은 대통령을 탄핵하는데 앞장서지 않았나. 미성숙한 청소년들이 보기에도 탄핵감이었던 대통령을 뽑은 우리는 그럼 무엇이란 말인가. 대한민국 청소년들을 그저 미성숙한 존재로 치부하는 것이야말로 셀프디스가 아닐까.

지난 촛불집회에서 청소년들이 보인 행동은 지적으로 보나 정신적으로 보나 세계 어느 나라 청소년들과 견주어도 전혀 뒤지지 않았다. 이런 청소년들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만 19세에 선거권을 부여하는 나라에서 살게 한다는 것. 나는 이것 자체가 모독이라 생각한다.

이는 곧 국가적 망신이기도 하다. “한국은 몇 살부터 선거권을 가지냐”는 외국인 친구의 질문엔 도대체 뭐라고 답해야 하는가. "우리 청소년들은 미성숙하다고 판단되어 만 19세부터 준다."라고 대답해야 하는지 종종 망설일 때가 있다. 이렇게 밖에 대답을 못하는 것이 국가적 망신이 아니고 무엇인가.

부족하면 채우고,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어느덧 촛불 1주년이 됐다. “정치는 더 이상 19금이 아니다”라는 청소년들의 외침에 이젠 정치권이 반응할 때다. 더 이상 미흡, 미성숙의 이유로 청소년의 선거권을 박탈할 수 없다. 만 18세 선거권을 반대하는 정치인 모두 직무유기다.

이제 막 정치를 시작한 정치인으로, 얼마 전까지 평범한 대학생이었지만 현재는 정치를 전업으로 하고 있다. 청년문제를 청년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접근하고자 노력하며, 그동안 2030에게 금기와 다름없었던 정치의 벽을 허물고자 틈틈이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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