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의 손석희(?)라면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김어준의 위상을 어렴풋이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옛날로 거슬러 가자면 딴지일보부터 거론해야겠지만 시사방송이라는 것에 국한해서 말하자면 한국에 팟캐스트 방송의 전성시대를 불러온 인물. 그중 하나이자 독보적인 인물이라고 소개할 수 있다.

공영방송이 쓰레기로 치부되던 9년의 세월. 헛소리만 하던 공영방송 뉴스를 대신해준 팟캐스트가 있었다. 어쩌면 이제는 이렇게 그를 장황하게 소개하는 것부터가 결례일 수도 있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일인이며, 현재는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으로 아침 출근길 샐러리맨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시사평론가이다.

SBS 시사교양프로그램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그가 마침내 지상파에 상륙했다. 그 자체로 김어준에 열광하는 팬층에서는 카타르시스를 얻게 된다. 아무리 정권이 교체되었다고 하더라도 세상은 여전히 제도권 매체들의 정제된 언어로는 전달하기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욕이 발전됐다는 나라 한국. 그 욕을 실컷 해주는 김어준을, 비록 다 듣지는 못해도 여전히 그 버릇 남 못주는 김어준의 지상파 진출은 묘한 성취감과 해방감을 동시에 준다.

아직은 파일럿 방송으로 이번 주 토·일요일에 우선 방송된다. 보통이라면 감히 <그것이 알고 싶다>를 결방시킨 이 프로그램에 반감부터 가질 법하지만 <그알>이나 <블랙하우스>나 시청층이 거의 겹친다고 볼 수가 있어 결방에 대한 불평이나 불만보다는 <블랙하우스>에 대한 기대감이 더 큰 주말 저녁의 풍경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육빛깔 시사요정 김어준의 지상파 방송의 면모가 드러났다. <그알>로 무척이나 친숙한 배정훈PD도 함께였다. 보는 입장에 따라서는 도무지가 산도적 같이 생긴 진행자의 외모부터 반갑다, 낯설다로 갈릴 다양한 반응들이 눈에 선하다. 그러나 사실상 이 프로그램의 콘텐츠에 대해서는 걱정할 일이 없다. 그보다는 뭔가를 많이 하려고 애쓴 흔적이 덕지덕지 더해진 형식에 문제가 있어 보였다.

SBS 시사교양프로그램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그렇지만 적어도 ‘과연 김어준이다’라고 이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는 소위 기계적 중립의 강박 따윈 없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시사토크쇼인 <썰전>만 해도 그렇다. 유시민과 박형준이라는 여야 혹은 진보와 보수라는 대칭을 이룬 형식에 얽매여 있다. 그렇다보니 자주 방송이 비효율적이고, 이슈를 겉도는 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김어준의 블랙하우스>가 논조의 대칭을 버린 것은 편향되게 몰아가기 위한 구조가 아니라 괜한 물을 섞어 스스로 논점을 흐리는 모순을 피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런 구조에 대한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완벽한 시사프로그램이 없었는데 하필 김어준이 한다고 해서 그것을 요구할 필요는 없고, 만약 그런다고 하더라도 김어준은 개의치 않을 것이다.

그렇게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 없는 것이 있다면 반면 있는 것도 말해야 한다. 있는 것은 어찌 보면 깜짝 놀란 부분인데 국제 코너였다. 이는 2010년에 종영된 MBC의 <W>를 떠오르게 했다. 이 코너의 패널인 미국인 타일러는 한국에 대해서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이 분명하나, 국제시사에 대한 관심은 매우 적다는 말을 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더 정확히 하려면 더 깊은 이야기가 필요할 것이다. 한국의 촛불혁명이 불편한 국가와 권력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난 9년간 한국은 국제사회로부터의 많은 소식들을 단절했고 때로는 왜곡하기도 했다.

SBS 시사교양프로그램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올해 몇 차례 논란이 되었던 외신 오역 및 오보 문제를 그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타일러는 “해외뉴스의 경우 직접 취재가 아닌 외신을 그대로 번역하는 한국 언론의 행태를 비판했지만 사실은 그조차도 쉽지 않다는 것이 외신을 대하는 한국 언론의 현실이다. 아무튼 지구촌이라는 말이 신조어가 아닌데 우리는 한국이라는 좁은 시야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김어준의 블랙하우스>가 일깨워주었다.

아직 <김어준의 블랙하우스>가 준비한 것들은 절반만 본 셈이다. 5일 일요일 밤에도 나머지 2부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말이 파일럿이지 반드시 정규편성될 것이다. 시청률 6.5%로 출발했지만 김어준의 지상파 진출이라는 이슈만으로도 화제성은 폭발력을 갖고 있고, 그알과의 콜라보까지 큰 그림을 그려본다면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는 꽤나 강력한 지상파 시사프로그램이 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주중과 주말, SBS의 전략적 선택에 달린 문제이다. MBC 정상화가 초읽기에 들어간 이상 SBS의 전략은 좀 더 공격적이어야 할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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