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날이 밝았다. 3일 박근혜 전 대통령 출당을 확정하는 자유한국당 최고위원회가 열리는 것이다. 이날 결정은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통합파를 넘어 보수정치 전체를 좌우할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자유한국당의 당헌 당규 상 문제 때문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출당에 최고위원회의 의결이 필요한지 여부를 두고 논란이 많았다. 홍준표 대표는 의결이 필요 없다는 입장이지만 그간 친박계 인사들은 의결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언론 보도를 보면 당 내외에서 3일 최고위를 분열의 기점으로 삼기 보다는 홍준표 대표의 구상대로 원만하게 처리하도록 하자는 여론이 강해진 것으로 판단된다. 친박계는 여전히 반발하는 모습을 보이겠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출당은 ‘마지못해’ 결정되는 모양새가 될 가능성이 크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2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열린 재선 의원들과의 오찬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식당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지도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출당시키느냐는 바른정당 통합파의 향후 행보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바른정당 통합파는 그간 논의를 통해 서청원 최경환 의원의 출당 여부는 문제 삼기 않기로 했다. 뒤집어 말하면 박근혜 전 대통령 출당 결정이 있어야 최소한의 명분을 쥐고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이들이 이미 복당을 기정사실화 했음에도 명분이 중요한 것은 ‘거사’를 함께 할 사람들의 ‘규모’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른정당 통합파들의 입장에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데려가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자유한국당에 복당해서도 나름의 ‘지분 행사’를 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15명 이상을 데려와서 자유한국당에 1당 지위를 안겨준다면 더할 나위 없는 그림이 된다.

이를 뻔히 아는 친박계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2016년 총선에서 유승민 의원과의 맞대결을 준비하다 김무성 지도부에 의해 공천을 받지 못한 이력을 갖고 있는 이재만 최고위원은 2일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이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할 경우 징계위원회 개최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김무성 의원 등이 당을 분열시키고 탈당을 해 자유한국당에 해를 입혔다는 이유다.

또 정우택 원내대표는 이날 바른정당 의원들이 개별적으로 복귀하는 것에는 의미가 없고 당 대 당 통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자강파라는 유승민 의원이 바른정당 대표가 되리라는 점이 분명한 상황에서 이런 주장이 가리키는 바가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친박계 일각에서는 바른정당 통합파가 복귀하더라도 당협위원장 등 직책을 맡지 못하게 해 공직선거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하나 같이 바른정당 통합파의 앞길이 ‘가시밭길’이 될 것임을 예고하는 사례다.

바른정당 통합파의 발걸음을 무겁게 만드는 움직임은 바른정당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갑자기 나타난 ‘통합전대파’의 등장이 그것이다. 남경필 경기도지사 등은 자유한국당 지도부 사퇴와 13일로 예정된 바른정당 전당대회의 연기를 전제로 양당이 통합전당대회를 통해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이는 자유한국당은 물론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바른정당 잔류파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어서 통합전당대회가 현실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주장은 나름의 ‘정치적 고려’가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남경필 경기도지사 등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정두언 전 의원은 2일 T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결국은 명분을 만들어서 돌아갈 것”이라며 “거기도 마음이 떠났다”고 주장했다. 당장 바른정당 통합파와 행보를 같이하진 않더라도 결국은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가기 위한 수라는 것이다.

물론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같은 날 C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무슨 당에 입당하거나 이런 일은 없다”고 말했다. 바른정당의 새 지도부가 ‘통합전대’ 주장을 걷어 찰 경우 당을 떠날 명분이 생긴다는 점을 고려하면 내년 지방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수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아무튼 적어도 ‘통합전대’를 요구하는 주장에는 바른정당 통합파가 단지 박근혜 전 대통령 출당만을 명분으로 해서 자유한국당에 복당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판단이 내포돼있다는 것을 평가할 수밖에 없다. 김무성 의원 등의 입장에서 보면 껄끄러운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유승민 의원이 보수대통합론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는 것도 김무성 의원 등의 처지에서 보면 문제다. 유승민 의원은 1일 C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내년 3, 4, 5월에 문재인 정부가 어떻게 돼 있을지 자유한국당이 어떻게 돼 있을지(를 보고) 그때 가서 바른정당이 지금보다 훨씬 높은 지지를 받고 정계개편의 판이 흔들리면 개혁보수를 가지고 충분히 승부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조건이 갖춰진다면 지방선거 전이라도 보수야당의 통합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차기 대표가 유력한 유승민 의원의 이런 입장 표명은 지금 통합하지 않으면 지방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바른정당 통합파의 명분을 위축시킨다.

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바른정당 의원총회에서 유승민 의원과 김무성 의원이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상황을 종합해보면 자유한국당이 박근혜 전 대통령 출당을 최종 결정해 바른정당 소속 일부가 복당한다 하더라도 그 정치적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이들은 ‘정치적 부담’취급을 받으며 설움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사실은 이들의 결단으로 자유한국당의 성격이 바뀌는 등의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물론 이런 평가는 단기에 그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이 장기적으로 다음 대선을 겨냥한 여당 대 야당의 1대1 구도 만들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유승민 의원도 자유한국당 내에도 ‘개혁적 보수’ 노선의 동조자들이 있을 수 있다며 국민의당 일부를 포괄하는 보수대통합 노선을 그간 주장해왔다.

자유한국당 혁신위는 지난달 31일 긴급 성명을 발표하고 3단계 보수통합론을 내놓은 바 있다. 먼저 바른정당 일부와 소(小)통합하고, 이후 ‘시민사회’와의 연대 강화를 통한 중(中)통합을 이루며, 마지막엔 보수세력 전체를 포괄하는 대(大)통합을 하겠다는 것이다. 바른정당으로 시작해 ‘아스팔트 우파’를 포섭하고 국민의당 일부까지 하나로 묶겠다는 구상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이들의 구상이 실제로 작동할지는 장담할 수 없으나, 계획이 현실이 되더라도 이를 통해 만들어지는 ‘유일 보수정당’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 이런 점에서 바른정당 통합파들의 섣부른 복당과 이로 인한 고립은 결과적으로 보수정치의 중도개혁적 성격보다는 극우 포퓰리즘적 성격을 강화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우려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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