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한 연구기관의 50대 직원이 기자에게 "당신은 펜을 든 살인자"라는 문자메시지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달 31일 오후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책임행정원 손 모 씨가 한국패션센터 건물 지하 주차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손 씨는 이날 새벽 2시 2분 쿠키뉴스 김 모 기자에게 "당신은 펜을 든 살인자"라는 문자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패션센터에서 대관 업무를 맡고 있던 손 씨는 김 기자와 건물 대관 신청 문제를 두고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책임행정원 손 모 씨가 지난달 31일 목숨을 끊기 전 쿠키뉴스 김 모 기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사진=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제공)

손 씨가 남긴 글에 따르면 지난달 10일 김 기자의 "12월 행사 좀 도와줄 수 없냐"는 부탁에 손 씨가 "12월은 도저히 안 된다. 2018년 4월 이후에 된다"고 답하자, 화를 내면서 "나도 나이를 먹었다. 대구시에 출입하는 기자도 알고 국장도 알고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하느냐. 시장님에게 전화하고 당신 십몇 년 성실히 근무한 것 박살낸다. 연구원 찾아가겠다"고 협박했다고 적혀 있었다.

지난달 12일에는 김 기자가 한국패션산업연구원 본원을 찾아가 간부 앞에서 전화기를 스피커폰으로 켜놓고 "당신 마음대로 하라고 했지"라고 말하고 손 씨가 "예"라고 하자 욕설을 했다고 기록돼 있었다. 손 씨가 "녹음합니다"라고 하자, 김 기자는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지난달 16일 오전에는 쿠키뉴스에서 패션디자인개발지원센터 대관 현황을 대구시를 통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고, 손 씨는 2015년부터 2017년 9월 말까지 대관현황을 작성해 보고했다. 그리고 16일 오후 쿠키뉴스에 기사가 났으니 사실을 확인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16일 9시 50분 경 김 기자는 쿠키뉴스에 <한국패션센터가 개인 건물? '갑질' 도 넘었다> 기사를 게재했다. 해당 보도에서 쿠키뉴스는 "A모 씨는 12월에 진행할 행사를 위해 한국패션센터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행사 일정이 없는 날을 택해 다목적 공연장 대관신청을 냈지만, 열흘 정도가 지난 뒤 휴대전화로 대관 불가 통보를 받았다"면서 "패션센터 대관 책임자는 '6개월 전부터 다른 업체에서 구두로 계약했기 때문으로, 본인과 협의되지 않은 인터넷 대관 신청은 절대 허용할 수 없다'는 일방적인 이유였다"고 보도했다.

또 "B모 씨는 한국패션센터에서 웨딩행사 등 여러 행사를 치르고 있지만, 한 번이라도 뒤끝이 개운한 날이 없었다"면서 "한 행사가 끝나면 다음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공연장의 대관은 필수 요건으로 대관 책임자와의 관계 유지를 위해 '성의 표시'는 빼먹지 않고 했었다. 그런데도 늘 사정하고 매달려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가 한 없이 부끄럽고 개탄스러웠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쿠키뉴스는 "대구시의 보조금까지 지원받아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이 수탁 운영하고 있는 한국패션센터가 개인 건물처럼 변질 운영돼 '갑질'이 도를 넘고 있다"면서 "S씨가 16년 동안이나 대공연장과 대회의실 등 대관 업무를 도맡아 운영,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특정 업체의 편의를 봐주는 등 각종 횡포를 부리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고 보도했다.

해당 보도 이후에도 쿠키뉴스는 지난 달 30일 센터를 관리하는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이 손 씨에게 별다른 조치 없이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는 내용을 재차 보도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김 기자는 "손 씨와는 몇 번 전화통화한 것이 전부고 본 적도 없으며 내가 협박을 하거나 괴롭혔다는 것은 사실 무근"이라면서 "아는 업체의 민원이 있어 대관에 대해 알아보다가 문제점이 많아 기사를 두 번 쓴 것이 전부"라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2일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과 유족들은 성명을 발표하고 손 씨의 죽음에 "기자와 대구시의 외압이 없었는지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공공연구노조와 유족들은 "손 조합원은 최근 쿠키뉴스가 패션센터 대관업무를 비판하는 갑질 기사와 반복되는 보도에 억울함을 호소하며 자결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10월 16일, 10월 30일 망자가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 각종 횡포를 부렸다는 추측성 기사가 큐키뉴스 김 기자에 의해 보도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그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목숨으로 진실을 밝혀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누가 갑질과 외압을 통해 조합원을 자살에 이르게 한 것인지 진실을 밝혀야 한다"면서 "언론사, 대구시, 한국패션산업연구원 등 지위고하를 막록하고 조합원을 자살케 한 배후가 누구인지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공연구노조와 유족들은 "자살한 조합원이 남긴 문자와 문서는 자신의 죽음이 무책임한 언론보도와 외압에 의한 사회적 타살임을 주장하고 있다"면서 "노조와 유족들은 사망에 이른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검찰고발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대응할 것이며, 책임을 끝까지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손 씨의 장례식을 무기한 연기했고, 3일 오전 11시 대구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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