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고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꺼내보는 시기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뒤따르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적어도 그 출발은 기록에서, 과거의 사람들이 남겨놓은 자국에서 나아가는 법입니다. 기록 그 자체에만 집착하며 있는 그대로를 믿는 것은 순진한 태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역사를 목적 달성을 위해 자의적이고 간편하게 바꾸어 버리는 것도 문제겠죠. 근래 TV 드라마를 주도하는 사극에 대한 저의 가장 큰 불만은 바로 이것. 재미를 위해 너무나도 간편하고 손쉽게 그 내용을 변형시켜버린다는 것입니다. 역사와 가까워지게 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하고 있지만, 그 가까워진 사람이 알고 보니 아애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 역시도 곤란한 것 아니겠어요?

이병훈 PD와 제작진들은 장희빈을 신분차별의 장벽과 당파 싸움의 한계를 동시에 극복하려다가 좌절한, 그래서 그녀의 또 다른 분신인 동이의 선행주자, 혹은 멘토로서의 역할을 맡기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총명하고 야심이 넘치면서도 한없이 진취적인 그녀는 현재 동이가 그려내고 있는 인물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매력을 가진 인물이에요. 장상궁 역 이소연의 존재 때문에 오히려 주인공 한효주의 빛이 가려버릴 정도로 이 드라마의 초반 분위기는 장희빈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적극적인 해석은 점점 그녀 주위의 사람들, 특히 이번 화에 처음 등장한 장희빈의 오라버니, 장희재에게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마치 이병훈 PD의 전작, '정조 이산'에 나왔던 책사이자 야심가 홍국영을 보는 것 같이 묘사될지도 모르겠네요. 정사인 조선왕조실록은 물론이고, 각종 야사에서도 전혀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볼 수 없는 난봉꾼이자 망나니, 누이의 세를 업고 좌충우돌하던 이 인물이 실은 그녀의 야망을 달성할 수 있도록 도와준 숨겨진 모사의 주인공처럼 그려지고 있으니까 말이죠. 하지만, 정말로 그가 그렇게 명민하고 뛰어난 기재를 갖춘 인물이었을까요?

예고편에 나온 것처럼 그의 정계 입문은 낙하산입니다. 그의 직위는 오랫동안 동이가 배경으로 하는 시대인 숙종 당시 확대 개편된 금군, 즉 왕실경호대의 실세인 금군별장이었고 이후, 장희빈의 세가 최고조에 달하던 1692년(숙종18년)에는 경기 지역의 군을 총괄하는 총융청이란 곳의 우두머리인 총융사가 되었죠. 오늘날로 말하자면 대통령 경호실장을 거쳐 수도방위 사령관을 역임한 인물입니다. 당시 사회의 가장 강력한 권력인 군권의 핵심을 쥐고 있었던 셈이니 그 위세가 얼마나 강력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죠.

하지만 그의 인품과 학식은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비웃고 있습니다. 그의 방자함을 규탄하는 상소문도 여럿이었고, 그 표현 중에서는 초방(椒房), 즉 왕실의 외척에 의지한 낙하산인데다가 일의 대소를 알지 못하고 문자에 서툰, 즉 무식한 인물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죠. 이렇게 그를 규탄하는 상소를 숙종이 윤허한 것을 보면 장희재의 자질이 그리 뛰어나지 못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비단 조선왕조실록이 승자의 기록이고, 외척에 대한 평가는 원래 박한 것이라 폄하한다 해도 장희재 개인의 능력보다는 누이의 후광이 더 큰 평가의 기준이었던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실제로 그의 실각과 죽음도 결국은 다른 외척들과 마찬가지로 장희빈의 몰락과 명운을 함께 했으니 그 역시도 독립된 변수라기보다는 그저 누이의 세력을 대표하는 얼굴 중 하나였던 것이죠.

그런 그를 때를 얻기 위해 일부러 추문을 감수하는 흥선 대원군의 기행처럼 그려내며 등장시켰으니 동이가 어떤 장희재를 그려낼지도 이 드라마를 보는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되겠군요. 하지만 과연 동이가 그 뒷수습을 어떻게 깔끔하게 그려낼 수 있을지, 필연적으로 몰락하게 되는 장희빈의 뒤를 어떻게 그녀와 너무나도 닮은 동이가 이어나갈 수 있게 할지가 자못 궁금하고, 한편으로는 걱정스럽습니다. 독창적인 해석도 좋지만, 요즘 사극들은 무늬만 사극일 뿐 실제 역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가 너무나 많거든요. 어쩌면 야심가, 장희재의 활약은 동이가 앞으로 반드시 마주치게 될 역사 해석의 독창성과 왜곡의 갈림길에서 선택하게 될 기준점이 될 수도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