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김재철 사장 퇴진’과 ‘MBC장악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들어간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이근행)가 27일로 23일째 총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26일, MBC는 노조와 노조원을 향해 업무 복귀 시한을 못 박은 ‘업무 복귀 명령’을 내렸다. “삭발 투쟁과 단식 투쟁을 제일 싫어한다”고 말하던 이근행 본부장은 무기한 단식 투쟁에 돌입했다.

26일 오후 4시 서울 여의도 MBC본사 1층 현관에서 이근행 본부장을 만났다. 이날 이 본부장은 지난 2009년 3월 노조위원장에 취임한 이후 처음으로 <미디어스>와 인터뷰를 했다. 노조위원장에 취임했을 때에도, 방송문화진흥회의 전횡이 계속 될 때에도, 엄기영 전 사장이 사퇴했을 때에도, 김재철 사장이 취임했을 때에도 <미디어스>는 이 본부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지 않았다. 하지만 ‘단식 투쟁을 제일 싫어한다’고 말하던 이 본부장이 26일부터 ‘무기한 단식투쟁’에 돌입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더 이상 인터뷰를 미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는 MBC노조의 총파업을 두고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MBC안팎의 상황을 용인하면서 노조 활동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재철 사장 체제에 대해서는 “노조의 존재 가치가 부정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즉, 지금의 김재철 사장 아래에서는 MBC의 독립성을 지킬 수 없고, 공정방송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MBC노조의 총파업에 대해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출구가 없고, 뾰족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 팽팽한 싸움에 대해 MBC노조는 “김재철 사장의 사퇴만이 사태의 해결 방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본부장은 ‘출구’가 보이지 않음을 알면서도 MBC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단식 투쟁에 돌입한 이유, 사태 해결을 위한 방안 등을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다음은 이근행 본부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언론노조 MBC본부 이근행 본부장 ⓒ송선영
지난 5일, 총파업에 돌입했다.

지금 MBC노동조합이 왜 총파업을 할 수밖에 없는지 지난 3주간 누누이 이야기 했다.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MBC대주주, 이하 방문진) 이사장 발언이 기폭제가 되어 정권이 MBC를 장악하려 한다는 의도가 만천하에 들어났다. 그 과정에서 김재철 사장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김우룡 전 이사장에 대한 고소·고발을 약속했고, 황희만 윤혁 두 사람에 대해 (보직 박탈을) 약속했음에도 한 달 만에 이를 파기하고 번복했다. 우리들의 파업은 불가피했다. 이러한 상황을 용인하면서 MBC의 독립성을 지키며 정상적으로 노조 활동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상적인 활동한다는 것은 노조가 공정방송의 견인차 역할을 한다는 것인데, 김재철 사장 체제에서는 노조의 존재 자치가 부정되는 상황이었기에 파업이 불가피했다.

총파업에 들어간 지 4주째인 26일, 단식 투쟁을 선언했는데?

그렇게 3주가 흘렀다. 4주째이다. 김재철 사장은 지난 과정에서 스스로 실체, 수준 등을 다 드러냈다고 본다. 주장의 논리적인 구조도 없고, ‘참 수준 낮은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 동안 과정에서 노조의 희생도 희생이지만 방송 파행이 지속되는 등 회사가 상처를 입은 상황임에도 김 사장은 자기 자신의 입지만을 지키기 위해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MBC 구성원 누구도 그를 옹호하지 않는다. 자신이 임명한 임원 몇 명만 빼고, 국장급들도 다 돌아섰다.

이 사람에 대해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생각했는데 솔직히 한계를 느낀다. 지금 국면에서 개인적으로 몸부림을 쳐 보는 거다. 어떻게 보면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수단들을 다 써보는 것이다. 지금 상황은 파업을 철회하거나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다. 그냥 돌아간다는 것은 언론 노동자로서 ‘자기 자신의 죽음’ 같은 거다. 정말 아무런 영혼이 없는 언론인으로서 사는 것, 그 누구도 스스로 용인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처절한 몸부림 같은 거다. 사람이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 정말 그러면 안 된다는 항변 같은 것이다.

이번 일이 지나면, 쓰러지든 일어나든 간에 다시 싸울 수밖에 없다. 노조원들에게 업무 복귀 명령이 내렸지만 절대 동의하지 않을 거다. 한 단계 격렬한 싸움으로 진행될 것이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차원에서 고민하다가 하는 것이다. 이걸로 죽기야 하겠나. 몸이 좀 상한다고 해서 죽지는 않을 것이다. 정직하게, 한 번 스스로 해보는 거다. 알아들을 지는… 참, 모르겠다.

총파업 돌입 초반과 비교했을 때 지금, 내부 구성원들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다. 약간 들끓고 있다고 해야 하나? 그런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번 파업은 철저하게 내부 구성원들, 우리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해 언론관련법에 이은 파업으로 피로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파업에 들어갔다. 가능하면 피해왔다. 솔직히 ‘왜 파업해야 하나’ ‘정말 우울하다’라는 그런 정서도 있었을 것이다. 파업을 하지 않고 MBC를 지키려 했음에도, 저쪽에 의해 파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즐거웠을 리 없다. 지금 상황이 지난해 (언론관련법 파업 때)보다 더 중요하다. 언론인으로서 이번 싸움의 중요성, 의미에 대한 자각들이 이뤄졌기에 갈수록 자기 확신들을 강화하고 이번 투쟁의 의미를 부여하기에 투쟁 수위가 스스로 올라가는 것 같다. 이번 파업이 어떤 식으로 귀결되든 간에 구성원 개인과 조직에게 귀한 거름이 될 거라고 본다. 뉴스 비판 정신과 공정방송 실현 등 여러 자양분이 될 거라고 본다.

“업무 복귀 명령, 예상했던 수순이다”

업무 복귀 명령이 내려졌다. 예상했던 수순이었나?

예상했던 수순이다. 예전 (파업 때)에도 보면, 2~3주 지나면 업무 복귀 통첩을 하고, 징계 조치, 민·형사상 고소고발 등 조치들을 한다. 예정된 수순이기에 그 자체가 우리들을 위축시키지는 않는다. 회사는 원칙을 운운하면서 주도자와 참여자 모두 법과 사규에 따라서 처벌하겠다고 했다. ‘아직도 참 정신을 못 차리고 있구나’ 싶다. 문제가 무엇인지, 구성원들이 한 달 다 되도록 앵무새처럼 되뇌고 있음에도 철저하게 외면하면서 뭐가 원칙이라는 건지, 우리가 원칙에서 뭘 벗어났다는 건지, 김재철의 원칙이 뭔지… 원칙이라면 황희만 부사장을 임명 안 해야 되는 거 아닌가? 김우룡 전 이사장을 고소·고발하고 청와대의 ‘쪼인트 파문’을 파헤쳐야 하는 거 아닌가?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김재철 사장 퇴진 말고는 MBC사태 해결 방안이 없다고 보는가?

갈수록 그런 생각이 든다. ‘정말 위험한 사람이다’. 언론사 사장이라면 내부 구성원들과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신뢰를 받아야 하는데 기본적인 신뢰를 잃었다. 김재철 사장은 이미 그런 신뢰를 상실했다. 자격을 상실했다. 본인이 물러나는 게 회사와 사회를 위한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3월4일 합의, 후회는 없나?

절대 후회하지는 않는다. 하루아침에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합의에 그치지 않고 노조, 구성원들이 싸워왔고, 거기(3월4일 합의)에 대해 평가했던 분들에게 (지금 투쟁을 통해) 보여드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족한 측면이 있을 수 있지만 당시 그 합의는 우리가 현장으로 돌아가도, 김재철이 사장으로 존재하더라도, MBC의 가치, 비판 기능, 공정방송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저력이 충분히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최승호 <PD수첩> PD가 보여줬던 것과 파업 상황에서도 천안함 보도가 상대적으로 균형을 유지했던 것에서 증명 됐다고 본다.

지금 상황에서 지난번과 같은 김재철 사장과의 합의가 나오기는 힘든가?

지금은 되게 힘들다.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합의가 나왔던 건데, 그 뒤 약속을 파기하고 신뢰를 상실하는 등 김 사장이 너무나도 자격 미달, 수준 이하의 행태들을 보였기 때문에 그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지난 한 달 사이, 많은 분들이 합의할 수 없는 상황을 지켜보지 않았겠나. (합의를 할 수 있는) 그 이상의 뭔가가 있어야 되겠다. 그렇지 않고서는 쉽게 이 상황을 수긍할 수 없다. 사장으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확신이 더욱 커지는데 어떻게 (대화) 상대로 인정하고 할 수 있겠나. 현실적으로 지금 상황에서는 힘들다.

“방문진 개혁 없다면, 또 다른 김재철 항상 나올 수 있어”

▲ 언론노조 MBC본부 이근행 본부장 ⓒ송선영
만약 김재철 사장이 사퇴한다 치더라도, 또 다른 낙하산 사장이 올 수 있지 않나?

김재철 사장 퇴진 투쟁은 하나의 문제를 환기시키는 효과(계기)다. 근본적인 부분은 방송문화진흥회 개혁이다. 방문진 법을 개정하고, 방문진의 구성, 선출 방식 등을 새롭게 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를 사회적으로 환기시키지 않고, 방문진의 개혁이 없다면 또 다른 김재철은 항상 나올 수 있다. 방문진이 개혁되어야 한다.

파업에 대한 여론이 예전과는 조금 다른 거 같다. 언론 보도 자체가 많이 안 되고 있고, 정치권 등에서도 큰 이슈가 되지 않고 있다. 서운하지는 않은가?

파업 투쟁에 들어갈 때부터 ‘천안함 침몰’이라는 상황이 이미 있었다. 봉은사 사건도 있었고. 그렇기에 우리의 이슈가 가려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시점에 우리는 투쟁을 결행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투쟁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이후에는 지방선거, 월드컵 등 이슈 때문에 못 들어갔을 거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권력과의 문제들은 덮였을 거다. 파업에 대해 보수언론이 철저히 무시할 거라는 것과 사회적 이슈로 커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시간 지나면 알려질 거라 생각하고 시작했기에 서운하지는 않다.

노조가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우리가 요구하는 바는 세 가지다. △MBC 장악 음모가 드러난 것에 대해 정치권 등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김재철 사장이 퇴진해야 한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도록 방문진이 정치적 중립성을 가질 수 있도록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요구들이 모두 관철되었으면 좋겠다. 현업으로 빨리 돌아가서 일하는 게 꿈이고 고민이다.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MBC가 최후의 보루다’라는 말, 부담되지는 않은가?

부담스럽다. 한 사회는 변화시키는 데에는 정치인, 시민사회단체의 책임도 있지만, 어떤 사회적 가치를 지키는 일은 특정한 개인, 집단의 몫이 아닌 사회 전체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MBC에 거는 기대의 진심은 충분히 알지만 우리들은 우리들의 몫을 충분히 하고, 다른 부분은 그 부분에 있는 이들이 몫을 다하는 게 바람직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MBC에 대해 거는 기대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정권이 교체된 뒤 그 어떠한 싸움에도 이기지 못했고, 국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임에도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는 절망이 누적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분이 부담일 수 있지만 이해는 간다. 우리들은 언론 노동자로서 사회적 책임이 있기에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할 것이다. 파업을 하든, 안하든 현장에서 열심히 하면 된다고 본다. ‘MBC가 정권을 타도했으면 한다’는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다. 이는 국민들이 해야 할 몫이다. 현실적인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선거 과정을 통해 정치권력을 심판하는 것이 국민들의 몫이다.

1992년, 52일 파업이 MBC노조의 최장 파업 기간으로 알고 있다. 이번에 기록 깰 것 같나?

순식간이다. 금방 간다. 이번 주 지나면 한 달 간다. 우리가 물리적인 시간을 목표로 싸우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장기간 파업을 한다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견디는 거다. 엄청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고, 언론인으로서 자기 자신을 지키는 투쟁이라고 본다. 더 갈지는 모르겠지만, 흔들림 없이 갈 거라고 본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