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진도 어느 집. 남녀노소할 것 없이 박장대소한다. 탈을 쓴 광대가 애 낳는 장면을 과장되게 표현하는 등 보통의 탈놀음이 가진 해학과 익살에 누구라도 웃음을 참기가 어렵다. 어어 그런데 여기가 어디 잔칫집인가 했더니 한쪽에 걸린 등이 심상치 않다. 근조등이 걸린 것을 보니 절대로 잔칫집은 아니다. 그렇다. 이것은 분명 상가집에서 벌어진 해괴망측한 풍경이다.

이는 무형문화재 제 81호 진도 다시래기 현장을 간단히 그린 것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민족이 죽음에 대한 두 가지 태도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동일한 지역의 진도씻김굿은 남도음악의 진계면(서양음악의 단조와 비슷한 개념)의 진수를 느낄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다시래기도 있다. 언제 어디서나 사람의 죽음은 슬픔이 아닐 수는 없다. 그렇지만 오랜 역사 속의 인류는 그 슬픔을 받아들이고 또 이겨내는 방법의 하나로 웃음도 선택해왔다.

전통이 거의 사라진 현대에도 이런 관습은 남아 있다. 문상객을 맞는 상주는 장례관습에 의해 ‘아이고 아이고’하며 곡을 한다. 그렇지만 어떤 문상객도 상주에게 가서 더 슬퍼하라고, 피를 토할 정도로 비통하라고 주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겨내라고 도닥이고, 가까운 사이라면 폐가 되지 않는 정도의 가벼운 농담으로 숨 돌릴 틈을 주기도 한다.

천안함 침몰사고에 따른 희생 승조원 장례절차가 시작됐고 29일 영결식을 남겨두고 있다. 이미 한 달을 넘긴 애도국면이니 조금만 더 견디면 평상을 회복할 것이다. 천안함 사고에 대해서 견딘다는 표현은 썩 좋은 선택은 아니다. 그러나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도 있지만 그것보다도 그동안 방송사들이 취한 일방적인 애도분위기에 지친 탓이다. 굳이 다시래기를 언급한 것도 그런 이유다.

웃음과 노래. 사전 어디를 뒤져봐도 부정적인 의미는 찾을 수 없다. 그렇지만 방송사들은 지난 한 달 동안 많게는 연속 5주간 결방한 프로가 있을 정도로 웃음과 노래에 대해서 철저하게 차단을 해왔다. 방송 프로그램 몇 개 결방하는 것이 무슨 대수냐고 할 수도 있지만 출상 전날 상주를 한바탕 웃겨 슬픔을 이겨내는 슬기를 보인 다시래기에서 알 수 있듯이 슬픔을 다스리는 태도는 슬픔 그 자체만은 아니다.

애도국면이라고 해서 전국민이 울상을 짓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지난 결방들을 한꺼번에 방영할 수도 없고 그러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지난 한 달 동안 보인 방송사들의 태도에 대해서 볼멘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달이 넘도록 결방한 프로그램들은 음악, 버라이어티 등 연예오락들이다. 그것들이 애도국면에 맞지 않다는 아주 일반적이고 일방적인 판단에 의한 결방이었다. 마치 음악과 예능 프로들에 유해요소라도 있었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다.

막장드라마라는 오랜 숙제를 안고 있지만 그다음으로 우리 사회에서 환호와 비판의 양면을 지닌 것이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 예능프로그램들은 조작, 표절 등의 역기능도 없지 않다. 그렇지만 30%의 경이적인 시청율을 보이는 등 아주 많은 국민들을 웃음으로 위안한다는 순기능이 훨씬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 넘도록 결방을 맞은 현상은 겪으면서도 믿지 못할 일이다.

물론 예능(음악) 프로그램들의 결방이 없었다 하더라도 일부의 비판은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제작주체가 방송사인 점을 감안한다면 스스로 그 기능을 한 달 이상 정지시킬 정도로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한다는 반증이다. 이런 태도는 웃음에 대한 엄숙주의적 편견이며, 스스로 유해하다고 판단한 프로그램을 엄청난 인력과 비용을 투자해서 제작해온 행태에 대한 이율배반적 태도일 수밖에 없다.

이런 근본적인 자기모순 속에서 예능에 대한 질 낮은 시선이 고착되고, 그것을 기다리고 즐겨온 많은 시청자를 덩달아 비하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평소에는 괜찮다가 특별한 상황에는 나쁜 것이라면 결과적으로 나쁜 것이다. 그러나 평소에도 나쁜 막장드라마를 버젓이 방영하는 방송사의 태도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방송사에 묻고 싶다. 시청율이란 단지 필요할 때 광고수가를 높이기 위한 수단일 뿐 방송사가 의무감으로 대해야 할 존중의 지표는 아닌가?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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