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고대영 KBS사장이 보도국장 시절 국정원 KBS담당관을 만나 보도자제를 요청받고 금품 200만원을 수수했다는 정황이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에 의해 거듭 확인됐다. KBS본부는 200만원 예산집행이 적힌 당시 국정원의 '예산신청서'와 "월1~2회 만난다. 급할 경우 전화통화"라고 적시된 국정원 KBS담당관 이모 팀장의 보고서를 확인했다.

KBS본부는 30일 보도자료를 통해 국정원이 해당 의혹을 제기했을 당시 근거로 제시한 당시 국정원 예산신청서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KBS본부가 공개한 국정원 예산신청서에는 ▲안보 관련 KBS기자 취재 분위기 파악 ▲남북관계 국익 저해보도 자제 ▲국정운영 지원보도 ▲소요예산 200만원 5월8일 전달(여론2팀장,담당I/O)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KBS본부는 "문건 내용 중 1항의 내용이 'KBS 기자들의 분위기를 파악해달라!'"라며 "국정원이 KBS보도국장에게 기자들의 동향 파악, 다르게 말하면 사찰할 부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KBS에 대한 국정원의 사찰이 실제로 진행됐고, 그 중심에 고대영 당시 보도국장이 있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한국방송공사(KBS)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고대영 KBS 사장이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사진=연합뉴스)

KBS본부는 "문제의 200만 원이 국정원 예산에서 지출된 사실도 다시 한 번 확인됐다"고 밝혔다. KBS본부는 "고대영 사장이 사실상 국정원의 정보원, 이른바 '프락치' 노릇을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강하게 드는 대목"이라며 "200만 원 금품수수 의혹은 이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KBS본부는 고대영 당시 국장을 "월 1~2회 만난다", "급할경우 전화통화"라는 내용이 적힌 당시 국정원 KBS담당관 이모 팀장이 작성한 보고서도 확인했다. KBS본부는 "이 팀장은 국정원 적폐청산TF에서 고 사장과 고교 동창인 국정원 선배 이모 씨를 통해 소개받았다고 진술했다"며 "이모 씨는 2009년 당시 국정원 대변인"이라고 밝혔다. KBS본부는 이 팀장을 고대영 사장에게 소개한 당시 국정원 대변인으로부터 "고 사장을 여러차례 만났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고대영 사장이 보도국장 시절 국정원으로부터 제보를 받아 민주당 의원들의 외유성 해외 골프 기사를 제작지시한 의혹도 함께 제기됐다. KBS본부는 "외유성 골프를 즐긴 국회의원들을 고발하는 것은 언론의 의무지만, 취재가 국정원의 은밀한 제보에서 출발한 것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며 "국정원이 야당 의원들을 사찰했고, 국정원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KBS를 이용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해당기사를 취재보도한 김철민 당시 방콕특파원은 KBS본부와의 인터뷰에서 "고대영 국장이 민주당 의원들이 방콕 모 골프장에 골프를 치고 있으니 취재해서 리포트를 제작하라고 직접 전화했다"며 "리포트 취재결과에 대해서는 부장이나 데스크에 보고하지 말고 국장 자신에게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고 폭로했다.

이어 김철민 특파원은 "이 정보가 국정원에서 나왔다는 강한 의심이 든다"며 "국회의원들이 10명이나 방콕에 들어왔는데 취재과정에서 만난 대사관 직원들은 이를 전혀 모르고 있었고, 방콕 주재 한국대사관 국정원 참사만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KBS는 당시 임시국회 회기 중 당시 야당인 민주당 의원들이 태국으로 외유성 해외골프를 떠난 사실을 2009년 1월 10일, 11일 이틀에 걸쳐 보도했다.

KBS본부는 "이와 같은 정황은 국정원이 KBS를 이용해 야당을 압박해 국정에 영향을 끼치려 했고, KBS보도 총괄책임자가 이런 공작에 적극 부역했다는 의혹을 가리킨다"며 "200만 원 수수 의혹과 함께 구체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KBS본부는 "지금까지 나온 증거와 정황은 고 사장이 국정원의 KBS 내부 정보원이었다고 말하고 있다"며 "고 사장은 문제가 없다면 떳떳하게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한편 고대영 사장은 오늘(30일) 아시아태평양방송연합 총회(ABU) 참석 차 중국으로 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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