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심장에 가까이 다가간 자는 누구인가?’

현재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이안의 영화 ‘색(色), 계(戒)(Lust, Caution)’를 보고난 후 드는 생각이다. 개봉한 지 얼마 안 돼 이 영화를 봤다. 무삭제 개봉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지만 철저하게 내 선택의 기준은 ‘이안’이라는 이름이었다. <색, 계>라는 제목을 바람을 더 해 굳이 해석해보자면 ‘욕정을, 색욕을 경계하라’라는 문장이 적당할 듯하다.

<색, 계>는 파격적인 남녀 정사 장면을 담고 있어 세간의 눈길을 끌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그 파격적인 볼거리 외에 권력 일반에 관한 정치적 함의가 담겨 있다. 정치 또는 권력이 인간의 몸을 사로잡는, 즉 권력 일반이 인간의 몸에서 내재화되는 과정을 잘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성 관계를 통해서 말이다. 영화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이 영화를 여러 해석이 가능한 하나의 텍스트로 파악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권력이 인간의 몸에서 내재화 되는 과정 잘 그려낸 작품

▲ 영화 ‘색(色), 계(戒)(Lust, Caution)’
이 영화의 감독인 이안은 현 시대에서 과거 ‘오시마 나기사’ 등 성을 통해 정치와 권력을 이야기 했던 일련의 영화감독과 맥락을 같이 한다. 남근이라는 권력 욕망의 치부를 드러내는 ‘포르노그래피’가 오시마 나기사의 영화 <감각의 제국>이었다면, 파격적인 남녀 정사를 통해 몸에 대한 권력 일반의 내재화 과정을 이안은 영화 <색, 계>에서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제목을 정확히 풀어내면 ‘색이 시작되면서 경계는 사라진다’, 아니 ‘욕망이 시작되면 경계는 사라진다’가 보다 적합할 듯하다.

달리 보면 슬픈 사랑이야기가 될 이 영화에 지나친 주제를 대입시킨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는 인간의 몸을, 심장을 사로잡는 권력과 그 힘이 내면화 되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볼 사람은 다 본 것 같고 또한 입소문이 돌대로 돌아 스포일러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이 영화에 대한 줄거리를 짧게나마 소개한다.

1938년 어지러운 중국, 입센의 연극 ‘인형의 집’을 공연해 보고 싶은 여주인공, 왕치아즈는 연극을 통해 항일투쟁에 나서는 광위민 등을 만나게 된다. 연극에 한계를 느낀 이들은 친일파의 핵심인물인 정보부 대장 ‘이(양조위)’를 암살할 계획을 세우며 접근한다. 왕치아즈를 내세운 미인계를 결정한 이들은 성관계를 처음으로 체험하게 하는 일종의 교육을 실시한다. 이는 향후 벌어질 왕치아즈와 ‘이’의 파격적인 성 관계를 예고한다. 파격적인 성 관계는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데 중요 역할을 한다. 외설로만 볼 수 없는 부분이다.

홍콩에서의 암살계획이 실패한 이후 단절됐던 이들은 1941년 상하이에서 재회한다. 여기에서 다시 왕치아즈는 ‘이’를 암살하기 위한 스파이 역할을 맡았다. 이때부터 감독은 파격적인 성 관계를 통해 권력이 내면화되는 과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파격적인 성관계가 지속될수록 그에 대한 그녀의 경계는 줄어든다. 영화 막바지에서 그녀는 지도부에게 심장에 다가선 그-‘이’의 존재를 알린다. 그녀는 상상 속에서 동료들과 함께하는 암살 계획을 세우고 실제로는 그를 탈출하게 만드는 혼란을 겪는다. 그가 성관계를 통해 그녀의 심장에 다가선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결국 그녀는 체포돼 죽음에 이르게 되지만 후회하는 빛을 찾을 수 없었다. 심장만이 아니라 영혼까지 잠식된 것이다.

▲ 한겨레 12월11일자 1면.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우리나라, 현재 시점에 대입시켜 보자. 대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와 있는 현재, 대한민국 말이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의 심장에 가까이 다가간 것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다. 좋든 싫든 현실이다. 그에게 제기되고 있는 온갖 비리 의혹을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검찰과 일부 언론이 이명박 후보의 방어막으로 작용했더라도 납득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에게 제기되는 의혹들이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지만 지지율은 꺾이지 않는다. 검찰과 일부 언론이 보였던 역할이 문제의 핵심은 아니라는 얘기다.

다시 ‘색, 계’로 돌아가 보자. 그에게 심장을 빼앗긴 결과로 그녀는 죽음을 맞게 되지만 그녀에게서 후회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무서운 것은 바로 이 맥락이다. 심장을 한 번 빼앗기고 나면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지리멸렬'한 17대 대선, 욕망의 허상 키울 가능성 커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현재에 투영해 결과를 숙명처럼 받아들일 것인가를 따지기 이전에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심장에 가까이 간 것은 이명박 후보이다. 그렇다면 ‘다른 쪽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또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라는 문제다.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를 제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좋다.

또 다시 영화 ‘색, 계’로 돌아가 보자. 영화에서 그녀가 욕망의 허상을 키우게 했던 다른 요인은 지극히 아마추어적인 항일 단체에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홍콩에서 암살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후 그들은 이의 측근에게 정체를 발각 당한다. 그 때 벌어진 격투는 다수가 한 사람을 상대로 하지만 쉽게 끝나지 않는다. 이러한 미숙한 투쟁 과정은 그녀가 그들에게서 등을 돌리게 된 요인으로 보인다. 아마추어리즘이 심장을 파고들지 못한 것이다. 욕망과 이성의 균형추가 무너지게 된 배경이라는 얘기다.

설명이 장황해졌다. 현재 이명박 후보에 맞서는 후보단일화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지지부진하다고 한다. 투표를 앞둔 사람들이 심장에 파고든 욕망의 허상을 오히려 키우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두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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