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응답하라>의 성공신화 한 번 더? <20세기 소년소녀> (10월 9일 방송)

MBC 월화드라마 <20세기 소년소녀>

화목한 유년 시절, 컵라면을 먹으면서 TV CF에 푹 빠진 여고생, 그때마다 년도수와 여자 주인공 나이가 하단 자막으로 나온다. 시대가 변해도 여자의 나이는 가장 만만하게 입에 올릴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시대별 추억의 드라마를 통해 보여준다. ‘추억팔이’는 아니지만 어딘가 모르게 또 ‘추억팔이’ 느낌도 나는 MBC <20세기 소년소녀>의 첫 장면은, tvN <응답하라> 시리즈를 연상케 한다.

추측이 아니다. 실제로 <20세기 소년소녀>는 <응답하라> 시리즈를 집필한 이선혜 작가의 신작이다. 서른다섯 세 여자의 우정과 사랑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올드미스 다이어리> 같지만, 그 외피는 <응답하라> 특유의 인간미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여자 주인공 사진진(한예슬)의 직업은 아이돌 출신 여배우. 현재도 슈퍼스타로 불린다. 하지만 <20세기 소년소녀>의 중심은 ‘셀럽’ 사진진이 아니라, ‘봉고파’ 사진진과 친구들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했던 사진진, 한아름(류현경), 장영심(이상희), 서른다섯의 세 여자는 안주 메뉴만 달라질 뿐 매일 저녁 맥주로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고 남자에 대해 거침없이 걸쭉하게 얘기한다.

MBC 월화드라마 <20세기 소년소녀>

멜로나 스릴러가 아닌, 세 여자의 매력이 드라마를 이끌고 가는 원동력이다.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비중 상관없이 어떤 캐릭터든 굉장히 잘 만들어냈던 이혜선 작가의 특기가 첫 회부터 발휘되었다. 사진진은 현재 가장 핫한 아이돌이 이상형으로 꼽는 아이돌 출신 스타인데, 정작 본인은 아이돌 출신 안소니(이상우)를 20년째 짝사랑하는 ‘빠순이’다. 한아름은 ‘승무원=얼굴도 몸매도 착한 젊은 여자’라는 거의 모든 드라마의 공식을 깨고 66반 사이즈에 베트남 비행가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쌀국수나 시원하게 한 사발 하는 것”이라는 승무원이다. 장영심은 엘리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사법고시 합격자인데, 사법고시 합격증이라는 스펙만 추가됐을 뿐 여전히 로펌 면접을 보러 다니는 취업 준비생이다.

흔한 까칠 연예인 캐릭터, 흔한 도도 승무원 캐릭터, 흔한 똑똑 변호사 캐릭터를 모두 비껴가는 설정이다. 전형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한 번 비틀되 현실성을 가미했다. 연예인, 승무원, 변호사라고 해서 먼 존재가 아니라 바로 옆집, 혹은 내 친구의 이야기처럼 친근하게 느껴지도록 말이다. 이게 가능할 수 있었던 건, 이선혜 작가가 <응답하라>에서 조연 캐릭터에까지 생명력을 불어넣은 풍부한 경험 덕분이다.

그래서 세 여자의 별 것 없는 수다에도 늘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이제 겨우 한 시간 남짓 만났을 뿐인데 벌써 친근하다. <응답하라> 때 느꼈던 그 감정이다.

이 주의 Worst: 이연희 연기력은 해결됐는데… <더 패키지> (10월 13일 방송)

JTBC 금토드라마 <더 패키지>

지난 13일 첫 방송된 JTBC <더 패키지>는 프랑스 여행 가이드 윤소소(이연희)를 중심으로 패키지여행 관광객들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다. 프랑스 여행 드라마임에도 첫 회는 ‘공항 드라마’였다.

시작은 인천 공항이었다. 애초 20명 출발 예정이었던 여행 팀은 계모임 총무가 여권 대신 마스크팩을 담아오는 바람에 8명으로 줄어들었다. 비행기표 티케팅 담당 여행직원의 인솔도 무시한 채 계모임 멤버들은 공항 인증샷을 찍기 바빴고, 티켓팅 시간이 임박해서야 여권을 찾았지만 여권은 가방이 아닌 집 냉장고에 두고 왔다. 애초 20명에서 8명으로 줄어든 에피소드를 보여주기 위해 카메라는 한참이나 인천 공항에 머물렀고, 계모임 멤버들의 호들갑은 유난스러울 정도로 소음 수준이었다.

이때부터 여행객들은 물론 시청자들의 인내심이 슬슬 바닥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여행객 중 한 명인 산마루(정용화)가 입국 심사에서 성추행범 의심을 받으면서 억류된 것이다. 얼마 전 동명이인 성추행범이 체포되는 바람에 산마루가 동일인으로 의심받은 것. 윤소소와 산마루가 악연으로 얽히는 계기가 되는 에피소드였지만, 그걸 감안해도 상당히 느린 전개였다. “프랑스는 이런 일처리가 느리다”는 윤소소의 설명만으로는 시청자들의 리모콘을 잡아놓기 어려웠다.

JTBC 금토드라마 <더 패키지>

산마루가 입국 심사대에 억류되고 통역을 위해 윤소소와 몇 번의 통화를 하다가 지루한 기다림 끝에 셀카를 찍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시청자들도 파리 공항을 벗어나지 못했다. 드디어 동명이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이제야 파리 공항을 벗어나나 싶었는데, 이번엔 절차상 진행된 짐 검사에서 여성 속옷이 발견되는 바람에 또 붙잡혔다. 공항에서 대기 중인 다른 여행객들의 분노 지수는 이미 극에 달했다. 참다못한 중년 남성 여행객 오갑수(정규수)가 “우리가 프랑스 공항 구경하러 온 줄 알아?”라고 버럭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방송의 절반이 지날 때까지, 오프닝 장면을 제외하면 인천 공항 그리고 파리 공항이었다.

진짜로 손마루는 풀려났다. 서둘러 버스를 타러 가려는 순간, 물을 사러 갔던 또 다른 여행객 한소란(하시은)이 변비 때문에 화장실에 셀프 억류된 상황. 이쯤 되면 오갑수 아저씨를 분노조절장애자로 비난할 수가 없다. 시청자들도 같은 심정이니 말이다. 이들을 공항에 오래도록 묶어두면서까지 하고 싶은 얘기가 무엇이었을까. 마루와 소소의 악연을 보여주는 건 ‘성추행범 의심 억류’ 에피소드만으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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