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수는 40대 전후로 은퇴하는데 제가 그 정도 됐다. 후배를 위해 내려오고 싶다. ‘저 사람은 그만둬야 되지 않나’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았다.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 내려오고 싶었다.”

12일 오전 서울 중구 달개비 컨퍼런스룸에서 진행된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황혜민-엄재용 커플의 은퇴 기자회견에서 황혜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 기량이 쇠해져 은퇴하는 것보다는, 기량이 아직 남아있음에도 내려오는 게 아름다울 것이라는 부부의 생각이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동시 은퇴라는 결정에 이르렀다.

12일 오전 서울 중구 달개비 컨퍼런스룸에서 진행된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황혜민-엄재용 은퇴 기자회견 Ⓒubc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에 의하면 발레리노와 발레리나가 연습 스타트를 끊는 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인 5-6세 때부터라고 한다. 그러기에 발레리노나 발레리나의 은퇴는 직업의 은퇴 정도가 아니라 삶, 아이덴티티가 뒤바뀌는 수준에 맞먹는 정도. 문훈숙 단장은 “두 예술가의 열정과 삶을 빛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이 시간을 마련했다”고 전했다.

문훈숙 단장에 의하면 황혜민은 ‘서정적인 무용수’. 보는 이의 마음을 울리는 특별한 재주가 있으면서 동시에 온 마음을 다해 춤추는 무용수라고 평했다. 이어 남편인 엄재용에게 ‘영원한 왕자’라고 평한 문훈숙 단장은 “귀티가 풍기고, 나이가 주는 관록이 있다. 무대에 가만히 있기만 해도 채워주는 힘이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들 부부가 국내에 서는 마지막 고별 무대는 24일과 26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리는 유니버설발레단의 레퍼토리 작품 <오네긴>. <오네긴>을 택한 이유에 대해 엄재용은 “한 편의 영화처럼 무용수의 ‘연기’로 끌고 나가야 하는 작품이 <오네긴>”이라면서 “연기력 하나만으로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것 같은 작품이라 무대 관록을 한꺼번에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들 부부의 주위에 있는 현역무용수도 이들의 은퇴를 말렸다고 한다. 황혜민은 “(김)주원 언니는 ‘왜 그만 두느냐’고 말렸다. 주원 언니랑 상담을 많이 했다”는 후일담을 공개하기도 했다.

12일 오전 서울 중구 달개비 컨퍼런스룸에서 진행된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황혜민-엄재용 은퇴 기자회견 Ⓒubc

은퇴 후 계획에 대해 황혜민은 “마흔에는 2세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10년 전이었다면 아이 낳고 돌아왔을 것”이라면서 “아기 때문에 은퇴했다면 후회했을 것이다. 후배 양성도 하지 않을까 한다”고 밝혔다.

이어 황혜민은 “30년 동안 이 머리 길이로만 살아와서 짧게 자른 적이 없다. 내달 26일 공연을 끝내고 아주 짧게 자르고 염색하고 싶다”고 답한 데 이어, 엄재용은 “맛집을 좋아해서 제주도에서 서울 올라오면서 맛집을 탐방하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마지막으로 발레 팬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 남고 싶길 바라는가 하는 질문에 “이 커플은 모든 공연마다 감동을 주는 커플이었구나 하는 바람”이라는 황혜민의 답변에 이어 엄재용은 “‘이 작품은 전에 이들 커플이 공연했을 때 잘하더라’ 하고 관객들의 머릿속에 남는 무용수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유니버설발레단 입단 후 2012년에 화촉을 맺은 황혜민-엄재용 커플은 내달 11월 24일부터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리는 <오네긴> 무대의 개막공연인 24일과 폐막공연인 26일 이틀 마지막으로 고별무대를 가지고 유니버설발레단을 떠날 예정이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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