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는 선거제도를 만들기 위한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현행 소선거구제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최악의 경우 자유한국당을 제외하고 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자유한국당 패싱' 가능성이 떠오르고 있다.

10일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의원 모임인 '국민통합포럼'은 '선거제도 개편의 바람직한 방향 토론회'를 열었다. 이번 토론회에서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은 더불어민주당의 당론이기도 하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대표와 비례대표 당선인 결정을 서로 연계시키는 유형의 비례대표제다. 유권자가 행사한 정당투표 결과로 총 의석수를 산출하고, 지역구 선거 당선인과 비례대표를 총 의석에 맞춰 채워넣는 방식이다. 사표의 발생이 없고 소수정당이 의회에 합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 의회의 다양성과 민주성을 확보할 수 있는 대안으로 평가받는다.

▲지난 1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통합포럼 '선거제도 개편의 바람직한 방향' 토론회에 참석한 국민의당, 바른정당 의원들. (연합뉴스)

국민의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를 함께 도입하는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는 도시는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고, 농촌 지역은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는 방식이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국민의당 간사를 맡고 있는 유성엽 의원은 미디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함께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대도시에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면 비례대표를 추가 확보할 수 있는 여력도 생긴다"고 설명했다.

바른정당은 중대선거구제를 당론으로 채택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10일 토론회에 참여한 바른정당 소속 의원 및 관계자들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의 취지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바른정당 권오을 최고위원은 현실적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선택해야 한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 최고위원은 지난달 27일에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권 최고위원은 당시 바른정당 국회의원-원외위원장 연석회의에서 "지지율만큼 큰 의석 수를 가져가게 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당론으로 결정되지는 않았으나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면서 "양당제에서 다당제로 가기 위해, 국민 욕구를 수렴하기 위해서는 이런 방법에 대해 백지에서 검토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통합포럼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됐다"고 평가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이 참석해 토론회 전체를 경청했고,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도 토론회 중반부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자유한국당의 반대다. 자유한국당이 아직까지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특별한 찬반의사를 내놓고 있지는 않지만, 새누리당 시절인 지난 2015년 이미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훼방을 놓은 전력이 있다.

헌법재판소가 선거구제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면서 구성된 19대 국회 정개특위에서 새누리당은 중앙선관위가 제안한 권역별 비례대표제(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일종)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보인 바 있다. 새누리당 소속이었던 이병석 당시 정개특위 위원장이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절충안을 내놨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이 안을 반대했다는 설이 유력하게 제기됐다.

현재도 자유한국당 친박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는 후문이다. 문제는 정개특위에 들어와 있는 자유한국당 의원 5명 중 4명이 친박이라는 점이다. 친박 중에도 진박으로 분류되는 김재원 의원이 정개특위 간사를 맡고 있으며, 친박 박찬우, 정태옥, 함진규 의원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비박계 의원은 강석호 의원뿐이다.

실제로 자유한국당은 지난 김명수 대법원장 임명 동의안 통과 당시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선거구제를 두고 '뒷거래'를 했다고 몽니를 부리고 있다. 지난달 25일 정개특위 소속 정태옥 의원은 "정략적인 선거구제 개편에 대해 응할 의사가 현재로써는 전혀 없다"며 논의 자체를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결국 지난달 28일 국민의당 정동영 의원의 주도로 열린 선거제도 개혁 민정연대 추진 간담회에는 자유한국당만 참석하지 않았다.

따라서 국민통합포럼 토론회에서는 자유한국당이 반대할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권오을 최고위원은 "선거법 개정은 합의를 해야 한다는 전제를 깨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논의가 진척되기 어렵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정치관계법, 선거법은 '게임의 룰'로 만장일치 합의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인해 국민의 의사가 의회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는 상황인식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유성엽 의원은 미디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현재 정개특위 활동 기한이 12월까지고, 5당이 합의를 하기로 규정이 돼 있다"면서도 "그러나 합의가 되지 않을 경우 내년 1월부터는 뭔가 다른 절차로 추진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유 의원은 "국회선진화법 절차에 따라 3/5 요건을 갖추고 처리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면서 "상임위 180일, 법사위 90일, 의장 40일 등 최장으로 잡으면 300일 넘게 소요가 되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1년도 되지 않는 기간"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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