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은 1주년기념으로 20년 예능계 숙원사업이라는 명분을 갖고 이경규 속이기에 나섰고, 그것을 통해 2주간 높은 시청률을 끌어냈다. 그러나 현존 예능인 중에서 가장 이경규를 좋아하는 입장이라고 해도 이번 미션은 철저한 실패작이라고 평할 수밖에 없다. 물론 시청률이 말해주듯이 재미는 주었다. 그러나 그동안 남자의 자격이 눈물과 땀으로 끌고 온 정신은 잃고 말았다.

이미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지만 남자의 자격의 이경규 몰카는 속이기가 아니라 괴롭히기였다는 점에서 몰래카메라의 자격을 갖지 못한다. 이경규의 몰래카메라에 대한 오마쥬 없는 피상적 표절에 불과하다. 이경규의 몰래카메라는 남자의 자격 말미에 스스로 말한 것처럼 그토록 길게 한 사람을 절대 고통 속으로 밀어 넣지 않는다. 당한 사람 입장에서는 그 한 시간이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될 수도 있겠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심각하지 않을 수준에서의 속고 속이기 게임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나 24시간 동안 사람을 굶긴다는 것은 속이는 차원을 떠나 잔혹한 고문을 행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남자의 자격 극 초반에 금연 24시간을 시도한 적이 있어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담배 피우지 못하는 것과 굶는 것은 다르다. 또한 펄펄 나는 20대도 아니고 50대인 이경규에게 하루 종일의 공복은 대단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늙으면 밥 힘으로 산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 좁은 공간에 음식 냄새로 가득한데 옷에 냄새가 남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것보다 이경규 잔혹한 속이기가 저지른 잘못은 형제애의 와해이다. 그동안 남자의 자격은 추락해버린 패밀리 대신 새로운 패밀리로 떠올랐다. 특히 마라톤 편에서 서로를 감싸고 걱정하는 모습은 남자의 자격의 오늘을 있게 한 일등공신이고, 그것이 남자의 자격의 정체성이었다. 그런 가족 같은 그들이 가장을 굶기는 일에 동원된 것은 고려장 같은 짓이었다. 스스로 쌓아온 아름다운 정신을 허물고 말았다.

또한 남자의 자격은 몰카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채 어설픈 설정을 고집했고, 결정적으로 이경규를 속이지도 못했다. 이정진이 포식하고 돌아와서 양치질을 하기 전에 이경규와 근접 거리에서 대화를 나눈 상황에서 눈치 채지 못할 사람은 없다는 사실은 굳이 굶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또한 양치질을 한다고 해서 냄새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단지 이경규는 미션을 눈치 채고 소위 신의 경지에 오른 예능감각에 의해서 맞장구 쳐주기로 순식간에 결정해버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러지 않는 편이 더 나았다.

그리고 문제의 트림사건에 대해서 이경규는 이윤석에게 귀띔을 했다고 다음날 아침 털어놓았다. 즉, 카메라 바깥에서 시청자에게 전해지지 않는 많은 사실이 있을 수 있었다는 가능성을 밝힌 것이다. 물론 정말 그것 하나뿐일 수도 있겠지만 그 하나의 사실로 인해 그 외 많은 부분에 대한 신뢰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 그렇게 드러난 두 가지 단서를 감안한다면 이정진과 마주했을 때 몰카를 그만두는 편이 더 나았다.

▲ 이제 막 포식하고 돌아온 이정진의 입과 옷에서 음식냄새가 진동했을 것이다. 과연 몰랐을까?

또 한 가지 이경규가 눈치 챌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단서는 나머지 멤버들에게 있다. 금연 편에서는 이윤석을 비롯해서 담배를 피우다가 걸린 사례가 몇 번이나 있었다. 그것이 정말 못 참아서일 수도 있지만 그래야 재미를 줄 수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미 비밀식당에서 포식하고 있더라도 이경규를 속이기 위해서는 누군가 두어 명은 일부로라도 음식을 먹다가 얼음물에 들어가는 살신성인의 트릭을 만들었어야 한다. 아무도 사고치지 않은 단식미션은 이경규 아니라 누구라도 신뢰하지 못할 재미없는 예능이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없는 단식 미션 속의 24시간 동안 과연 예능의 달인 이경규가 누군가에게 그런 지시를 하지 않았을 거라 보기는 어렵다. 누군가의 이탈도 없고, 벌칙도 없는 지루함은 편집자의 입장에서는 다른 멤버들의 포식 장면과 고소해 하는 웃음으로 채울 수 있었지만 편집의 좁은 시각으로 볼 수 없었던 허점이 이경규와 시청자의 시야에는 있었다. 그러나 이경규가 그렇게 멤버들을 독려하는 장면은 없었다. 정말 그답지 않은 순조(?)로운 몰카 진행이었다.

이제 남는 숙제는 진실에 대한 문제이다. 정말 이경규가 속지 않았다는 것을 제작진도 모르고 혼자 안고 갔을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자의 자격 이경규 몰래카메라 미션은 제작진만 이경규에게 속은 것이 된다. 그렇지 않고 이번 미션의 성공을 위해 시청자 모르는 이면이 존재한다면 남자의 자격은 패떴 범한 참돔의 전철을 되밟게 될 것이다. 그래서 다음 주 남자의 자격에 "죄송합니다. 이번에도 이경규를 속이지 못했습니다"란 자막을 기대하게 된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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