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김무명을 찾아라> 1·2부를 종합해보면, 확실히 이 프로그램은 추리에 많은 노력을 할애하지 않는다. 만약 <김무명을 찾아라>가 무명 배우를 찾는 데 주안점을 둔 예능이라면, 세 명의 배우를 특별한 힌트 없이 단 두 번 만에 맞혀야 하는 불공평한 룰을 제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각종 추리 프로그램을 섭렵한 연예인 추리단이 그럼에도 이 터무니없는 룰을 받아들인 것은, 무명 배우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데 주안점을 두는 <김무명을 찾아라> 취지에 적극 공감했기 때문이다.

<김무명을 찾아라>는 특정 장소와 사람들 속에서 완벽한(?) 연기를 펼치고 있는 무명배우를 찾는 컨셉으로 진행된다. 7일 방영한 1부도 그랬지만, 2부 역시 무명배우 '김무명'인 척 위장하는 진짜 평양민속예술단원들의 열연이 눈에 띈다. 무명배우들이 봉선사에 잠입했던 1부보다 확실히 고난도였던 2부에서도 연예인 추리단은 3명의 김무명을 모두 찾는 데 실패했고 벌칙을 받았다.

tvN 예능프로그램 <김무명을 찾아라>

하지만 무명배우들을 지키기 위해 가짜인 척 행동했던 예술단원들의 기지는 논외로 치고, 무명배우들이 진짜 평양민속예술단원처럼 보였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남는다. 1부의 봉선사 스님들이 그랬듯이 진짜 평양민속예술단 소속 단원들은 일부러 허술한 척 연기를 한다. 반면, 진짜처럼 보여야 하는 김무명들은 필사적으로 평양민속예술단원들의 행동과 일상을 재연한다. 그래서 김무명들이 보여주는 행동은 빈틈이 없고 철두철미하다. 그리고 X맨을 자처하는 진짜 평양민속예술단이 설계자 박철민의 지령에 따라 함정을 파주니 상대적으로 연예인 추리단의 레이더망에서 비켜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함정에 태연히 넘어가는 연예인 추리단의 행보가 흥미롭다. '추리단'으로 불리지만 이들이 이 프로그램에서 맡은 주요 임무는 김무명들이 돋보일 수 있도록 제대로 멍석을 깔아주는 일이다. 프로그램 출연을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던 무명 배우들은 자신들의 정체가 미션이 완료되는 순간까지 드러나지 않길 원하며, 연예인 추리단은 어떻게든 빠른 시간 내에 김무명을 찾아내야 한다. 그런데 1부를 찍은 이후 진행된 2부는 배우들의 입장이 많이 배려된 듯하다. 특히 김무명들에게는 그들의 끼나 연기력을 발산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했는데, 무명 배우 발굴을 최우선으로 하는 프로그램 취지에 부합되는 설정으로 보인다.

<김무명을 찾아라> 1부를 보고 문득 지난 2011년 방영한 SBS <기적의 오디션>이 생각났다. 국내 최고 그리고 유일 연기자 서바이벌 오디션을 진행했던 이 프로그램은 당시 오디션 프로그램이 활황을 맞던 시절이었음에도 불구 잘되지 못했다. <기적의 오디션> 출신을 검색해보니, 잘 알려진 대로 당시 상위권에 랭킹되었던 허성태는 영화 <밀정>(2016), OCN <터널>(2017)에서의 인상 깊은 연기로 배우로서 성공적으로 안착했고, 의외로 변요한이 예선에서 탈락했다고 한다. 그리고 KBS <김과장>(2017), SBS <수상한 파트너>(2017)로 주목받은 동하가 <기적의 오디션>에 본명 김형규로 참가한 바 있다. <김과장>으로 뜨기 이전부터 몇몇 드라마에 출연했다고 하나, <기적의 오디션>이 2011년에 진행한 프로그램이니 그 이후 6년 만에 배우로서 빛을 본 셈이다.

tvN 예능프로그램 <김무명을 찾아라>

하지만 <기적의 오디션> 출신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배우들은 허성태, 변요한, 동하 이 세 명이 전부다. 그래도 <기적의 오디션> 심사위원을 맡았던 곽경택 감독이 눈여겨보았던 오디션 참가 배우들과 함께 <미운 오리 새끼>(2012)라는 영화를 찍기도 했는데, 그 뒤 그 영화에서 주연급으로 출연했던 배우들의 소식이 뜸하다. 이렇듯 아무리 예능을 통해 반짝 주목을 받았다고 한들, 배우로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가는 것은 별개이다. 지금은 영화감독으로 사실상 전업한 배우가 자신이 연출한 영화의 대사를 통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배우는 기다리는 게 일이라고. 감독 혹은 제작자에 의해서 선택받는 숙명을 타고난 배우들은 하염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감독들의 연락 기다리는 데 지친 몇몇 배우들은 아예 직접 메가폰을 잡기도 한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문소리이다. 자신을 선택하기 바라는 감독 혹은 제작자의 연락을 간절히 기다리고, 절망하는 배우들의 이야기를 담아 <여배우는 오늘도>(2017)라는 한 편의 멋진 영화를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들이 죽었다>(2015)를 연출한 백재호 감독도 그랬고, 얼마 전 개봉한 <분장>(2016) 남연우 감독도 배우 출신이다. 물론 영화 연출 또한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기에 이들은 정말 특별한 사례에 속한다.

<김무명을 찾아라>에 참가한 상당수의 배우들은 대학로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연극배우다. TV드라마, 영화에 출연했다고 하나 스쳐지나가는 단역 정도를 맡은 이력만 있다. 그들에게 <김무명을 찾아라>는 엄청난 기회다. 설령, 그 프로그램이 <기적의 오디션>보다 배우로서의 앞날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알리는 게 목표인 그들로서는 고마운 제안이다.

tvN 예능프로그램 <김무명을 찾아라>

하지만 <김무명을 찾아라>라는 프로그램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서글픈 마음도 앞선다. <김무명을 찾아라>는 무명배우들에게 얼굴과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회만 제공한다. 단 1회의 방송 분량을 통해 그들의 연기력을 제대로 평가하기도 어렵다. 아마 <기적의 오디션>이 그랬듯이, 이들 중 상당수는 곧 시청자들의 뇌리에서 잊혀질 것이다. 그래도 지상파에서 방영한 <기적의 오디션>과 달리 <김무명을 찾아라>는 케이블이고 단 1회 방송이었으니 말이다.

<김무명을 찾아라>를 명절 특집용이 아닌 정규 편성으로 좀 더 오래 보고 싶다. 만약 정규 편성이 된다면 파일럿에서 도드라진 문제를 극복해야겠지만, 애초 추리보다 무명배우 발굴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프로그램이니 약간의 어설픔은 눈감아 줄 수 있다. <김무명을 찾아라>는 좋은 취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재미가 있다. 정형돈은 확실히 안정감 있는 예능인이고, 이상민은 그 자신이 예능 대세로 각광받는 이유를 효과적으로 입증시킨다. 이 두 사람의 찰떡호흡은 감동 못지않은 재미를 보장해야 하는 예능으로서의 본분을 충실히 보여준다. 볼 만한 프로그램 없었던 지루한 추석 연휴 막바지에 생각지도 못했던 보배를 만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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