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는 방송사가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화려한 드라마, 현란한 예능 그리고 통쾌한 시사보도와 달리 다큐멘터리는 그 셋의 수식어 중 무엇도 붙이기 어렵지만 동시에 모두 가졌다고도 할 수 있다. MBC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이 그랬다. 한국 상황에서는 드물게 극장상영까지 갈 정도였으니 다큐멘터리의 꿈을 다 이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다큐멘터리는 사정이 그러하지 못하다. 그렇지만 지금 이 시각에도 누군가는 무거운 카메라를 어깨에 얹어놓은 채 잊혀져서는 안 될 어떤 사정을 필름에 담고 있을 것이다. 그 속에 분명 KBS '다큐멘터리 3일'팀도 있을 것이다. 개그우먼 김미화를 내레이터로 기용했다가 경영진의 꾸지람을 받아 화제가 된 '다큐멘터리 3일'은 시청률도 잘 나오는 KBS의 대표 다큐멘터리 중 하나이다.

아주 꾸준히 이 프로그램을 챙겨보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씩은 큰 인상을 받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 3일(아래 다큐 3일)'은 다큐멘터리치고는 아주 짧은 시간을 들여 제작한다. 기획의도에 밝힌 바, 다큐 3일은 '특정한 공간'을 '제한된 72시간' 동안 관찰하고 기록하는 독특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한두 시간의 영상을 위해 몇 번의 계절을 맞아야 하는 자연 다큐멘터리 등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쉽게 만들어진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책가방 커야 공부 잘하는 것 아니듯이 짧은 시간에 빠듯하게 담아내야 하기에 그만큼 준비과정이 치열할 것이다. 무엇보다 다큐3일의 특성은 취재의 시각이 아닌 행인의 시선을 취한다는 점에 있다. 누구라도 아무 때나 지나쳤을 우리들의 일상을 사전에 약속되지 않고, 준비되지 않은 현장 그대로의 현장을 담아내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됐던 장사동이라든가 문래동 철공장의 여름 등 다큐3일은 특별하지 않은 공간의 특별한 의미를 용케도 찾아낸다.

이런 다큐3일의 중요성은 그 자체가 도시민속의 선구자 역할을 해왔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민속이라는 학술장르가 과거에서 현재로 옮겨온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물론 아직도 과거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워낭소리' 등의 기록 작업도 필요하지만 더 큰 시각의 민속조사는 도시민속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2007년 5월부터 지금까지 꼬박꼬박 현재를 담아온 다큐3일의 기록은 모두가 그 도시민속의 알토란같은 자료가 되는 것이다.

다큐멘터리치고 학술적 가치가 없는 것이 없지만, 다큐3일의 특별한 가치는 역사의 현재를 세세하게 기록해가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보다 미래에 더 빛날 것이라는 점에 있다. 이미 개그우먼 김미화와 다큐 3일에 대한 근간의 씁쓸한 사건은 많이 정리되어 있어 중복을 피하기 위해 문제점을 다시 지적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그녀의 다소 투박한 듯한 내레이션이 장사동의 분위기와 성기지 않고 참 어울렸다는 평가만은 밝혀두고 싶다.

요즘 다큐멘터리에 유명 배우 등이 내레이션을 맡는 일이 자주 있는데, 지나친 배우적 억양으로 인해 오히려 부담스러운 경우도 많지만 김미화의 경우 자신의 존재로서 더해질 수 있는 어떤 의도치 않은 정서를 배제하기 위한 다큐멘터리 내레이터로서의 침착함을 보였다. 김미화가 내레이션 한 다큐3일은 서울 종로구 장사동을 3일을 기록한 '도시의 기억'편이었다.

장사동이라는 말보다는 청계천이라는 말이 쉽게 와 닿는 이곳은 하루에도 수많은 인파가 지나는 종로대로에서 딱 몇 발자국만 걸어 들어가면 만나는 현재 속의 과거이다. 그곳에 어떤 의도 없이 무심한 듯 다가서는 카메라 앵글에는 서울이라고 하기에는 낯설 골목이 있다. 그곳을 그토록 낯설게 만드는 것은 사람을 만나는 탓이다. 저럼 사람이 아직도 있나 싶은 그런 사람들.

다큐3일은 사소함으로 특별하다. 거기에는 우리들의 과거나 혹은 미래가 공존한다. CCTV에 비쳐지는 것 같은 평범한 한국의 풍경들을 기록하는 다큐3일은 한국의 평범한 영상일기이다. 어느 허름한 식당에서 3천원 짜리 백반 한 그릇에 깜짝 놀랄 맛과 인정을 발견하게 되는 그런 느낌의 다큐멘터리이다. 이 사소하고 평범한 다큐멘터리를 정권이 바뀌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경영진의 특별한 판단과 정치색으로 감히 흔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